스페인(SPAIN)

  

그라나다(GRANADA) 마드리드(MADRID)바르셀로나(BARCELONA) 톨레도(TOLEDO)

살라망까(Salamanca)세고비아(SEGOVIA) 세빌리아(SEVILLA) 코르도바(CORDOBA)

말라가(MALAGA)

 집시와 투우를 연상시키는 나라, 한때 무적함대를 휘몰아 세계의 대양들을 제패하며 신대륙과 미개지를 개척하던 나라 스페인, 그 격렬한 정렬과 죽음의 향기는 거칠고 광활한 황야와 거의 사면을 대양과 접하고 있는 이유에서일 것이다.

 유럽대륙 이면서도 중세에까지 회교도의 영향권하에 있어서그 황량한 평원에 펼쳐진 이슬람 스타일의 이국적인 풍취는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화의 점이적 특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기전 11세기에 이베로족을 비롯한 여러 종족이 침입해 들어오면서 스페인의 선주민들이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뒤 로마의 지배하에서 서양의 일부로 발전했으나, 8세기후 800년간 이슬람 세력 아래있었기 때문에 인종과 문화적으로 유럽의 다른 나라와는 차이가 많다.

 16세기에는 식민지의 재화로 황금시대를 이루었지만 몰락후에는 근대화가 뒤졌다.

 1936-1939년의 내란으로 프랑코 독재가 등장했고,국제 사회에서 고립 되었다. 1975년 프랑코 사망 이후 민주화의 길을 걷고 있다. 또한,스페인은 아무리 작은 도시라 할지라도 수세기동안 풍우를 견디어 온 교회가 한가운데 서있고, 또한 각각의 역사를 비장하고 있는 수도원과 성이 곳곳에 점재해 있기도 하다.

 

개 요

ㅇ 정식국명 : 스페인왕국 ( Reino de Espana, Kingdom of Spain)

ㅇ 국가형태 : 입헌군주제(국왕 : Juan Carlos Ⅰ세)

ㅇ 정부형태 : 내각책임제

ㅇ 내    각 : 수상 및 14개 부처 장관으로 구성(‘96.5 국민당(PP) 정부 출범)

ㅇ 신헌법제정 : 1978.12.6(동년 12.29 발효)

ㅇ 수 도 : 마드리드(500만명)

ㅇ 인 구 : 40,217,413명(2003.7월 추정치)

ㅇ 면 적 : 약 50만㎢(한반도의 약 2.3배)

ㅇ 언 어 : 까스티야어(표준 스페인어 74%), 까딸란 17%, 갈리시아어 7%, 바스크어 2%

ㅇ 민 족 : 라틴족

ㅇ 종 교 : 카톨릭(90%)

ㅇ 인구성장율 : 0.16%(2003년 추정치)

ㅇ 병역제도: 직업군인제(2002년말 의무복무제에서 전환)

시   차     :   우리나라보다 8시간 늦음. (SUMMER TIME 실시할 경우 7시간)

쇼   핑     :   가죽제품, 수공예, 은제품

전   압     :   220 V

 

마드리드 기후()

지   역

구분/월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마드리드

(MADRID)

최고평균

10

12

15

17

23

27

31

32

27

20

10

8

최저평균

3

3

5

8

11

15

18

19

16

12

3

0

평   균

4.4

6.1

9.2

12.2

15.8

20.3

23.6

23.4

19.2

13.9

8.3

5.3

 강 수 량

33

32

40

42

42

44

10

12

37

46

51

40

강우일수

10

5

19

10

10

6

0

0

6

11

10

8

 

약 사

ㅇ 약 2만5천년전 알타미라 동굴에서 크레마뇽인 벽화 발견

 BC 3세기, 이베로족이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 정복

 BC 264-146, 로마가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격파하여 지중해 제패

ㅇ BC 2세기-AD 5세기초, 로마제국의 지배

ㅇ 5세기, 서고트 왕국(419-711) 건설

ㅇ 8세기, 무어족이 이베리아반도 점령(711)

ㅇ 722년 Covadonga 전투승리를 기점으로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국토 재탈환 시작

※ 기독교 세력이 13세기 중엽까지 남부 Andalucia 지방 일부를 제외한 이베리아 반도 전역 탈환

ㅇ 1492년 이슬람 세력을 추방하여 통일스페인 왕국 건설, 미주대륙 발견, 카톨릭을 국교로 정함

ㅇ 16세기에는 브라질을 제외한 중남미 대부분을 정복하고 지중해도 제패하여 대제국 건설

ㅇ 1588년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배한 이후 국력 쇠퇴

ㅇ 1808-11간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19세기 중엽까지 중남미 식민지 대부분 독립

ㅇ 1898년 미/서 전쟁에서 패배, 잔여 식민지인 쿠바/필리핀 및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양도

ㅇ 1931년 총선에서 공화파 승리하고 Alfonso 13세가 폐위와 함께 공화국이 선포됨.

ㅇ 1936. 7 프랑코 장군의 쿠테타로 인민전선(Frente Popular) 정부와 내전 돌입

ㅇ 1939년 프랑코가 3년간의 내전에서 승리하여 독재체제 확립

ㅇ 1975. 11.20 프랑코 총통사망, Juan Carlos 왕세자 국왕 즉위

ㅇ 1977. 6.   실시된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Suarez 수상 취임

ㅇ 1978. 12.  서구식 의회민주주의에 기초한 신헌법 국민투표  통과

ㅇ 1979. 3.   신헌법에 따른 총선 실시, Suarez 수상 재집권

ㅇ 1981. 2.   군부 쿠테타 실패

ㅇ 1982. 5.   NATO 가입

ㅇ 1982. 10.   실시된 조기 총선에서 사회당(PSOE) 승리로 Gonzalez 수상 집권(1982-1996)

ㅇ 1986. 1.   EC 가입

ㅇ 1996.3.3.   총선에서 국민당이 제1당이 됨.

