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라크
(Iraq)
|

|
|
1.
국가의 정보
① 국
기(國旗) 이라크의 국기는 상단에서부터 적색, 흰색, 녹색 별,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데 이 네
가지 색은 이슬람에 공통된 색으로 아랍은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적색은 용기, 흰색은 관용, 검은색은 이슬람 전통을 가리킨다. 기는 1963년
7월에 제정되었는데, 1990∼91년의 걸프전쟁에 즈음해서 이 국기에 '알라 - 아쿠반(신은 위대하다)'라는 아라비아 문자를 새겨 넣었다. |

|
이
문자는 우측 부분과 가운데 부분, 그리고 좌측 부분에 별모양을 새겨넣은 독특한 아라비아 문자이다.
국기의 형태는 시리아, 예멘,
이집트의 국기와 유사한데, 시리아의 국기는 별이 두 개 있는 반면에 기호가 없으며 예멘의 국기는 가운데 흰색 부분이 이라크의 국기처럼 넓지 않고
하나의 띠모양을 하고 있다. 이집트의 국기는 흰색 부분에 독수리 모양이 새겨져 있다.
②
국 명(國名)
- 이라크 공화국(Republic of Iraq)
③ 국
가(國歌) 이라크의 국가는 1981년 6월 '공화국의 평화'라는 제목으로 제정됐다. 1절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우리 조국은 저 지평선 위에서 날개짓을 펴고 문명의 빛줄기를 온몸에 받는다. 2개의 큰 강물로 둘러싸인 대지, 여기저기에서
축복을 받은 조국이 영광이 진실로 여기에 있으며 결의와 자비가 충만하다."
④ 수
도(首都) 이라크의 수도는 바그다드(Baghdad)로 AD 762년 압바스 칼리프 왕조의 두번째 왕인 Abu Jafar al-Mansur에 의해
세워졌다. 8∼9세기에는 상업적으로 상당히 번영하여 동서의 많은 무역상들의 중요한 무역 거점지가 됐다. 이 당시에 건설한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은
이 도시가 그 당시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입증하는 한 예이다.
그러나 압바스 왕조가 내분의
권력다툼으로 세력이 약화되고, 13세기에 몽골족이 침입하면서 이 도시의 건물과 관개수로들이 파괴되었으며 이로 인해 이 도시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특히 1534년에 오스만 제국에 이라크가 넘어가면서 바그다드는 몇 백년동안 잊어진 도시로 인식됐다.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고 1952년 헌법이 승인되어서 이라크의 수도로서 바그다드는 비로소 제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이후 석유파동과 걸프전을 거치면서 바그다드는
세계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⑤ 국가의 기원(基源) 이라크는 '메소포다니아'라고 하는 아라비아어인데, 이 뜻은 '강 사이의 땅' 이라는 하는 의미로 그 이름 그대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에 펼쳐져 있다. 고대에는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등의 세계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였지만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된 뒤에는 제 1차
세계대전 후 영국의 지배를 기까지 구미제국의 식민지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1932년에 영국으로부터 이라크 왕국으로 독립한 후 1958년 7월
쿠데타에 의해 공화제가 됐다.
⑥ 화
폐(貨幣)
- 디나르(Dinar : $1=0.3111)
⑦ 언
어(言語)
-
아랍어(공용어), 쿠르드쉬어
⑧ 종
교(宗敎)
- 회교(95%), 기독교(5%)
2.
국토와
지리
| ① 위
치 이라크는 북쪽으로는 터키, 동쪽으로는 이란, 남쪽으로는 쿠웨이트와 걸프, 남서쪽으로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요르단, 북서쪽으로는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현재의 국경선은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이라크와 쿠웨이트, 그리고 사우디와의 사이에
중립지대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은 목축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여러 나라를 마음대로 오고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둘째는 이란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에 있는 Basra 항이 걸프 안쪽으로 치우쳐 있어 항상 분쟁의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1936년부터 1975년 중반까지 국경선은 동쪽으로 치우쳐 있어 이라크의 강 전체와 접해 있었다. 이런 상태를 이란은 승복할 수 없었고
이는 결국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의 주요 발단원인이 됐다.
셋째는 Mosul 지역을 포함한 북쪽지역이 1926년에 경계선이
설정됐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석유자원이 많이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터키·시리아와 국경선 분쟁을 가져왔다.
