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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수도. 면적 83㎢. 인구 990만 1000(1996).
나일강 델타 남쪽끝으로부터 25㎞ 남쪽의
서아시아·아프리카·유럽을 잇는 요지에 자리한 이집트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아랍 세계와 아프리카대륙 최대의 국제도시이다.
아라비아어로
알카히라(Al-Qāhirah)라 한다.
기후는 연강수량 25㎜의 사막기후지만 대인구가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나일강의 혜택 때문이다. 여름은 7월
평균기온이 27.7℃이고 습도는 낮다. 겨울은 1월 평균기온이 12.7℃로
비가 오거나 흐리지 않으면
따뜻하고 쾌적해 유럽으로부터의
관광객이 모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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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초여름에는 하무신이라고 하는 모래 섞인 열풍이 남쪽 사막에서 불어온다. 1년 내내 지중해로부터 북풍이 불기 때문에
중공업지대는 남쪽 교외에 자리잡고 있다.
이집트 최대의 공업도시로 제1차
세계대전 후
발달한 방적·식품가공 등의 경공업 외에 철강·조선·철도차량·화학비료 등의 중공업과 석유정제·석유화학 공업이 발달하였고, 수에즈의 정유공장과는 파이프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19세기 말 57만
명이었던 인구는 1922년
이집트 독립 후 급격히 늘어 오늘날 연
4% 이상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낸다. 중동전쟁 후 복구가 미흡하여 주택부족·교통체증·전화회선 부족·학교시설 부족 등 도시생활 기반이 악화되었고,
식료품·생필품 부족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시지역은
나일강 델타의 2대 지류 분기점 바로 상류에 있고, 주로 나일강 오른쪽 연안 일대와 중간의 섬인
게지라섬·로다섬 및 왼쪽 연안을 따라 펼쳐져 있으며, 최근
인구 증가로 북쪽 및 남쪽
교외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시내는 전통적인 구시가지와 유럽식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구시가지는 남쪽의 올드 카이로에서 동쪽의 모카탐 구릉 기슭으로 펼쳐진 이슬람지구까지의 구역으로, 낮은 벽돌집·바자·수공업공방이 섞여 있다. 콥트교회와 알 아즈하르모스크·술탄 하산모스크·마호메트 알리모스크 등 각 시대의 모스크와 옛궁전 시타델이 있어 역사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신시가지는 운하를 매립하여 만든 포트사이드 거리에서 서쪽 나일강을 따라 펼쳐진다.
타하릴거리와 람세스거리 사이가
시내 중심지이며, 부근에 정부청사·시청·중앙우체국·항공회사·호텔·중앙시장·버스터미널(타하릴 광장) 등이 있다. 학술문화시설로
투탄카멘의 황금 관(棺)으로
알려진 이집트박물관·카이로대학·아메리카대학 등이 있다. 오른쪽 연안의 가든시티·게지라섬의 자말리크,
남쪽의 마아디, 왼쪽 연안의
두키, 공항도로에 잇닿은 헬리오폴리스는 중·고급 주택지이다. 람세스중앙역 북부의
슈브라는 공장이 섞인 노동자주택지이다. 구항구 거리 블라크는 구시가지의 올드 카이로·이슬람지구와 같이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다. 북부의
람세스중앙역은 국내철도 터미널이다. 카이로 국제공항은 북동쪽 약 30㎞의 사막 속에 있다. 또 남서쪽 약
5㎞에 3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로 유명한 기제가
있다.
642년 아랍군을 인솔한 아무르 이븐
알아스는 나일강 동쪽 연안에 군영도시 푸스타트를 건설하여
이집트 통치 거점으로 삼았다. 이어 870년 반독립왕조를 수립한
아흐마드 이븐 투른은 푸스타트 북동쪽 약 2.5㎞ 지점에 그의
이름을 딴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신도시 카타이를 건설하였다.