ㅇ 1996.5.6.   정당연합으로 국민당 정부구성, Aznar 수상 취임

ㅇ 2000.3.12  총선에서 국민당이 승리, 하원과반수를 확보하여  재집권

ㅇ 2000.4.25  Aznar 수상 재취임, 국민당 2기정부 구성  

 

 

플라맹고(FLAMENCO)

 플라맹고는 인도의 북부지방으로부터 외침을 받아 이주한 몇몇 부족들의 영향으로 생겨난 음악인데, 이때 쫓겨난 집시들이 첫 정착지는 이집트와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로 쫓겨왔고 다시 각자 흩어진 부류중에 집시가 스페인 남부에 정착하게 된다. 이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일상의 소리를 담아 만든 노래들이고 화려하고 즉흥적이며 기교적 성향을 가지면서 아랍문화와 카톨릭과 유대문화와의 융합으로 인해서 스페인남부지방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하게 된다.

800년동안의 스페인 남부지방은 아랍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는데,이때 플라맹고 발전하게 된다. 플라맹고의 어원은 아랍어인 "felag"(농부)나 "mengu(도망자 또는 피난민)이라는 단어의 잘못된 발음에서 온것으로 여겨지며 18세기에 "안달루시아의 집시"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여지기 시작한다.

 스페인들의 국토탈환운동의 일환으로 그라나다(Granada)지방의 탈환으로 카톨릭 영주들과 교회의 핍박으로 쫒겨난 수많은 집시들은 쫓겨다니며 되었고 이들이 부르는 노래에는 당시 지배계충에 대한 불만을 담은 내용이 많이 담겨져 있었다.

 당시의 플라맹고 악보는 이탈리아 오페라 ("The lucky Mask"-Neri, 18세기)에서 찾아볼수 있다.

 그러나 플라맹고는 그 시초로부터 즉흥적 연주로 말미암아 확립된 음악이라고 볼수 있다. 플라맹고 연주는 노래, 춤, 기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최초에는 노래와 손뼉치기(박수 :palmas)가 주요 연주수단이고 기타는 그 이후에 추가되었고 발구르기도 이 시기에 시작된것이다.

 현대의 플라맹고 베이스 기타와 cajon이라는 북처럼 생긴 눕혀놓고 올라앉아 연주하는 타악기등의 악기가 추가되었다. 최근에는 플롯, 섹스폰이나 종종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하는 현악기는 물론 희귀한 악기인 citar(중동의 현악기) darbuka, djembe(인도의 타악기), 봉고, conga(남아메리카의 타악기)같은 악기도 사용하고 있다.

 전형적인 악기로 연주하는 플라맹고는 대표적으로 기타연주를 꼽을수 있다. 한대의 기타와 춤 그리고 노래가 등장하는데 기타는 춤이나 노래의 반주역할을 한다. 리듬을 이해해야 한다. 플라맹 고의 리듬은 여러 개의 마디를 단위로 하는 12박자 이상의 진행 속에 몇 개의 강박을 가진 구조로 리듬을 이해해야 한다. 플라맹고에서는 특정한 부분의 강세를 가진 마디들로 이루어진 악구들이 연주자간의 주고 받는 형식으로 도약 및 전개를 이루며, 연주의 종결부는 대체로 매우 강하게 연주된다. 플라맹고의 선율은 항상 리듬을 가진 악구와 결합되어 진행한다.

 

 

살 사

 스페인어의 소금이라는 sal + 소스인 salsa에서 유래된 푸에르토리코인들이 발전시킨 리듬댄스이다. 스페인과 아프리카 문화와 섞인 라틴문화와 미국문화인 재즈와 락, 솔과 합쳐져서 만들어진 음악이 살사이다.

 살사는 60년대 뉴욕거주하는 푸에르토리칸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으며 이윽고 남미전역에 걸쳐서 상당한 영향을 주었고 각나라별로 그 나라 특유의 살사로 발전하게 되었다. 살사는 건전하고 율동감이 넘치는 춤이며, 남미에서 마을축제나 파티에서 자유롭게 즐기고 남미에서 마을축제나 파티,대중적이고 공개적인 춤으로 기본동작은 남녀가 마주서서 손을 잡고 밀고 당기는 기본스텝과 손을 엇갈려 잡은 후 복잡한 회전을 섞은 응용동작으로 구성된다.

 

》살사의 역사

 남미에서 노예로 일하던 아프리카 흑인들은 그들말로 노래와 춤을 추는 동안 그들의 문화와 스페인 문화가 융합되어 가기 시작했고 이들의 문화는 카리브 특유의 문화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20세기초에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는 스페인의 마지막 식민지였으나 미국과의 전쟁을 패하게 된 이후에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자치령으로 쿠바는 미국의 지배하로 들어가게 된다.쿠바의 도시 하바나는 미국인들의 환락가로 번영을 하게되고 여기에서 나오는 쿠바음악은 인기를 끌게 된다. 60년대 쿠바와의 미국과의 국교단절로 인해서 쿠바의 최신음악은 미국에 들어가지 못했고 뉴욕에 남아있는 푸에르토리카인들은 독자적으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70년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라틴팝을 중심으로 로맨틱 살사나 에로틱살사등이 나오게 된다.

 글로리아 에스테판은 스페인어 앨범인 카리브적인 라틴앨범을 발표하여 화제를 보이기도 했다. 90년대 말은 라틴리듬과 여러가지 댄스뮤직이 복잡하게 융합하기 시작했고, 문화는 어디서든지 변한다. 앞으로도 살사는 많은 변화를 보일것이다.

 

 

전통축제

 매년 스페인의 여러 마을에서 행해지는 아름답고 전통적인 기념축제는 오래되고 풍부한 스페인의 문화적 전통, 지역적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 200가지가 넘는 축제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도 있는데, 2월에는 스페인 전역에서 카니발이 열린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것은 CADIZ와 TENERIFE에서 열리는 것으로서 음악이 울려 퍼지며 축제분위기로 가득 차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마비될 정도로 이곳사람들은 그들만의 축제를 즐긴다.2월에 이곳을 스페인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

 3월은 VALENCIA의 LAS FALLAS에서 조형물을 태우는 축제를 벌인다. 이 조형물은 현 세태를 풍자하는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3월 19일에 완전히 태워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성주간은 가장 아름답고 종교 행사와 관련이 깊은 축제로 봄에 열린다.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것으로는 VALLADOLID, CUENCA, CASTILLA지방의 ZAMORA와 ANDALUCIA지방의 SEVILLA, MALAGA등이 있습니다.