넷째는 매
계절마다 이란·터키·시리아·이라크로 이민이나 여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다. 그들은 종교적인 이유와 국내의 내분을 피해 다른 나라로 이동해
가기 때문에 상당한 문제로 대두했다. 결국 이라크는 요르단과 1984년에 협상을 개최하여 이라크의 국경선을 뒤로 50㎞ 정도 물리는 것으로
합의했다.
②
면
적 이라크의 전체 면적은 435,052㎢이며 육지 면적은 432,162㎢ 정도된다. 국경선의 총 길이는 3,631㎞인데 이 중 이란과의
국경선 길이가 1,458㎞, 요르단과 181㎞, 쿠웨이트와 242㎞, 사우디 아라비아와 814㎞, 시리아와 605㎞, 터키와 331㎞ 이다.
해안선의 총 길이는 58㎞이다.
③ 지
세 주로 저지대로 이루어진 아라크는 고도가 300m를 넘는 경우가 드물고, 450m를 넘는 지역은 전국토면적의 15%가 채 안 된다.
지형적으로는 이라크 중부와 남동부에 걸쳐 있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충적평야지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북부에
자리잡은 알자지라 고원지대, 서부와 남부의 사막지대, 북동부의 고원지대 등 4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국토의 거의 1/3을 차지하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충적평원지대는 기복이 적으며 자연 배수가 잘 안 되어 소택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평원
북쪽의 메마른 고원지대 알자지라에는 높이가 1,500m 이상인 신자르 산맥이 있다. 이라크 서부와 남부지역은 전체가 광대한 사막지대로 국토면적의
2/5를 차지한다. 서부 사막은 와디·언덕·침강지대 등이 있으며 동쪽에는 덤불식물로 뒤덮인 모래사막이 있다. 국토의 약 1/5을 차지하는 북동부
고원지대는 대부분 산악지대와 저지대 사이의 점이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④ 식
생 림지대는 무제한적인 방목과 집중적인 벌목으로 국토면적의 1/20로 줄어들어 대부분 강 주변에 있다. 산악지대 남서쪽에는 다년생 덤불과
키 작은 관목으로 이루어진 스텝 지대가 있으며 건조지대로 갈수록 가시나무나 다른 내염성 식물들이 눈에 띈다. 강하류 부근의 알쿠르나 아래쪽에
있는 소택지에는 갈대, 키 큰 목초, 사초 등이 우거져 있다.
⑤ 기
후 이라크는 폭넓은 기후대를 보이고 있는데 여름은 더운 편으로 특히 남부 지역은 평균기온이 43℃를 넘어간다. 겨울은 이와는 반대로 기온이
뚝 떨어져 상당히 춥다. 북부지역의 고원지대는 남부지역보다 여름에 서늘한 편이며 습도는 건조한 편이다. 겨울(10월부터 4월까지)에 보통 기온이
급강하하기 때문에 산악지대에는 눈이 종종 내리기도 한다.
도인 바그다드를 포함한 이라크의 중앙지역은 6월에서 8월 사이에 평균
기온이 33.3℃까지 올라가는데 가장 더울 때에는 50.6℃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이와 반대로 겨울에 바그다드의 평균기온은 9.4℃까지 떨어져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이라크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인 Basra의 평균기온은 여름 37℃, 겨울 14℃ 정도이다. 걸프
주위의 남부지역은 습도가 높은 편이며 기온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중에 하나이다.
강우량은 북동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적으로
부족한 편이며 대략 연평균 강우량도 400∼600㎜에 지나지 않는다. 강우는 주로 10월과 5월 사이에 내리며 사막지역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다. 농업은 주로 강으로부터의 관개수로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수로가 없다면 농사를 짓을 수 없다. 그리고 때때로 돌풍이 일어나 경작물을
망치는 경우도 있어 큰 골칫거리이다.
⑥ 시
차 그리니치 천문대 기준시보다 3시간 정도 빠른 편이다. 한국과 비교해서는 시차가 6시간 정도 나기 때문에 바그다드의 정오는 한국의 6시와
동일하다. 4월에서 9월까지 하계시간은 1시간 정도 빠르기 때문에 시차가 5시간 난다. 국내시차는 없다.
⑦ 인구와
민족
아랍인과 아랍화된 주민들이 중부와 남부지역에 압도적으로 살고 있으며, 이들은 전체 인구의 약 3/4를 차지한다. 소수민족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쿠르드족은 이라크 전 인구의 1/5 가량으로 여전히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사용하며 북동부 고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쿠르드족의 인구는 대략 3.5백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웃 시리아·터키·이란으로 피난을 가 있는
실정이다.