969년 다시 이집트를 공략한 파티마왕조 제4대 칼리프 무이즈는 카타이에서 북동쪽 약 2.5㎞ 지점에 동서 약
0.9㎞, 남북 약 1.2㎞의 성벽으로 둘러싼 신도시를 건설하고 카히라(승리자)라 이름붙였다. 현재 카히라는 카이로의 구시가지이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시가지는 많은 지구(하라)로 구획되었으며, 이
하라는 모스크·시장(스쿠)·공중목욕장(한마무) 등을 갖춘 도시민의 최소 생활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사라흐
알딘(살라딘)은 방위상
목적으로 카히라 남쪽 약 1.5㎞, 카타이 동쪽 약 1㎞ 구릉 위에 성채를 구축하였고, 그 뒤 아이유브왕조·맘루크왕조 시대에 시가지 구획은 남서쪽 카타이방면으로
확장되었다. 이리하여 이
시대의 카이로는 당시 이미 쇠퇴한 바그다드를 대신하여 이슬람세계 제일의 도시로 번영하였다.
《아라비안나이트[千一夜話(천일야화)]》에 그려진 카이로는 번영기의 바그다드와 바흐리 맘루크왕조시대의 모습이라고
한다. 1517년 세림1세에 의한 정복 후 이집트는 오스만제국의 속주가 되어 카이로도 번영을 잃었으나, 시가지는 여전히 서쪽으로
확장되었다. 나폴레옹 원정 후 마호메트 알리왕조 아래에서 근대국가 건설의 일환으로 카이로의 도시계획이 세워져 시가지의 대폭적인 확장이 이루어졌다. 특히 이스마일시대 이후 구시가지에서 서쪽 나일강에 이르는 지역, 나아가 나일강 서쪽 연안까지 빌딩이 들어선 근대도시 카이로가 출현하였다. 카이로의 확장은 이집트 인구의 증대와 도시화 현상을 가져왔고, 1952년 혁명 후의 공화국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이리하여 카이로는 구카이로(푸스타트)뿐 아니라 나일강 서쪽 연안의 신주택지구 기제·도키·아그자와, 부도심 헬리오폴리스 등을 포함한 메갈로폴리스(거대도시)가 되었다. 현재 카이로는 아랍세계 제일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이며, 동시에 과밀과 슬럼화 문제를 안고 있는 전형적인 개발도상국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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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일강 크루즈(Nile Cr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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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파라오의 숨결을 느껴보고자 하는 것은 당연지사인지도 모른다. 이런 이들에게는 나일강의
크루즈를 경험해 보는 것은 추천할만하다. 물론 지금이야 항공기로 이집트의 남쪽지방까지 쉽게 갈 수 있지만 고대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나일강이
강쪽으로 뻗쳐있는 사원과 신전을 방문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고대 이집트 지역을 방문하는 일반적인 교통수단이며, 그외에도
보다 느긋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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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월 중순이 되면 해수면이 얕아져서 운행을 일시 중단하게 되며, 나일강
크루즈를 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10월에서 4월 중순까지로 이 때에는 날씨가 청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연중 운행한다. 일반적인 크루즈는
3~4박 코스에서 7박 코스까지 다양하게 있으며, 이러한 단기 여행의 경우 보통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 운행을 한다. 가장 짧은 코스는 나일강을
따라 이집트 전통식사를 하면서 벨리댄스와 이집트 민속쇼를 관람하는 코스로 보통 2시간 소요되며, 비용은 USD $50 정도이다. 박당 약
$300 정도를 하며 계절별로 25%에서 50%까지 등락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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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식 전통 양갈비 구이
리야시니 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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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양갈비 전문식당에서 샐러드, 이집트 빵 에이쉬와 같이 제공되는 양갈비구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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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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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는 달리 관광지에서도 화장지를 갖추어 놓지 않은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화장지를 가지고 가던지 아니면 고급호텔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이슬람력의 아홉번째 달은 라마단이라고 불리는 단식의 달이다. 이 달에는 30일동안 해질때까지 물도 마시지도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이 기간 중에는 3성급 이상의 호텔에서는 외국인 여행자를 위해 레스토랑이 영업을 하지만, 시중의 레스토랑, 카페는 문을 닫아 버려
거리가 조용하다. 해가져야 그들은 첫식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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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명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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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예수
피난교회(Old Cairo, The Church of Abu Serga (St.