 4월에는 FERIA DE SEVILLA가 열린다. 해마다 새롭게 만들어 축제를 준비하는 이 행사는 이 행사장 자체가 작은 SEVILLA시의 모습으로 변해 각 천막(CASETAk)에서는 술을 마시며 고유의 노래와 춤인 SEVILLANA를 밤과 낮 구별 없이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5월은 전형적인 ANDALUCIA의 행사인 EL ROCIO축제가 있다. 이 행사는 아달루시아의 전역에서 사람들이 말이나 마차를 타고 종교적인 행렬을 벌이며 HUELVA지방의 DO ANA국립공원 옆 AYAMONTE에 있는 EL VIRGEN ROCIO 교회로 모이게 되는데, PAMPLONA에서는 7월 6일에서 14일까지 "SAN FERMINES" 축제를 한다. 이 축제에서는 이 지방의 청년들이 가축장에서 투우장까지 도시의 거리를 따라 소와 함께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토마토 축제(La Tomatina)와 성페르민 축제

<토마토 축제(La Tomatina(라 또마띠나))>

 1944년에 시작된 이 축제는 이 마을의 주민들이 시의회 의원들에게 화가나서 지방 축제때 그들에게 토마토를 던진 것에 유래한다고 한다. 그 결과가 너무 좋아 마을 주민들은 매년 토마토 던지기 놀이를 반복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코 장군의 독재기간동안에는 정부는 이 축제가 종교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금지하기도 했단다. 비록 축제가 시청에 항거하여 시작되었으나 요즘은 시청이 축제비용을 지불한다고 한다. 부뇰(Bunol) 마을 사람들, 휴양객들, 관광객들이 축제에 참가하고 즐기도록, 시청은 여러 지방에서 도착하는 약 50,000kg의 토마토를 구입한다.

 토마토 전투일에는 아침 11시경에 군중들이 마을 중앙에 있는 대광장(Plaza Mayor)과 주변거리에 모여든다. 사람들은 가장 좋은 의복을 입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가장 오래된 옷을 입는다. 왜냐면 전투후에는 입은 옷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지경이므로. 광장 중앙에는 그리스 기름을 바른 큰 기둥 하나를 심어놓는다. 그 기둥 꼭대기엔 햄이 달려 있다. 누군가 고생해서 마침내 햄을 땄을 때, 사람들은 그를 격려하면서 토마토!토마토!라고 외친다. 그러면 폭죽이 울린다. 그것을 신호로 축제가 시작되는 것이다.

 몇 분 후에 잘 익은 토마토를 실은 화물 트럭들이 길 양 옆에 도착한다. 토마토들은 주변 마을에서 재배된 것이고 요리용이 아닌 탄환으로 쓰이도록 재배된 것들이다. 트럭 위에서 몇몇의 사람들이 사람들을 향해서 아무 거리낌없이 토마토를 던지기 시작한다. 광장은 붉은 색깔로 바뀌고 거리는 백만개의 피자에 쓸 수 있을 정도의 토마토 케찹으로 뒤덮인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토마토가 동원되는 괴상한 축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웃음이 절로 나는 재미난 축제이기도 하다. 2시간 정도 지나면 토마토를 던지는 놀이가 폭죽 소리와 함께 끝난다. 이젠 아무도 토마토를 던지지 못한다. 만약 토마토를 이때 던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한다. 축제가 끝나면 마을의 청소차들이 말끔하게 토마토의 잔재들을 청소해 놓는다. 모든 닫혔던 가게 문들이 열리고 점심시간이 시작된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토마토 전투! 그야말로 피한방울 흘리지 않는 코믹한 전투가 스페인 어느 한 작은 마을에서 매년 열리는 것이다.

 매년 8월 마지막 수요일 마다 '토마토 전쟁'이 벌어진다.

 

 

<바르크지방의 성페르민 축제(Festival of San Fermin)>

 빌리크리스탈 주연의 뉴욕카우보이(City slickers)란 영화에서 본적이 있는 낯설지 않은 장면... 첫장면에서 어떤 도시의 좁은 길에 소들을 풀어 놓고 하얀 옷에 빨간 모자를 쓴 사람들이 미친듯이 마구 뛰어가는 장면... 이 장면이 바로 성페르민 축제 장면이다.

 이 광란의 위험한 축제는 헤밍웨이 첫 장편소설 '해는 또다시 뜬다(The sun also rises)'에서 잘 표현되어 있기도 한 스페인의 축제이면서도 세계적인 축제이다.

 사실 길에다 소를 풀어 놓고 달리는 축제는 프랑스 남부에서부터 스페인 전역에서 행해지는 행위인데 제일 알려진 것은 이곳 팜플로나의 소풀이죠. 이 소들은 정신없이 풀려져서 달리다가 자신의 생을 마칠 투우경기장에 닿게 되는데 그리고 나서 그날의 투우 경기에 출연(?)하게 된다. 사실 투우경기를 보려면 돈이 없는 여행객들에게는 약간의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이 축제에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 외에도 더욱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이 축제는 매년 스페인의 팜플로나에서 7월 6일 하오에서 14일까지 열려지고 있는데 기원은 팜플로나의 성인 Fermin 을 기원하며 바스크전통을 살린 축제를 종합해서 더운 7월여름 한 열흘 노는 것이다.

 이 축제를 제대로 볼려면 일단 7월 6일 축제 시작시의 거대한 군중들의 함성과 또한 그 다음날 오전 대성당에서 시작하는 성 페르민像의 행렬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이 축제의 스케줄은 다음과 같다. (기간은 7월 6일에서 7월 14일까지)

7월 6일 12시: 축제 개막식( 콘스시토리알 광장)

18시30분: 어린소들 풀기

23시: 폭죽놀이(이후 매일 같은 시간)

24시: 카스틸로광장의 댄스파티

7월 7일 8시: 첫 소몰이 (이후 14일 까지)

10시: 성 페르민 상 행렬

12시: 팡파레 출발

18시30분: 첫 투우 경기 (이후에 계속 있음)

밤부터 새벽: 갖 댄스파티

7월 8일 9시30분: 첫 거인 행렬 시작 (이후에 계속 있음)

7월14일 폐막식 및 폐막 미사

 

 

투 우

 스페인 신문들은 투우 기사를 스포츠면에서 다루지 않고 문화면에서 다룬다. 투우는 스페인 사람들에겐 놀이가 아닌 인생의 철학을 담은 하나의 의식이다. 투우는 목축업의 풍요를 기원하면서 신에게 숫소의 죽음을 바치는 의식에서 기원한다.