북부의 쿠르드인과 남부의 시아파인들은 이라크 민족분쟁의 주요 원인을 제공하는 민족으로서 지금도 원만한 관계가 수립되어
있지 않고 있다. 이들 민족은 자신 민족만의 독립을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라크 정부와 무력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
① 인
구 이라크의 전체 인구는 2242만 7000명으로 평가된다(1999). 인구성장률은 상당히 높은 편으로 1980∼90년에 3.6%를
기록했지만 외국 근로자의 이민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1990년 이후 줄어들고 있다. 출생률도 높아서 1994년 현재 인구 1,000명당
44.11명이 태어나고 있으며, 인구 가운데 45% 이상이 15세 미만이기 때문에 경제제재조치가 해제되면 즉각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메소포타미아 평원의 기름진 평야지역과 정부가 있는 바그다드는 다른 지역보다 인구성장률이 높은 편이며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에서 부유한 저지대나 도시지역으로 이주해 가는 것이 일반적인 이라크의 현상이다. 수도 바그다드와 수도 근처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 3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인구조사에서 드러났다.
이라크 인구의 약 73%는 도시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도시
인구의 연평균증가율은 1960∼92년에 5.2%에 이르는 것으로 유엔 조사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1988년 인구조사에서 나타난 주요 도시의
인구를 알아보면 수도 바그다드가 5.3백만 명, 바스라가 1.4백만 명, 모슬이 1백만 명인 것으로 발표됐다.
1995년 현재
연령별 인구분포를 보면, 0∼14세가 48%를 차지하는데 남자가 5,009,513명이고 여자가 4,850,028명 정도 된다. 15∼64세까지의
인구는 전체 49%를 차지하는데 남자가 5,125,191명이고 여자가 5,021,710명이다. 그리고 65세 이상 인구는 3%를 차지하는데
남자가 298,537명, 여자가 338,790명 정도 된다.
② 민
족 라크는 민족적으로 상당히 복잡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이라크가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북부와
동부지역의 고원에는 터키인·페르시아인·북유럽인·아랍인의 여러 민족이 살고 있다.
이라크에는 이슬람교도가 인구의 95%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슬람교도 가운데에서도 시아파가 전체인구의 54%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니파는 정치·경제적으로 많은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전체
인구의 단지 42%만을 차지한다. 이라크의 시아파는 아랍인과 소수의 투르크멘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슬람계 주민 가운데 나머지인 수니파는
아랍인 터키인·투르크멘족·쿠르드족으로 이루어진다.
이라크에서의 민족융합은 다양한 종교만큼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아랍인 외의
다른 민족은 오스만 제국시대에 주로 들어왔는데 가장 최근에 이민 온 노동자들은 모르셔스, 이집트, 수단으로부터 온 민족이 다수를 점한다.
1980∼88년 8년간의 이란·이라크 전쟁 때에는 외국 기술자의 수가 2백만 명을 넘을 정도로 많았으며 이 수치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1백만 명으로 감소했다. 이라크를 떠난 대다수는 침공 1년 동안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라크와 이집트 간의 관계악화와 전후
이라크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었다.
③ 민족분쟁 이라크의 1992년 현재 인구 1천 7백 50만명 가운데 수니파와 함께 회교도를 양분하고 있는 시아파 회교도는
체인구의 55%인 9백 62만 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라크 내 시아파 회교도수는 세계 최대인 인접국 이란 다음으로 많다. 특히 세계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수니파 회교도가 이라크 내에서는 소수이나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그의 집권세력들은 모두 수니파로서 현재의 이라크를 지배하고
있다.
회교에서 시아파와 수니파로 분리된 것은 7세기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근대 이라크에서 분파됐다. 이라크에서의 이같은 분파는
이라크를 현재 전세계 시아파 회교도 1억의 정신적 중심지 만들었다. 시아파의 창시자인 알리를 비롯 고위 성직자 대부분은 시아파 회교도 다수가
거주하고 있는 이라크 남부지역에 묻혀 있다.
지난 1991년 걸프전 종전 당시 시아파 반란분자들이 인접국 시아파들로부터의
지원없이 후세인 대통령에 대항, 봉기했으나 정부군에 의해 진압됐다.