Serg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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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예수 피난교회는 요셉, 마리아와 아기예수 성가족이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하던 중 머물던 성스러운 장소에
건축된 것이다. 이들은 요셉이 이 지역 요새에서 일하는 도중에 이곳에 살았을 것이다. 건축 당시 이 교회는 AD 303년 시리아에서 로마 황제
막시밀란(Maximilan)의 손에 순교당한 성자이자 군인인 Sergius와 Bacchus에게 바쳐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의
건물은 5세기에 완공되었으나 약 750년경 Marwan 2세하에서 Fustat의 화재로 불탔다. 8세기에 재건이 시작되어 중세시대까지 꾸준히
재건축이 지속되었으나 이 건물은 아직도 초기 콥틱 교회(이집트 원주민의 기독교 교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많은 부분
Hanging 교회와 같은 스타일로 지어진 이 교회에서 가장 고귀하고 오래된 성상은 건물 서쪽 벽에 있는 것이다. 거대한 중앙홀은 두 줄의
기둥들에 의해서 세 개의 본당으로 나뉘어져 있고 Apostles의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는 12개의 독특한 기둥이 있다. 또한 이 교회는
콘스탄티노플과 로마의 종교건축물들과 유사하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명소는 예배당 바로 아래 위치한 지하실이다. 이 곳은 전통적으로 성가족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초기 교회의 잔재가 있다. 이 지하실은 성소(聖所)였다가 후에 더 큰 규모의 교회가 생기면서 지하실이 되었으나 물이
스며들면서 폐쇄되었다.
성가족과 연관되어서 성지로 알려지면서 이 곳을 찾는 신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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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
기념 교회(The Ben Ezra Synag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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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카이로에 위치한 사원으로 29개의 모스크와 20개의 교회에 둘러싸여있다. 모세기념교회라고 부르는 벤
에즈라(BEN EZRA)는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 중의 하나이다. 이 위치와 흥미로운 역사는 이 예배당을 또하나의 명물로 되새김하고
있다.
올드 카이로에 위치한 모세기념교회는 오래된 모스크와 이집트에 있는 교회당에 둘러쌓여있다. 역사학자에 따르면 이 예배당의
현재의 장소는 원해 6세기경에 콥틱교회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이 사실은 여러 건축물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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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후반,
유태인들이 이땅 주변에 교회를 세웠다. 이곳을 유태인들은 성스럽고 축복받은 장소로 여겼는데, 모세가 이것에서 기도를 올렸던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세가 이집트를 떠나기전 그는 그곳에서 길을 떠나면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고, 그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 표시를 해두었다고
한다. 위대한 랍비인 아브라함 벤 에즈라가 예루살렘에서 이집트로 왔을 때, 모세가 기도를 올렸던 이 성스러운 땅으로 와서 곳으로 이 예배당을
유대인들에게 되돌려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후 벤에즈라가 이 예배당을 재건했고, 이 예배당은 그의 이름을 따서 아직도 벤에즈라라고 부른다.
이 예배당에는 구에니체(Guenizeh) 또는 안전한 보관소라고 불리는 특별한 장소가 있는데, 오래된 구약성서가 보관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 구약성서는 기원전 475년경 사슴가죽 위에 씌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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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시의 남동쪽에 자리한 언덕, 시타델(Citadel)
도시의 남동쪽에 자리한 언덕, 십자군을 내쫓은 아유브 왕조의 창시자 살라하 알딘이 1176년 건설한 성채. 이후로
700년간 19세기 모하메드 알리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카이로의 정치적 중추였다. 오토만 시대 이후 도시가 되고 그 사이 많은 건물들이
증축되어 모카탐 구릉위에 우뚝 솟은 듯이 훌륭한 광경을 이룩해 놓았다. 9시부터 16시까지. 입장료 20£E

◈ 파피루스
연구소
(Dr Ragab's Papyrus Institute)
전 영사관을 지낸 하산 라가브 박사가 세운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기자에 있는 세라톤 호텔 근처에 집 같이 생긴
배위에 있다. 여기에서는 고대 이집트의 종이 제작기술을 보존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 1층에는 파피루스
위에 그려진 파라오의 그림들을 판매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일반 전시회를 위해 회랑도 마련해 두었다.