 투우사가 숫소를 향하여 사력과 기술을 다하는 모습은 발레의 2인 무도와 비슷하다고 하며, 투우에서 살해가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이 최고의 구경거리는 아니며, 투우사와 숫소의 솜씨 즉 파세(pase)가 최고라고 하겠다.

 투우의 공식적인 행사는 3월에 발렌시아의 '불축제'로 시작되며 10월 사라고사의 피랄축제로 막을 내린다.

 

》투우하는 법

 투우에 쓸소는 투우가 열리는 당일 이른 아침에 고르고, 푸른초원에서 방목된 몸무게가 4백50~6백5kg인 3~4년생을 사용한다. 보통 한번의 투우에 3명의 투우사가 등장한다. 시간이 되면 투우사는 붉은색천 물레따를 흔들며 거품을 뿜으며 달려오는 소와 접전을 시작한다.

 잠시후 투우사는 소를 삐까돌이라고 부르는 보조 투우사 가까이 유인해 가고, 온몸에 방패를 두른 말을 타고 나온 삐까돌은 큰 창으로 소의 등과 복부를 찔러 피를 흘리게 만든다.

 소가 피를 많이 흘려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또다른 보조 투우사 반데리레로가 나와서 오색으로 수놓인 깃발 달린 창을 소의 등에 꽂고 이어서 힘찬 나팔소리에 맞춰 본 투우사가 재등장한다.

 투우사는 모자를 벗어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어깨 넘어로 던진다. 이때 모자가 바로 떨어지면 행운이 따른다고 한다.투우를 시작하기 전에 소가 다리를 절거나 힘이 없어 보이면 관중의 항의가 대단하다. 만일 관중들이 푸에라, 푸에라(나가라)를 외치면 암소 여러마리가 나와 싸움소를 이끌어 우리로 데려가 버리고, 관중이 올래, 올래를 외치면 투우를 시작한다. 투우시간은 너무 짧아도 길어도 안된다. 피를 많이 흘린 소가 긴 혀를 땅에 끌며 거친 숨을 내쉬면 투우사는 에스파다라는 칼로 등급소를 깊숙히 찔러 숨통을 끊는다.

 투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투우사가 단칼에 소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하면 상품인 소의 귀를 받지 못한다. 반대로 투우사가 잘했다고 생각되면 소의 양쪽 귀를 상으로 받고, 더 잘하면 두귀와 꼬리까지 상으로 받는다.

 

 

◈ 스페인에서 대중적으로 발달한 요리 '하몽'

 하몽은 돼지를 잡아 피를 뺀 후 절여 곰팡이가 피도록 그늘에 말린 고기를 말한다. 하몽 전문식당에 들어서면 그런 돼지를 진열해 두는데, 그 모습이 마치 목욕탕에서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사람을 보는 듯하다. 이 요리는 특히 주로 다리 부분을 잘라 파는데, 그 맛이 아주 독특하고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빠에야 -고기와 해물을 넣은 철판볶음밥 서민음식

 빠에야는 밑이 널고 깊이가 얕은 뚜껑없는 팬을 의미함.

* 만드는법

1.빠에야 팬에 올리브 기름을 두르고 양파와 마늘을 볶아 향을 낸 뒤 미리 볶아 놓은 파프리카, 줄콩 등의 야채와 돼지고기, 닭고기(경우에 따라 토끼고기, 달팽 이도 넣는다)를 넣고 함께 볶는다.

2. 1번에 쌀을 넣고 토마토와 오징어를 납작납작 썰어 올리고, 노란색의 향기짙은 향료 사프란으로 맛을 낸 생선 국물을 부어 약한 불로 밥을 짓는다. 새우, 씨갈라 (작은닷가재의 일종), 홍합, 모시조개로 모양을 내기도 한다.

 

 

 <스페인 여행 도우미>

 주의사항

공원이나 광장 등에 공중화장실이 있기는 하나 시간에 따라 닫혀 있기도 하며, 불결할 뿐만 아니라 여성용이 없는 곳이 많으므로 백화점이나 카페테리아 등에 있는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 남성용은 카바예로스(Caballeros), 여성용은 세뇨라스(Senoras)로 표기된다.

 스페인에는 시에스타(Siesta)라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낮잠을 자는 관습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상점이나 사무실의 업무를 중단하고 잠을 잔다. 관광지에서도 그 시간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사전에 미리 알아보아야 한다.

 동양인들은 많은 현금을 소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곳 범죄인들의 인식임으로 외출시 과도한 현금 지참은 피하고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금고나 호텔에 보관하며, 부득이한 경우 여러곳에 분산하여 휴대하도록 한다.(강탈당하기 쉬운 소형 가방보다도 큰 가방에도 나누어서 휴대)

 여권의 경우도 현금의 경우와 같이 취급하며, 반드시 여권사본(2매 이상)을 별도로 준비 및 외출시 사본 휴대하는 것이 좋다.

 호텔 또는 식당에서 정산시 주위를 잘 살피고 지불은 신용카드를 사용한다.

 숙소에 머물면서 관광을 할 때에는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처럼 일상적인 복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서 외출은 자제하고 낯선 사람의 접근 또는 과도한 친절과 호의를 경계(길을 물어 보는 등 대상자를 산만하게 한 후 소매치기를 하거나, 길을 안내해 주겠다고도 함)

 경찰관을 사칭하는 사람 유의(유사한 경찰 복장차림으로 접근,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면서 현금 및 신용카드 절도를 시도)

 여행지에 대한 사전 정보 및 유의사항, 재외공관 주소를 사전에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한다.

 마드리드시내에서는 수돗물을 직접 마셔도 문제없으나, 바르셀로나는 경수이므로 가급적 생수를 구입해서를 마시는 것이 바람직 하며 카나리아제도의 라스팔마스에서도 수도물에 염분이 포함되어 있어 음료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생수를 마시는 것이 바람직 하다.

 카나리아 제도에서는 때때로 사하라사막의 모래열풍이 불어오며, 이로 인해 특히 아이들이 기관지천식이나 인후계통의 병에 걸리는 예가 많으므로 주의가 요구된다.