시아파 소속 약 20만 명의 반란분자들은 이라크 정부군에
몰려 탱크와 지상군의 접근이 어려운 남부 이라크의 늪 지대로 도주했다. 이들이 도주해버리자 후세인 대통령은 늪 외곽지대에 군병력을 집결시켜 이
지역에서 도로를 건설하기 위한 대규모 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또 이라크는 유엔의 종전규정을 위반, 이 지역 시아파 회교도들의 마을과 난민
거주지에 대해 폭격을 감행한 것으로 보도됐다. 걸프전 후 유엔은 이라크가 군사적 비행과 국민들에 대한 탄압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
이라크의 역사
이라크는 확실히 인류문명의 요람이었다. 그리고 이라크의 고대에 뿌리를 둔 다채로운 역사는 인류역사의 주요한
전환점이었다. 예를 들어 글쓰기가 처음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됐고 예술과 입법이란 것도 이 문명에서 처음 시작됐다. 인류에 의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수메르인, 아카디아인, 바빌로니아인, 히타이트인, 아스리안인들이 모두 이땅을 거쳐가면서 가장 위대한 문명을 창출해냈던 것이다. 고대
이라크 인들은 가장 독특한 건축과 문학을 인류에게 남겼다. 후세에 페르시아, 무슬림 아랍, 터키 그리고 영국이 이 땅을 거쳐갔다. 현재 이라크가
문화와 지리상으로는 아랍국가일지라도 이 나라의 독특한 특성은 이라크 사회의 다채롭고 다문화적인 여러가지 측면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
1. 고대 및 중세
ㅇ 고대 MESOPHOTAMIA 문명의 발상지
ㅇ B.C. 2400년경, SEM족계의
아카디아인(AKKADIANS)이 정착하여 시리아, 페르샤만까지 지배
ㅇ B.C.1800년경,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한
바빌론(BABYLON)왕국 건국

ㅇ B.C. 539년, PERSIA의 사이러스(CYRUS)대제가 신바빌론 제국을 정복한 이래 이란족의
통치가 약 1000년간 계속됨
ㅇ 762년, 압바스 왕조(ABBASID FAMILY)가 CALIPH좌를 차지 BAGHDAD를 새 도읍으로
결정
ㅇ 1258년, 몽고족이 침략
ㅇ 1638년 이후 OTTOMAN TRUKEY의 통치하에 있다가 제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터키에
대한 반란과 함께 민족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음.
|
|
2. 근대(Hashemite 왕조)
ㅇ 영국은 제 1차 세계대전중
불란서와의 비밀협정(Sykes-Picot협정, 1916. 3) 체결후 대전후에도 이라크에 대한 지배권을 계속 행사하려했으나, 漸高하는 아랍
민족주의 세력대두를 무마하기 위해 1921.8.23. Hashem가의 Faisal을 초대 국왕으로 하는 입헌군주제 이라크 왕국을
탄생시킴
ㅇ 1932. 10. 3. 독립이후 제 2차 세계대전까지 각 정당간 주도권 쟁탈전 등으로 이라크의 정치정세는 지극히
불안하였음.
ㅇ 제 2차 세계대전중 전권을 장악한 Murial-Said 입헌통일당 당수는 정치적으로 아랍 6개국과 아랍연맹을
결성(1945년), 영국과의 상호원조 방위조약체결(1948년), Baghdad Pact가입(1955년)등 친서방 정책을 추구하고 대규모
개발정책실시를 통해 번영을 꾀하였으나, 전후불황과 정치적 불안 등으로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게되자 정당활동을 금지 시키고 군부중심의 독재정치를
1958년 실각 시까지 계속
ㅇ 1958. 7. 14. Qasim 준장을 주동으로하는 쿠데타에 의하여 Hashemite 왕조가 폐지되고
공화국이 수립됨.
3. 현대
① 공화국 정부
② 현 Baath당 정부 수립
③ 이란.이라크
전쟁
④ 걸프전쟁
⑤ 2003년 미국/이라크 전쟁
|
|
◈
이라크 여권, 비자정보 |
|
ㅇ 이라크는 외국인들의 입국을
엄격히 규제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라크 거래선을 통해 사전 입국비자를 알선받아야 함.