입장료는 외국인들에게
조금 더 비싸게 적용되며, 입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호후 9시까지이다.
☎ : 748 8177 / 748 9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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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사막
일반 모래사막과는 다르게 이곳에는 철광석 성분이 많아 사막이 검은색으로 보여 흑사막이라 불린다.
◈ 신비의 땅 '백사막(white desert)'
석회석 성분이 많아 사막이 흰색 빛깔을 띄며 바닥에 눈처럼 보이는 것은 밟아보면 석회석 성분으로 된 석회암 덩어리다. 백사막은 바람에 의해
풍화되어 기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바위들이 쭉 늘어서 있어서 신비한 경관을 연출 한다.
◈ 아카시아
나무
사막의 척박한 환경에도 아카시아 나무 한 그루가 수백년의 모진 세월과 환경을 이겨내 한구운데에 당당히 서 있는 모습에 강인한 생명력을 엿 볼 수
있다.
◈ 플라워
스톤
플라워 스톤 사막지역에 가면, 병풍처럼 바위산들이 주위에 늘어서 있고, 바닥에는 정말 꽃과 같은 모양의 검은 빛깔을 내는 돌맹이가 사방에 늘어서
있다. 관광지 보호를 위해 2개 이상 가져가지는 않는게 좋다.
◈ 크스스탈
마운틴
이곳은 크리스탈 원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큰 바위에 아름다운 크리스탈이 곳곳에 박혀 있어, 햇빛 비치는 방향에 따라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가끔 발견되는 화석과 크리스탈은 보호를 위해 가져가는게 금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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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에서 만나보는 온천의 신비 '핫 스프링(Hot Spring)'
사막 한가운데 물을 구경하기도 힘든 곳에 온천을 만나볼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족욕 체험도 가능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으로 사막의 모래 기운을 이곳에서 잠깐 날리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 같다.
◈ 수에즈 운하
수에즈라고 하면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중요한
운하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침공했을 이미 운하 건설의
계획이 있었다. 1869년에 개통됐다. 홍해 쪽 수에즈와 지중해
쪽 포트 사이드를 연결하는 운하의 길이는 162.5k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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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핑크스(Sphi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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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기자의 스핑크스도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1735년 마예는 스핑크스를 '사자의 몸통, 여자의 머리'라고
생각하고 "처녀와 사자가 한 몸을 이룬 12궁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려진 스핑크스는 모두 모래 위에 불쑥 튀어나온
기념비적인 머리의 형태만이 묘사되어 있다. 1816년 카비글리아의 지휘로 시작되었던, 모래 제거 작업은 한때 중단되었다가 1886년 마스페로와
브룩슈의 작업으로 파라오 카프렌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기제의 사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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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핑크스 중에 가장 오래되고 큰 것으로 유명한 것은 제 4왕조의 카푸라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이다. 이것은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되어 있다. 전장은 약 70m, 높이 약 20m라는 거상으로, 그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푸라왕의 생전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에는 투트메스4세의 석비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 상의 매>를 나타내고,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통은 사자인 신화적 존재로서 날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가 발상지라고
하는데 그 후에는 시리아, 아나톨리아와 지중해 그리스 본토 등에 전파되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일찍이 제4왕조기(BC2650무렵)에 기자에
있는 왕 카프레의 피라미드 남동쪽에 조각된 대스핑크스로 등장한다. 이것은 왕자신의 상이라 한다. 애초에 왕을 사자로 여긴 이집트의 옛 관념에서
나왔다 하며 왕비도 여성 스핑크스로 표현되었다. BC2000년대에는 스핑크스는 종종 신, 예컨대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믿어졌다. BC2000년대
중엽부터 BC1000년대 전반에 걸쳐 아나톨리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키프로스 등에서도 스핑크스가 중요시되었다는 것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밝혀져 왔다. 스핑크스 석상은 문 양쪽에 세워지거나 건조물의 일부로 사용되었으며, 상아의 부조 또는 청동상이 종교색 짙은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모두 날개돋친 상이며, 수호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처음에는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는 신학적 존재로서 액막이 목적으로
방패나 무덤 등에 새겼으나, 뒤에 테베의 전설에 흡수되어 유명해졌다.