 의료사정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나, 의약분업으로 인해,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약국에서 약을 구입할 수 없으므로 상비약은 한국에서 가져가는 것이 좋다.

 

-긴급 연락처

*경찰(전국 공통):☎: 091(국가 경찰), 092(시경찰·교통 사안)

*소방( 〃  ):☎: 080

*주 스페인 대한민국 대사관

☎: 91 353 2000.   Fax: 91 353 2001

 

여행 시기

 스페인은 지역적으로 다양한 기후를 나타내므로 각 계절에 따라 적합한 여행지를 선택할 수 있다. 봄에는 레반테 산악지구와 안달루시아 지방이 좋으며, 여름에는 스페인 중부 및 세비야의 더위는 극심하므로 이곳은 피하는 것이 좋다. 가을에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 전지역이 여행하기에 적합한 기후를 나타내며, 남부 지중해와 접하고 있는 알리칸테, 나라가는 온화한 기후로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마드리드의 경우 4-5월과 10월이 여행 시즌이며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축제가 많은 4-5월이 최적기이다.

 

여행 제안

투우

 코리다 데토로스(Corrida de Toros)라 불리우는 스페인의 국민적 행사로 3월 중순 발렌시아 불꽃축제부터 10월 중순까지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에 개최된다. 특히 성 이시도로 축제(5월15일)를 전후한 2주 사이에는 매일 개최되며, 남부지역의 경우에는 겨울에도 투우경기가 열린다. 경기의 개막은 빛과 어둠이 교차되는 때인 저녁 5시에서 6시사이로 계절에 따라 다소차이가 있다.

 경기장의 좌석은 햇빛을 받는 위치에 따라 Sombra석, Soly Sombra석, Sol석으로 구분되며 가격에서도 차이가난다. 투우 경기는 하루에 3명의 정 투우사인 마타도르가 6마리의 소를 죽이는데, 소요시간은 1마리당 약 20분정도이다. 투우경기의 절정은 마타도르가 얼마나 화려한 솜씨로 소를 즉사시키는가에 달려 있으며, 열광하는 스페인 관중들과 하나가 되는 것 또한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투우 경기에대한 자료는 마요르 광장의 여행안내소나 호텔에 문의 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플라맹고

 안달루시아의 집시예술로 노래와 춤, 반주의 3요소로 이우어져 있다. 그라나다, 세비야 지방이 2대 중심지이며, 아랍과 인도의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타블라오라 불리우는 극장식 레스토랑에서 관람할 수 있으며, 음료수나 식사와 더불어 즐길 수 있다.

 식사를 곁들이면 요금부담이 크므로 경제적으로 플라멩고를 즐기려면 저녁 9시 이후에 입장하여 간단한 음료수를 마시며 관람하는 것이 좋다.

 

 

낮잠을 자는 습관 시에스타(Siesta)

 스페인에는 시에스타(Siesta)라는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낮잠을 자는 관습이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상점이나 사무실의 업무를 중단하고 잠을 잔다. 관광지에서도 그 시간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있으니 사전에 미리 알아보아야 한다.

 

 

스페인 여행회화

안녕하세요? 아침-Buenos dias 부에노스 디아스

                 점심-Buenas tardes 부에나스 타르데스

                 저녁-Buenas noches 부에나스 노체스

감사합니다. - Gracias - 그라시아스

부탁합니다. - Por favor - 포르 화보르

미안합니다. - Perdon - 페르돈

안녕히 가십시오. - Adios - 아디오스

또 만납시다. - Hasta la vista - 아스탈 라 비스타

 

 

관광명소

그라나다(GRANADA) 마드리드(MADRID)바르셀로나(BARCELONA) 톨레도(TOLEDO)

살라망까(Salamanca)세고비아(SEGOVIA) 세빌리아(SEVILLA) 코르도바(CORDOBA)

 

 

아빌라(Avila)

 세고비아에서 한시간, 마드리드에서는 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다. 아빌라는 성벽의 도시답게 구시가가 완전히 성벽에 둘러싸였다. 성벽의 높이는 12m며 전체 성벽의 둘레는 2,526m다.

 그레도스 산맥의 기슭에서 펼쳐지는 고원지대의 완만한 언덕의 사면에 중세의 시벽에 둘러싸인 아빌라가 있다. 해발 1,130m로 스페인의 주요 도시 중 가장 높다. 성녀 대 테레사의 탄생지인 아빌라시를 '성인의 도시'라고 부른다. 아빌라는 해발 1,131m의 높은 위치로 옛날부터 군사적인 요충지로서(높은 성벽이 시가지를 빙 둘러싸고 있음) 회교도와 그리스도교도 간의 300

년 동안이나 공방전을 계속한 곳이며 파괴와 수리를 되풀이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된 것이 1099년이다.

 멀리 떨어져서 보는 성벽과 구시가지 전체는 중세모습 그대로 인데 밤이 되면 성벽들이 조명을 받아 더욱더 아름답다. 만일 일요일에 이곳을 방문했다면 성당의 미사 시간에 참석하면 예배도 보고 성가대의 아름다운 성가도 들을 수 있다.

 역사상 아빌라가 낳은 인물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성녀 테레사(1515~1582)가 있다. 아빌라 대성당(Avila Catedral)과 산타 데레사 수도원(Convento Santa Theresa) 엔카르나시온 수도원(Convento la Encarnacion)등에는 데레사 수녀의 유품등이 모두 간직 돼있다. 아빌라의 중앙광장(성녀 테레사 광장)은 양쪽 길을 따라 바르(Bar)와 레스타우란테(Restaurante)가 많아 밤거리를 즐기는데는 그만이다. 아빌라의 성벽도 꼭 올라가 봐야한다. 성벽은 동쪽과 서쪽이 있는데 4유로를 지불하면 양쪽 성벽 모두를 볼 수 있다.

 저녁 5시 30분이면 문을 닫는다.

 

 

성녀테레사의 생가 성당

 성벽내의 남쪽에 있으며, 그녀가 태어난 생가에 세워진 성당이다. 태어난 방은 바로크 양식이며 예배당으로 되어 있다.