< 비자취득 절차 >
o
거래관계가 있는(또는 상담예정인) 민간수입상(국영기업)에 비자 발급 수속의뢰. 이라크거래선은 신원보증서 등 필요서류를 작성하여
무역부, 산업부 등 관련부처에 비자발급 신청서를 제출
o 관련부처는 비자발급신청서를 심사후 요르단 암만의 이라크공관 앞으로
비자 발급지시 텔렉스 타전
o 입국희망자는 암만 이라크공관에서 거래선으로부터 사전입수한 텔렉스 타전번호 (일자포함)를 제시하고
비자스탬프를 받음
* 비자발급수수료 : 약 $80 (사진 2매 필요)
* 비자스탬프 소요시간 : 오전 일찍 여권제출시 당일
12:30경발급됨(금요일 휴무)
<소요 기간 >
o 통상 2주 이상 소요되며, 비자발급이 거부되는 경우도
있음
< 이라크내 거래선이 없을 경우 >
o 거래관계를 희망하는 이라크업체를 접촉하여 비자알선을 의뢰함
< 유의 사항 >
o 이라크 입국을 위하여 암만으로 출국하기 전에 이라크 의뢰업체로부터 비자텔렉스
타전번호를 반드시 확인한 후, 출국하여야 함
* 번잡한 승인절차 때문에 비자발급이 예상보다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
o
입국후 비자유효기간은 10일 이며, 연장희망시는 이민국에 가서 절차를 밟아야 함
|
|
◈
이라크 입국절차
|
|
1. 입국비자 취득
이라크는 외국인들의 입국을 엄격히 규제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라크 거래선을 통해 사전
입국비자를 알선받아야 한다. < 비자취득 절차 >
ο거래관계가 있는(또는 상담예정인) 민간수입상(국영기업)에
비자 발급 수속의뢰. 이라크거래선은 신원보증서 등 필요서류를 작성하여 무역부, 산업부 등 관련부처에 비자발급 신청서를 제출
ο관련부처는 비자발급신청서를 심사후 요르단 암만의 이라크공관 앞으로 비자 발급지시 텔렉스 타전
ο입국희망자는 암만
이라크공관에서 거래선으로부터 사전입수한 텔렉스 타전번호 (일자포함)를 제시하고 비자스탬프를 받음
* 비자발급수수료 : 약 $80
(사진 2매 필요)
* 비자스탬프 소요시간 : 오전 일찍 여권제출시 당일 12:30경 발급됨
(금요일 휴무)
<
소요 기간 >
통상 2주 이상 소요되며, 비자발급이 거부되는 경우도 있음
< 이라크내 거래선이 없을 경우
>
거래관계를 희망하는 이라크업체를 접촉하여 비자알선을 의뢰하여야 함
< 유의 사항 >
ο
이라크
입국을 위하여 암만으로 출국하기 전에 이라크 의뢰업체로부터 비자텔렉스 타전번호를 반드시 확인한 후, 출국하여야 함
* 번잡한
승인절차 때문에 비자발급이 예상보다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
ο
입국후 비자유효기간은 10일 이며, 연장희망시는 이민국에 가서
절차를 밟아야 함
2. 입국 방법
ο
유엔제재로 항공로가 폐쇄되었기 때문에 요르단에 일단 입국한 후,
이라크 암만공관에서 비자스탬프를 받고 육로로 입국한다.
* 암만-바그다드 거리 : 약 900km
* 출국전에 광화문
현대화재해상빌딩 9층에 있는 요르단명예총영사관을 방문, 더블비자(서울-요르단 입국 ,이라크-요르단 재입국)를 취득하는 것이
바람직. 암만공항에서도 취득 가능하나, 서울에서 받는 것이 보다 편리
< 암만 체류 및 비자취득 >
ο
비자취득관계상 암만 1박이 필요함
- 권장 투숙호텔 : Gondola Hotel(Tel : 551-5656, Fax:
5528847,
Email: gandol@go.com.jo
* 호텔예약시 바그다드엠버시라고 하면, 50% 디스카운트 : 싱글
약25불(비수기)
- 암만공항->호텔 : 12요르단디나(약 17불) * 사전에 가격을 확정하고 타는게 좋다.
(유의사항) 공항에서 나오면 중간 호객꾼을 피하고 직접 택시승강장으로 가서 탑승할 것(호객꾼들은 과다한 팁을 요구하는 것이 관례임)
< 비자스탬프 취득 >
아침 일찍 이라크공관에 가서 여권제출하고 신청하면 12:30경 발급되며, 발급과 동시에
대기시켜 놓았던 국경택시를 타고 바그다드로 출발하면 된다.