<그리스 신화>에서 스핑크스는 보통 여성의 얼굴에
날개 돋친 사자상을 한 괴물로 그려졌다. 옛날에는 어린이를 채가고 전사가 쓰러지는 것을 기다리는 사령같은 존재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반면에
마귀를 쫓는 부적의 도상이기도 했다. 다음 단계에서 스핑크스는 땅의 해수害獸라 여겨졌다. 계보상으로는 에키드나와 티폰의 아들 또는 키마이라와
오르토스의 아들이라 한다. 형제인 네메아의 사자가 네메아 땅을 짓밟은 것처럼 스핑크스는 헤라여신에 의해 테베로 보내져 그곳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것은 테베왕가가 범한 죄값이라 했다. 게다가 스핑크스는 땅의 해수로부터 수수께끼를 거는 괴물로 발전했다. "하나의 목소리를 갖고 아침에 네발,
낮에는 두발, 밤에는 세발이 되는 것은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내어, 못 맞히면 잡아
먹었다. 이윽고 오이디푸스(Oedipus)가 나타나
<사람은 어려서 네발로 기고 커서는 두발로 걸으나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으니 세발이다>라고 수수께끼를 풀자 스핑크스는 부끄러워하며 몸을
던져 죽어버렸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일밤 2회에 걸쳐 스핑크스 앞에서 음향과 빛의 쇼가 펼쳐진다. 조명에 의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떠올라보이는 가운데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영,독,이탈리아,스페인, 아랍어 등으로 진행되지만 한국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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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피라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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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요
- 카이로 인근 기자지역에 위치한 3개의 피라밋은 제 4왕조(BC 2613- 2494)의 Khufu왕,
Khafre왕, Memdaure왕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존하는 70여개 피라밋중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음.
단순한 왕의 무덤이 아니라 사후 세계의 신앙과 관련된 신성한 건축물로 보는 학자들도 있음.
- 이중 Khufu왕의 피라밋은 일명 대피라밋(Great Pyramid)이라고도 하며 고대 이래로 불가사의한
건축물의 하나로 받아들여져 세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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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밋 내부 및 외부에 피라밋에 관련된 문자나 그림 등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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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푸 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Khufu)
세계 최대의 건축물로 지저부의 한변이 230m, 창건 때의 높이는 146.7m였지만, 지금은 꼭대기 부분이 무너져서 137.2m, 부피는
259만 4914㎡이다.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석재의 평균 무게는 1개당 2.5톤으로 추정되고, 사용된 석재 숫자는 230만개라고 하고
268만개라고도 한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효는 원래 210단인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203개이다. 쿠푸 왕의 것을 비롯해 이곳 기제의 3대
피라미드는 약 4500년 전인 BC 26세기 경에 건조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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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가보면 겉에 돌을 쌓아 올린 것이 드러나
보이지만, 건축할 때에는 화장석으로 겉을 마루리해서 매끄럽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풍화와 약탈로 인해 화장석이 벗겨져서 지금과 같이 되어
버렸다.
내부 관람을 하려면, 9세기 알마문이 뚫은 북쪽 도굴 구멍으로 들어간다. 이 입구의 위쪽으로 약 10m되는 곳에 원래의
입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입구를 들어가면 곧 오른쪽으로 걲여서 높이 약 1.2m의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오르게 되고, 다시 높이 약
8.5m의 큰 회랑을 거쳐 왕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피라미드의 석축을 오르고,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올라가야
하므로 여성도 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o 크기 및 방향
. 높이 146m, 밑변 길이 230m(각변의 길이 오차는 0.1 - 0.2% 내외의 정밀도 유지)
. 피라밋 입구 방향은 정확하게 정북을 지향
. 피라밋 경사각 약 52도
o 구 조
. 무게 2톤 - 20톤의 석회암(카이로 인근에서 채취) 내장석 약 230만개를 쌓아 올렸으며, 과거에는
피라밋 전체가 백색 외장석으로 덮여있었다고 함(외장석과 내장석간에는 백색 모르타르로 접합된 흔적이 남아 있음).