 

 

아빌라 대성당(Avila Catedral)

 아빌라 대성당은 1090년 아빌라 시벽 건설과 함께 알바르 가르시아의 설계로 착공하였다. 공사는 16세기에 들어서서 필역하였으나, 완공되지는 못했다. 건축양식은 로마네스코에서 고딕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양식이 채택되었다. 오랜기간에 걸쳐 축조된 성당 벽은 한눈에 구별되는 여러종류의 벽돌이 사용되었고, 좌측량의 소성당은 후년에 증축된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이 완연하다.

 정면 출입문 왼쪽에 우람한 종각과 쌍종각 위에 왕관탑이 씌워져 있고 오른쪽에는 종탑 부분이 미완성인채로 있다. 산 안드레드 소성당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이 탑은 아빌라 도시 전부를 전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시벽 안팎을 살펴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산타 테레사 수도원(Convento Santa Theresa)

 성녀 대 테레사는 1515년 3월 28일 탄생하여 12세때에 어머니를 잃고 수녀원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뒤 19세 때 길멜 수녀원에 들어가 완덕의 길을 닦기 시작하였다. 성녀는 어느날 성당에서 기도를 하다가 예수께서 매질을 당하시는 장면을 그린 상본을 쳐다보고 또 성 아우구스띠토의 고백록에서 받은 감명으로 수녀원에서 크게 각성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때까지 나의 생활은 나 자신의 것이었으나 그 후부터는 나의 생활은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생활이었다"고 자서전에 적고 있음을 본다.

 

 

 

 

자라고자

삘라르 성모 교회

 이 교회는 1세기에 성모 마리아가 출현한 데서 유래된 교회이지만 건축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17세기이다. 화려하고 장엄한 실내는 한 번 볼만한 가치가 있다. 천장화는 고야와 그 제자의 작품이다.

 

 

 

 

카타드랄

 아라곤 고딕의 걸작이다. 플라테레스코, 쿠데하르, 바로크 등의 각 양식이 혼합된 인상적인 건물이다.

 

고딕 시가지

 구시가 중에서도 까떼드랄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를 특히 고딕 지구라고 하며, 13 - 15세기 경에는 자치 지구로 번영하였다.

 

 

빌바오(Bilbao)

 빌바오(Bilbao)는 우리들에게 생소한 도시이름이다. 스페인 북부지역 바스크 지방의 도시로 현재 빌바오가 인기를 끄는 것은 빌바오에 조성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있기 때문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외형은 굉장히 독특하여 2006년 6월 한국의 모 자동차 선전의 배경지로 채택되기도 하였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스페인의 북부 바스크 자치주 해안도시 빌바오는 원래 문화도시가 아니었다. 오히려 오랜 세월동안 공업도시로 우충충한 냄새를 풍기는 도시로 세계인들에게 인식되어온 도시였다. 그리고 1980년대 급격한 도시 쇠퇴기를 맞는다. 이런 도시에 풍요로운 문화의 바람을 몰고온 것은 1997년 3월 세계 최고 현대미술관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을 유치하고부터이다.

 바스크 자치주의를 외치는 바스크 주정부는 1990년대 초 쇠퇴해가는 빌바오를 되살리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스페인 동부의 까탈루냐 지방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정지로 선정되며 선수를 치고 나고자 이에 비장의 카드를 뽑아든 것이 바로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자는 것이었고, 주정부는 이 미술관 건립에 1억불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으며 현재 그러한 투자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생겨나고 빌바오는 스페인을 여행하는 여행객, 미술학도들에게 문화, 미술의 아이콘적 도시로 변신하는데 대성공함으로써 <스페인의 미술도시>로 자리매김했다.

 시가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네르비온 강가에 자리잡고 있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은 미국 건축가 게리(Frank O. Gehry)가 맡았는데 혁신적인 외관 디자인을 창출해냈는데 사람들은 이를 메탈 플라워(Metal Flower)라 부르며 외관만으로도 환호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인지 이 미술관은 소장품보다도 미술관 그 자체가 구경거리다.

 미술관 전체의 외벽은 물고기 비늘 모양의 0.5mm 두께의 티타늄판 수만개로 제작되어 있는데 100년 이상 지속될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고 한다. 전체 4층의 미술관은 각 층마다 8개에서 10개 정도의 대형 전시장이 있다.

 미술관은 내부는 지나간 50년간의 귀중한 근,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처음엔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시물들이 대부분을 이루었으나 해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기획전 등이 열리며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만의 색깔을 더해가고 있다.

 

 

 

 

 

풍차의 도시, 꼰수에그라(Consuegra)

 올리브 나무와 백포도주 생산이 많은 탓에 길가에 가득한 포도나무를 지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면 큰 풍차 11개가 있는 꼰수에그라(Consuegra)에 도착한다.

 꼰수에그라(Consuegra)는 라 만차(La Mancah)로 알려져 있는 스페인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며 '꼰수에그라'라는 이름은 '마른 땅(dry soil)'이라는 아랍어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에는 총 11개의 엄청난 규모의 풍차가 언덕 등성이 위에 세워져 있고, 여기서 라 만차 평원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모든 풍차는 시(市)의 소유이며 더이상 동력을 생산하는 기능보다는 관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중 한개의 풍차에만 작동 시스템이 돌아가는데 이 지방 축제기간에만 운행하게 되어 있다.

 이곳의 풍차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와 관련이 있다. 소설속에서 돈키호테가 이곳을 지나다가 풍차가 거인인줄 알고 대항해 싸우는 이야기와 결부되어 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이 말하는 돈키호테의 풍차는 꼰수에그라의 풍차가 아니고, 꼰수에그라에서 멀지 않은 캄포 데 크리프타나(Campo de Criptana)에 있는 10개의 풍차라고 한다. 다만, 꼰수에그라의 풍차들도 캄포 데 크리프타나의 풍차와 크게 틀리지 않고 감흥도 유사하므로 두 지역 중 아무 곳에서나 풍차를 감상해도 좋다.

 늘어서 있는 풍차 저멀리에 우나 카스틸랴(una castilla)라는 성이 함께 있다. 이러한 성들은 중부 스페인에 점점히 세워져 있는데, 이런 성들의 존재가 바로 이 지방 이름을 카스틸랴-라 만차(Castilla-La Mancha)로 부르는 계기가 되었다.