< 입국 교통편 >
ο
통상 요르단의 GMC VAN
택시를 이용(국경수속까지 포함하여 약 10시간 소요)
ο
국경택시 이용방법 : 직접 택시회사에 전화를 걸어 가격 흥정 후
체류 호텔로 픽업요청(택시들이 남아 돌고 있으므로 얼마든지 가격흥정 가능함)
* 호텔종업원 등을 통해 접촉시는 커미션이
붙으므로 직접접촉 바람직
* 암만무역관에(전화:568-4253) 택시예약을 요청할 수도 있음 (권장 택시회사)
-
Al-Atara 모빌폰 079-558357, - Thaer 모빌폰 079-578452
(기준 가격)
- 운전수 1인 고용시 :
$140-$150
- 운전수 2인 고용시 : $160-$200 (야간 출발 등 안전운행 필요시)
3. 국경통과 수속
ο
에이즈검사 : 정부 공식초청비자가 아닐 경우, 에이즈검사가 의무적이며 검사비는 $50. 때에 따라서 국경관리들이 접근하여
커미션을 받고 면제스탬프를 찍어 주기도 함.
ο
반입금지 품목 : 휴대폰(국경에 영치시켜 놓아야함)
ο
신고 의무품목 :
카메라, 휴대용 컴퓨터
* 신고데스크에서 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며 출국시 재반출 신고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므로 가급적
미소지가 바람직
ο
특기 사항 : 여러 가지 명목으로 국경근무자로부터 팁을 요구받는 경우가 있으나, 원칙적으로 팁을 줄 필요가
없으며, 이 경우 택시운전수에게 문의하여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함
4. 바그다드 도착
ο
바그다드
도착지 : 만수르 주차장
* 주차장에서 부터는 일반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해야 함(약20분 소요)
* 택시비 : $2-3
이내(반드시 사전에 가격을 합의하고 타야 하며, 처음오는 외국인들에게 바가지 씌우는 경우가 다반사)
◈
이라크 세관, 검역정보
▷
국경통과 수속
ㅇ 에이즈검사 : 정부 공식초청비자가
아닐 경우, 에이즈검사가 의무적이며 검사비는 $50. 때에 따라서 국경관리들이 접근하여 커미션을 받고 면제스탬프를 찍어 주기도
함.
ㅇ 반입금지 품목 : 휴대폰(국경에 영치시켜 놓아야함)
ㅇ 신고 의무품목 : 카메라, 휴대용 컴퓨터
* 신고데스크에서
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며 출국시 재반출 신고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므로 가급적 미소지가 바람직
ㅇ 특기 사항 : 여러
가지 명목으로 국경근무자로부터 팁을 요구받는 경우가 있으나, 원칙적으로 팁을 줄 필요가 없으며, 이 경우 택시운전수에게 문의하여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함
|
|

|
이라크 고대 문화유적
|
| 메소포타미아문명의 발상지이자 ‘천일야화’에 나오는 신드바드의 고향인 이라크. 수메르와 함무라비 법전, 아시리아 등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통해 익숙한 곳이기도 하다. 미국과 영국의 대이라크 공격이 임박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라크에는 평범한 언덕이
하나도 없다. 당신이 언덕을 본다면 그것들 대부분이 고대 촌락이나 고분임을 기억해 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과거 이라크는 세계문화의 중심이기도
했다.
‘낮은 땅’ 또는 ‘떠오르는 태양의 바다’라는 뜻을 가진 이라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태어나 꽃을 피운 문명의 땅이다. 메소포타미아란
그리스어로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두 강 사이의 들녘이란 뜻이다. 두 강이 남쪽으로 흐르면서 가져다 준 비옥한 충적토가 부(富)의 기반을 이루면서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 문명이 등장했다. |

|
미국의 고고학자 새뮤얼 크레머가 수메르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발견되고, 기록된 것이 최초의 낙원설화 창조설화 서사시 학교 의회제도
설형문자 법전 등 무려 39가지나 된다며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됐다’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고 있다.
수메르 왕국은 도시국가 형태였다. 그 중심 도시로는 이라크 남부의 우르, 우루크, 니푸르 등이 있었으나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현장에는 허물어진 채 나뒹굴고 있는 흙벽돌 더미와 1970년대 복원한 지구라트(피라미드 형태의 축조물)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메르 문명이 태어난 이라크 남부지역이 공교롭게도 성서에서 인류의 탄생지로 그려진 에덴동산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태어나 자란 곳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만큼 이라크는 성서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은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수메르의 중심도시 우르에서
태어났다.