. 피라밋 내부는 왕의 방, 왕비의 방, 대회랑, 내려가는 통로, 올라가는 통로, 수평통로, 환기통 등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음(내부 방 및 대회랑 등에 사용된 석재는 화강암으로서 남부 아스완에서 운송해 온 것으로 추정됨).
. 내려가는 통로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발견되었으나, 올라가는 통로(왕의 방, 왕비의 방 및 대회랑과
연결)는 9세기 Abbas 왕조의 Mamun 왕이 처음 발견하였다고 함(당시 Mamun 왕이 만든 통로는 현재 관광객들의 출입구로
사용중).
o 건 축
. 그리스의 역자학자 Herodotus는 약 10만명의 인원이 약 10년간에 걸쳐 건축하였다고
추산함.
. 현대 일부 건축학자들은 피라밋 건축의 정밀도 등을 감안 4-5 천명의 숙련되고 조직된 기능인들이
건축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나, 건축방식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해명되지 않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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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프라(Khafre)왕의 피라밋(Pyramid of Khaf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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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피라미드 중에 중앙에 위치하는 것으로 쿠푸 왕의 피라미드보다 좀 작은 듯하지만 현재 높이 143m로 지금은 가장 높다. 또한 쿠푸 왕의
것보다 좀 높은 곳에 세워져 있으므로,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좀 더 크게 보인다. 피라미드 가운데 비교적 잘 보관되고, 표면의 화장석도 일부
남아있어 가장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이 피라미드의 동쪽에 신전이 축조되어, 스핑크스 남동쪽에 세워진 아안신전과 참배용 도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도 북쪽의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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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카우라 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Menkaura)
기저부의 한변이
105m, 높이 65m, 3대 피라미드 중에서는 가장 작다. 카프라 왕의 것과 같은 배열의 신전이다. 하안신전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폐허로
변했다. 기제의 3대 피라미드의 석재는 대부분 석회암인데, 이는 기제 남동쪽 약 15km 지점의 투라에서 잘라낸 듯하며, 화장석으로 쓰인 화강은
남쪽으로 850km나 떨어진 아스완에서 나일강을 이용하여 운반된 듯하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 카프라 왕의 피라미드 보다는 찾아오는 관광객이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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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 박물관(The Egyptian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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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흐리르 광장의 북쪽, 카이로 최대의 버스 터미널이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근처에 나일 힐턴 호텔이 있다. 정면 연못에는 이집트의 상징인
파피루스와 하이집트를 대표하는 연꽃이 심어져 있어서, 이집트 전부를 상징한다.
이집트 박물관은 처음에 불락지방에 세워졌는데 현재
전시되어 있는 고미술품들이 발견된 이즈마일리아의 궁전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현재 이집트 박물관은 카이로의 타리르 광장에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은
케디브 아바스 헬미 2세의 지배하에 1897년에 착공되어서 1902년 11월 15일에 개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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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개의 전시실이 있고 1층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고 상층에는 소규모의 조각상과 보석류, 투탕카멘 왕의 유품, 미이라가 전시되어 있다. 소장품의 수는 10만점
이
박물관에는 또한 사진실과 넓은 도서관이 있고 전시실은 각각 연대기순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 중 왕족 미이라 전시실에서는 열 한명의 왕과 왕비의
미이라들을 볼 수있다. 해마다 1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 박물관을 찾고 이 중 이집트인들이 약 50만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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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이 산
시나이 반도 남부 중앙에 위치한 표고 2,285m
의 산. 모세 산이라고도하며, 모세가 십계를 받았던 산으로
유명하다.
◈ 홍 해
시나이 반도 끝 쪽은 그 투명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지중해나 남태평양같은 화려함은 없지만,오염되지
않은 물에 감탄할 것이다. 끝 쪽의 곶은 아프리카,
대륙 쪽은 산호초 아라비아 반도 쪽은 백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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