 

 

 

론다(Ronda)

 론다(Ronda)는 안달루치아(Andalucia)지역의 말라가 주 높은 지대(해발 750 m)에 있는 인구 약 3만 4천명의 작은 도시로 투우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론다는 말라가 서쪽으로 97km, 알헤시라스 북동쪽으로 102km, 세비야에서 남동쪽으로 147km,  마드리드에서는 남쪽으로 591km 떨어져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천연의 공원과 분화구, 계곡, 평원 등으로 둘러쌓여 있으며, 릴케나 헤밍웨이, 오손 웰스 등도 이 도시를 사랑해 자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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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는 언덕 위의 고대 무어인들의 도시인 언덕의 구시가와 그 아래로 구아달레빈 강(Guadelevin River)의 깊은 계곡으로 갈라져 있는 신시가로 나뉘어져 있다.

 주요 볼거리는 구시가(La Ciudad)에 있으며, 그 중 가장 볼만한 것은 두 타운을 잇는 18세기의 로마 시대 석조 다리인 누에보 다리(Puente Nuevo)로, 150m 높이의 협곡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구아달레빈 강과 계곡의 멋진 전망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이 가파른 협곡은 엘 타호(El Tajo)라 불리우는 유명한 계곡으로, 다리 양쪽에는 집들이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듯 매달려 있다.

 또한 구시가에는 전면이 아름다운 18세기의 궁전과 멋진 아치가 있는 13~14세기의 아랍 욕탕이 있고, 옛 모스크 위에 16~17세기에 세워진 고딕 양식의 산타 마리아 라 마요르 교회, 그리고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몬드라곤 궁전과 우아한 시청사 건물 등이 있다.

 캄필로 광장(Plaza del Campillo)은 타호 계곡의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여기서 크리스토 아치까지 걸어가면 신다리 위의 멋진 전망을 바라볼 수 있다.

 신시가(El Mercadillo)에는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투우장이 있다. 현재 투우경기는 벌어지지 않지만 투우장은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다.

 내부에는 스페인의 가장 잘 알려진 투우사들의 많은 기념물들이 있는 매력적인 박물관이 있으며, 이곳에서 빅토리아 호텔(Victoria Hotel)로 가는 푯말을 보고 따라가면 시인 릴케(Rainer Maria Rilke)이 론다에 있는 동안 머물렀던 방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밖에도 신시가에서는 1785년 필립 5세로부터 40여년에 걸쳐 완성된 옛다리를 볼 수 있다.

 론다는 코스타 델 솔로부터 당일치기 여행지로 유명하며, 도시에는 풍경을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카페들과 레스토랑이 많다. 좁은 골목길에서는 다리와 절벽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론다는 근교의 화이트 빌리지로 가는 거점이 되는 곳으로, 카디즈 근처에 있는 두 곳의 사랑스런 마을 히메나(Jimena)와 카스텔라 데 라 폰테라(Castellar de la Frontera)를 방문할 수도 있으며, 아크로스 데라 폰테라(Arcos de la Frontera)로 가서 그라잘레마와 우부리크의 멋진 산악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절벽과 누에보 다리(El Tajo & Puente Nuevo)

 암벽의 깊은 계곡으로 나누어진 론다의 구시가와 신시가를 잇는 다리로, 누에보 다리(Puente Nuevo)로 불린다.

 론다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로, 18세기에 세워졌다. 원래는 무어인들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13세기의 알모카바르(Almocabar)와 16세기의 카를로스 5세(Carlos V)의 문을 비롯한 흥미로운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아래로 펼쳐지는 아찔한 절경과 함께 구아달레빈 강과 시에라 그라잘레마 평원의 멋진 전망을 조망할 수 있다. 구시가 쪽으로 가서 좁은 산길을 따라 내려가면 그 아래서 더욱 멋진 절벽과 누에보 다리의 전경을 올려다 볼 수도 있다.

 

 

몬드라곤 궁전(Palace of Mondragon)

 1314년 론다의 통치자에 의해 세워진 역사적인 궁전으로, 후에 스페인 군주의 여름 피난처로 사용되었다.

 론다의 가장 소중한 기념비로, 아랍 통치기간 중 모로코 술탄의 아들이었던 아랍 왕 아브 엘 말릭크(Abb el Malik)가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궁전에는 선사시대 무어인들의 문화와 건축, 예술을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1994년 개관)이 있다.

 이 궁전은 또한 냄새로 가득한 꽃들과 다양한 양식의 안뜰과 정원을 갖추고 있으며, 이곳의 테라스에서는 절벽의 멋진 전망을 바라볼 수 있다.

 

 

필립 5세의 아치(The Arch of Philip V)

 1742년 이곳을 통치하던 군주에 의해 세워졌다. 1741년 신다리가 처음 붕괴되면서 시내를 출입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상인들 때문에 시내 출입문를 개량시키기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다.

 다리의 고대 아랍 문은 더욱 커졌고, 스페인 왕국의 보르본 왕조의 첫번째 왕인 필립 5세 통치기간 중에는 문 옆에 돌에 새겨진 비문처럼 시내로 들어가는 실제적인 현관으로 이용되었다.

 이 도시의 상징적인 이 기념비는 정상에 3개의 피나클이 있는 이중의 석조 아치로 이루어져 있고, 외벽은 보르봉과 앙주 왕조의 문장이 장식되어 있다.

 아치에 딸려 있는 돌은 무어인들의 옥좌로 알려져 있다.

 

 

아랍 성벽과 문(Arab Walls and City Gate)

 론다의 바위 언덕 정상에 있는 전략의 요충지이자 방어용 성벽으로 아랍 시기에는 이곳에 도시가 위치해 있었다. 구아달레빈 강 위의 산의 협곡에 의해 자연스럽게 도시의 경계가 분리되어 성벽을 쌓았다.

 이 성벽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 특히 남쪽에 있는 알모카바르 문(Almocabar)이 유난히 눈에 띤다. 이 문은 13세기에 세워졌으며, 그 후 복원되면서 샤를 5세 때는 그 외관도 변모되었다.

 이 문의 이름은 시내의 공동묘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랍어로 "묘지"라는 뜻의 '알 마카비르(Al-maqabir)'에서 따왔으며, 시내로 들어가는 주요 입구 중 하나이자 시내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입구이다.