이렇게 번영하던 수메르는 기원전 1900년경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역사에서 사라졌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함무라비법전을 편찬한 함무라비
대왕을 비롯하여 여러 걸출한 군주들을 배출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네부카드네자르 대왕(재위 기원전 695∼기원전 562)인데, 그는
왕도(王都) 바빌론에 대 성벽을 쌓고 산간오지가 고향인 왕비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공중정원(건물의 옥상에 조성한 정원으로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을 축조했으며 대운하를 건설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 건축 사업을 벌였다. 또 성서에 ‘신에 대한 모욕’ ‘인간 허영의
상징’으로 묘사된 바벨탑은 그에 의해 복구되어 바빌론을 빛내고 있었다.
바빌로니아 제국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메소포타미아 북쪽에는 광대한 영토를 거느린 아시리아 제국이 있었다. 역사에선 이를 세계 최초의
제국으로 기록하고 있다. |

|
제국의 두번째 도읍지였던 니네베(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 한가운데 위치) 왕궁 터에선 ‘나는 강력하다. 정말로
강력하다. 모든 왕 중에서 나와 견줄 자는 아무도 없다’며 자신만만했던 아슈르바니팔 대왕의 기세가 그대로 나타나 있는 ‘아슈르바니팔 대왕의 사자
사냥도’가 발견되기도 했다.
아시리아 제국의 마지막 왕도 님누드 유적 또한 제국의 힘을 느끼게 한다. 허물어지긴 했으나 왕궁 터와 그 정문을 지키던 ‘라마스’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에 독수리의 날개를 단 황소상’을 뜻하는 라마스는 한마디로 말해 수호신상이다. 정문 앞에 두 쌍을 세워놓아
위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변변한 보호를 받지 못해 퇴락한 모습이긴 하나 이 정도만으로도 번성했던 그 옛날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하긴 3000여년 전의 일인데 더 이상 얼마나 번쩍거리겠는가.
그 후로도 이라크 땅엔 로마제국과 힘으로 맞섰던 파르티아 제국이 들어섰고 이슬람의 두번째 왕국인 아바스 왕조는 흙탕물을 튀기며 남쪽으로
거세게 흐르는 티그리스 강변에 외벽 주벽 내벽 등 3중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원형(圓形)의 도시를 새로이 건설하고는 수도로 삼았다.
바그다드가
그곳이다. 이슬람 왕조였던 만큼 알라에게 감사와 구원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도시 한가운데에다 황금빛을 발하는 돔(dome)을 머리에 인 ‘알
만수르 모스크’를, 그 옆에는 칼리프(이슬람 왕조의 왕)의 궁전인 금문궁(金門宮)을 각각 세웠다. 길은 이곳을 중심으로 격자형으로 뻗어 있어
동서남북 어느 곳이나 똑같은 거리를 유지했다. 그것은 이슬람의 평등정신을 상징했다.
바그다드는 아라비아 지역의 이야기 모음집인 ‘아라비안나이트’가 쓰여진 곳인데다 ‘알 미르바드 시(詩) 축제’도 열려 ‘시인이 없는
나라에서는 결코 위대한 군주가 나올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을 정도로 이슬람 문화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의학 천문학 과학 수학에서도 최고
수준을 구가했다. 또 무하마드의 후계자인 후세인과 알리가 순교한 땅이라 이라크는 시아파 이슬람의 성지라는 영광까지 누리고 있다.
황량한 사막같이 보이는 이라크 땅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인류의 문명사와는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
사진설명
|
①
세계최대 미나레트-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20㎞ 거리에 있는 사마라(압바스 왕조시대 한때 수도였다)에는 나선형 구조의
대형 미나레트가 서 있다. 미나레트는 기도시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은 모스크의 부속 건물인데 사마라의 것은 외형이 특이하며, 높이가 36m나
돼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한다.
②
수메르의 지구라트- 수메르 문명의 실재를 증명하는 우르의 지구라트. 우르는 아브라함이 태어나 자란 곳으로도 유명하다. 기단
벽면에는 걸프전 때의 탄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20세기 초 영국의 고고학자 레오나르도 울리는 인근 왕묘에서 4500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군기(軍旗)와 하프, 황금 장신구들을 대거 발굴했다.
|

|
|
③
카드마인 성전- 바그다드의 카드마인 성전. 두 개의 돔과 미나레트의 상단부가 황금으로 도금돼 있어 성전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
④
바빌론의 말- 바빌론의 이시타르 성문에 붙어 있었던 광택나는 타일로 만든 말의 모습.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소장.
|
⑤
수호신상- 이라크 북부도시 모술의 남쪽 교외에 있는 님누드 궁전 유적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수호신상 ‘라마스’. 늘 쌍을
이루고 있다.
⑥
수메르의 왕- 수메르 시대의 왕의 조상(彫像).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소장.
⑦
하트라의 인물상- 이라크 유일의 세계문화유산인 하트라 성. 기원전 1세기 파르티아 제국이 사막에 세운 캐러밴 도시
하트라에는 특이한 인물상이 새겨진 왕궁 신전이 남아 있다. 인물상 아래의 문자는 예수 시대의 일상어로 쓰였던 아람어다.
⑧
니네베의 성문- 니네베 성을 감쌌던 13㎞ 남짓한 성벽에는 15개의 성문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남문
격인 시마시 성문으로 최근 옛 모습을 되찾았다. 19세기 말 성문 뒤의 퀸지크 언덕에서 ‘아슈르바니팔 대왕의 사자 사냥도’가 발견됐다.
⑨
이시타르 성문- 바빌론 도성의 정문이었던 이시타르 성문. 벽면에는 바빌로니아인들이 성물(聖物)로 삼았던 여러 동물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70년대 초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복원한 것으로 진짜 성문은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다.
⑩
세계 최초 아스팔트 도로- 바빌론의 남궁전(南宮殿) 앞으로는 너비 20m의 축제도로가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세계 최초의 아스팔트 포장도로로서 석유의 매장 흔적은 그때 이미 나타났던 것이다. |

|
|

|
⑪
세계최고(最古) 아치형 건물- 바그다드 근교의 크테시폰이란 곳에 서 있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아치형 건물인 ‘타크 이
키스라’. 3세기 중엽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궁으로 사용됐다.
|
1.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세미라미스 공중 정원(空中庭園)- Hanging Gardens of Babylon
|
|
BC 500년경 신(新)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하여 수도인 바빌론에 건설한
정원이다.
|

|
BC 500년경 신(新)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왕비 아미티스를 위하여 수도인 바빌론에 건설한
정원이다.
실제로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높이 솟아있다는 뜻이다. 지구라트에
연속된 계단식 테라스로 된 노대(露臺)에, 성토하여 풀과 꽃, 수목을 심어놓아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삼림으로 뒤덮인 작은 산과 같았다고 한다.
유프라테스 강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물을 댔다고 전해진다.
|
|
이곳은
사막기후로 인공적으로 정원을 조성해야만 한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왕비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서 공중 정원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바빌론의 왕이 되자
메디아 왕국의 키약사레스 왕의 딸 아미티스를 왕비로 맞았다. 산이 많아 과일과 꽃이 풍성한 메디아에서 자란 왕비는 평탄하고 비가 잘 오지 않는
바빌론에 마음을 두지 못한 채 항상 아름다운 고향의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였다.
|

|
|
이 모습을 보고 안타깝게 여긴 왕은 왕비를 위하여 메디아에 있는
어떤 정원보다도 아름다운 정원을 바빌론에 만들기로 결심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재주가 뛰어난 건축가, 기술자, 미장이들은 곧장 작업에
들어가 왕궁의 광장 중앙에 가로·세로 각각 400m, 높이 15m의
토대를 세우고 그 위에 계단식 건물을 세웠다. 맨 위층의 평면 면적은 60㎡에 불과했지만 총 높이가 105m로 오늘날의 30층 빌딩 정도의
높이었다.
|

|
한 층이 만들어지면 그 위에 수천톤의 기름진 흙을 옮겨 놓고 넓은
발코니에 잘 다듬은 화단을 꾸며 꽃이랑 덩굴초랑 과일 나무를 많이 심도록 한 이 파라미드형의 정원은 마치 아름다운 녹색의 깔개를 걸어놓은 듯이
보였다. 그런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이 곳에서 이렇게 큰 정원에 물을 대는 것은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은 정원의 맨 위에 커다란 물탱크를 만들어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펌프로 길어 올리고 그 물을 펌프로 각 층에 대어줌으로써 화단에 적당한
습기를 유지토록 하였으며 또한 그때그때 물뿌리개를 이용하여 물을 공급하도록 하였다.
정원의 아랫부분에는 항상
서늘함을 유지하는 방을 많이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창 너머로 바라보는 꽃과 나무의 모습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한다. 또한 방에 물이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방 위에는 갈대나 역청을 펴고 그 위에 납으로 만든 두꺼운 판을 놓았다.
바빌론은
현재 부서진 잔해 위에 약간 복원을 했을뿐 공중 정원에 대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지만 바빌로니아 왕국의 수도 바빌론의 페허는 오늘날까지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