 

 

아랍 공중 욕탕(Arab Public Baths)

 강 가까이에 있는 아랍 지구의 이 아주 잘 보존된 아랍 온천 욕탕은 거대한 둥근천장을 비롯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13~14세기에 건립되었으며, 로마의 형식을 따라 냉탕, 온탕, 열탕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가장 큰 중앙의 방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진흙과 돌로 된 원주 위로 말발굽 형태의 4쌍의 아치가 별 모양의 채광을 받는 원통형 둥근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살바티에라 마르퀴스 궁전(Palace of the Marquis of Salvatierra)

 상인방 문과 함께 장려한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전면이 있는 이 석조물 궁전은 론다의 역사적인 지구에 위치해 있다. 코린트 원주와 거대한 론다 양식의 발코니가 있고, 전면의 끝에는 부서진 부조물이 있다. 내부에는 인디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남녀 누드상을 볼 수 있다.

 이 궁전에서 로마 다리를 지나 13~14세기의 인상적인 아치가 있는 아랍 욕탕까지 이어지는 산책길이 나 있다.

 

 

산타 마리아 라 마요르 교회(Church of Santa Maria la Mayor)

 원래 론다의 금요 사원으로 13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후에 카톨릭 군주인 페르난도가 이곳을 정복한 후 교회로 전환되었다. 중요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로, 내부의 인테리어는 후기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배합되어 있다. 사원의 첨탑은 종탑으로 전환되었고, 교회 옛 건물에는 아직도 사라진 사원의 두 개의 아치와 여러개의 돔, 설교단 등이 보존되어 있다.

 교회 안에는 높은 제단과 아름답게 조각된 바로크 양식의 성가대가 놓여 있다. 교회는 여름철에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겨울철에는 저녁 6시까지 문을 연다.

 

 

산 세바스챤 교회의 첨탑(Minaret of St. Sebastian)

 성 세바스챤의 첨탑은 이전에는 론다 사원의 작은 타워 중 하나였으나 후에 성 세바스챤 교회를 보이지 않게 하는 종탑으로 사용되었으며, 1931년에는 역사적인 기념비로 지정되었다. 광장에 3단계의 높이로 이루어져 있고, 두개의 1층은 14세기에 세워졌고, 3층은 크리스챤 시대의 것이다.

 서쪽 면은 말발굽 형태의 아치가 있는 문이 있는데, 이곳은 교차 궁륭의 둥근 천장이 있는 작은 방으로 연결된다. 문 위로는 상인방이 있는 벽속으로 연결된 긴 홍예석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상인방은 녹색의 유리 세라믹이 남아 있는 이중의 레이스로 둘러쌓여 있다.

 1층은 마름돌로 지어졌으며, 각 면의 끝은 갑자기 일이 중단된 것처럼 각자 다른 높이로 되어 있고, 나중에 진흙으로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2층은 진흙으로 지어졌고, 중앙 부분은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다.

 이곳에 탑으로 빛을 받게 하기 위한 말발굽 형태의 아치가 있는 두 개의 입구가 있다.

 

 

캄필로 광장(Plaza del Campillo)

 타호 계곡의 머진 전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여기서 크리스토 아치(Cristo Arch)까지 걸어가면 누에보다리의 훌륭한 전망을 바라볼 수 있다.

 

 

투우장(Plaza de Toros)

 론다의 투우장은 1785년에 개장한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중 하나이며 아직도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투우박물관도 함께 마련되어 있어 기사도, 투우 기술의 유래, 론다지역의 투우에 대한 공헌등으로 분류되어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투우의 역사와 투우 장비와 복장, 투우사에 대한 자료와 투우를 소재로한 그림과 각종 자료등이 전시되어 있다.

 

 

 

팜플로나(Pamplona)

 팜플로나는 스페인 북동쪽 피레네 산맥 기슭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과거 요새도시였던 팜플로나는 로마의 장군 폼페이 Pompey 에 의해 건설되었다. 9세기에 이곳은 나바라 Navarra 지방의 중심이 되었으며, 현재는 매년 7월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몰이 축제인 산 페르민 축제 Los Sanfermines 가 행해지고 있다. 이 도시는 요새도시던 만큼 성벽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 도시는 성벽에 올라 바라볼 때 가장 아름답다.

 

산 페르민 축제 Los Sanfermines

 

 매년 7월 6일 부터 14일까지 행해지는 유명한 소몰이 축제로 여섯마리의 소를 매일 아침마다 우리로부터 풀어놓고 올드타운의 좁은 자갈길을 달리게 한다.

 산 페르민 축제 기간 중 가장 마지막날 밤이되면 메인 광장은 촛불로 가득차며 사람들은 바스크 지방의 토속민요를 부르며 파티는 끝이 없이 계속 된다. 이 축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가 "그래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The Sun Also Rises)"라는 그의 소설에 이 축제를 묘

사하면서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해졌으며, 평소에는 꽤나 조용한 도시인 팜플로나가 이때 만큼은 탈바꿈을 한다.

 

나바라 지역의 고고학 박물관 나바라 박물관(Museo Navarra)

 나바라 박물관(Museo Navarra)은 원래 수도원이었던 곳으로 1990년에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스페인의 건축가인 Garces와 Soria가 리모델링 하였으며 나바라 지방의 다양한 예술품들과 고고학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로마식의 모자익과 11세기의 유물들, 이슬람 상아관 등을 볼수 있다.

 

대성당(Cathedral de Pamplona)

 황토 색깔의 돌로 지어진 대성당은 Rio Agra가 들여다 훤히 들여다 보이는 전망을 가지고있다. 이것은 12세기때 지어졌으며 주로 성당의 꼭대기에 있는 두개의 탑을 비롯하여 주로 고딕 스타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로 들어가면 아담하게 꾸며진 성가대 실이 보이며, 카를로스 3세와 Leonor여왕의 석고로 만든 무덤이 있다. 서쪽으로 나오면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있는데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으며 중세풍의 Puerta de la Preciosa가 있다.

 이 대성당의 성직자들은 이곳에서 모여 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드린다. 성당 내부에는 Museo Diocesano 라고하는 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은 원래 14세기때에 성당의 부엌으로 쓰였던 곳이다. 현재는 고딕 스타일의 다양한 제단 장식품과 Navarra전역에서 나온 다색의 목상, 13세기의 프랑스의 성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대성당을 나와서 서쪽 부분에는 많은 계곡을 뚫어 만들어 놓은 유대인 지구가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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