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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프라하를 중심으로 한 보헤미아와 브르노를 중심으로 한 모라비아이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부 내륙
지방에 위차한 체코는 1세기부터 켈트인이 거주했으나 로마에 정복된 뒤 5세기에는 슬라브족이 7세기에는 사모국이 8세기 말에는 모라비아 왕국이
들어 섰다.
9세기경 체코와 슬로바키아 민족이 통일 국가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그 뒤 슬로바키아는 헝가리에 점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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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에는 보헤미아 왕국으로
번영하여 보헤미아 왕이 폴란드와 헝가리 왕을 겸임하는 등 국력이 강해졌고 14세기에는 카를 4세가 신성로마 제국 황제에 오를 정도로
부강해졌다.
그러나 종교개혁 운동과 함께 일어난 후스파와 교황파의 전쟁으로 16세기에 합스부르크 가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9세기 후반에는
오스트리아,독일 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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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소련에 의해 해방되어 사회주의가 진행되었으나 그후 자유화 민주화의 소리가 높아지고 정치 및 경제의 개혁 바람이 불면서 프라하의
봄은 그 결실을 맺는다. 1993년 1월1일 각각 체코와 슬로바키아 독립국가로 분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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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요
o 면 적 : 78,864㎢ (한반도의 약 1/3, 평지:산악=7:3)
o 인 구 : 약 10,292,933명(2001.3.1.현재)
o
언 어 : 체코어
o 인
종 : 코민족 95%, 스로바키아인 3%, 소수민족으로 구성
o
기 후 : 지중해성 기후
o
수 도 : 프라하
o 종 교 : 카톨릭계 39%, 개신교 5%, 그리스정교 3%
o 시 차 : 한국보다 8시간 늦음.
(SUMMER TIME 실시할 경우 7시간)
o 화 폐 : 코루나(KORUNA), 1 KORUNA=약
115원
o 정치형태 : 사회주의 공화국
o 국 화 : 보리수
o 주요 공휴일
*
신정 : 1월 1일
*
이스터먼데이(부활절) : 4월
*
메이데이 : 5월 1일
*
해방일(나치로부터) : 5월 8일
*
체코문자도입일 : 7월 5일
*
얀 후스 기념일 : 7월 6일
*
공화국 창건일 : 10월 28일
*
크리스마스 : 12월 24일 - 12월
26일
◐ 프라하 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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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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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프라하
(PR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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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평균 |
1 |
2 |
7 |
12 |
17 |
20 |
22 |
22 |
18 |
12 |
5 |
2 |
최저평균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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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0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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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10
|
12
|
11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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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0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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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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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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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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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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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15
|
17
|
17
|
13
|
8
|
2
|
0
|
강우량mm |
17 |
20 |
25 |
35 |
58 |
68 |
66 |
63 |
40 |
30 |
27 |
22 |
◈ 역 사
슬라브족(族)은 5~7세기에 현재의 체코·슬로바키아 지역에 이주, 정착하였다. 체크족(族)은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에,
슬로바크슬라브족(族)은 슬로바키아 지역에 각각 정착하였다. 이 두 종족은 833년 일종의 연방국인 대(大)모라비아왕국을 세웠다. 모라비아왕국은
번창하여 보헤미아로부터 슬로바키아를 거쳐 헝가리 서부, 폴란드에 이르는 광대한 판도를 형성하였다.
906년 헝가리의 마자르족이
모라비아왕국을 침략하여 슬로바키아를 점령함으로써 이후 1000여 년 동안 이 지역은 체코와 분리되어 헝가리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모라비아 제국이 쇠락하기 시작한 9세기 말(895) 체코인들은 프르셰미슬 제후 밑에 결집하여 프라하를 중심으로
보헤미아·모라비아·루테니아·슐레지엔을 포함하는 지역에 독자적인 국가, 즉 보헤미아 왕국을 세웠다.
프르셰미슬가(家)의 군주들이
독일의 동방 진출에 대한 방어와 군주제 확립을 위해 신성로마 황제를 추앙하는 동시에 적극적으로 그리스도교 도입에 노력한 결과, 1158년 체코
군주는 황제로부터 왕조세습을 승인받고, 1204년에는 왕국의 독립도 인정받게 되었다. 보헤미아 왕국은 프르셰미슬 오타카르 2세 치하에서 번성하여
당시 영토가 오데르강(江)으로부터 아드리아해(海)까지 확대되기도 하였다. 1307년 바츨라프 3세가 사망함으로써 프르셰미슬왕조의 지배가 끝나고,
룩셈부르크왕조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제2대 왕 카를 4세는 뛰어난 통치능력으로 1346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됨과 함께
프라하를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에 걸맞는 도시로 건설하여 당시의 체코, 즉 보헤미아는 정치적·문화적으로 크게 번창하였다. 15세기 중엽, 비잔틴
제국을 섬멸한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헝가리 동쪽 지역까지 진출함으로써 1526년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家)의 페르디난트 1세가 체코인(人)
헝가리 국왕을 겸임하게 되었다. 이후 독일인(人) 제왕의 통치가 계속되어 결국 체코의 전영토도 1918년까지 3백여 년 간 합스부르크가(家)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속령이 되었다.
1915~16년 민족지도자 마사리크(Masaryk)와 그 제자인 베네시는 파리에서
‘체코슬로바키아 국민회의’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베르사유조약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같은해 10월 28일 독립을 선포하고 공화국이 되었다. 1938년에는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체결한 ‘뮌헨
협정’에 의거하여 수데텐란트 지역이 독일에 할양되고 게다가 소수민족 자결권을 주장하는 폴란드와 헝가리에도 땅을 빼앗겨 체코슬로바키아의 면적과
인구는 1/3로 줄어들었다.
1939년에 나치스군(軍)의 침공을 받은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일의 통치를 받게 되자 1940년 베네시
대통령은 런던에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1943년에는 소련과의 동맹조약을 체결하였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망하고 프라하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자, 체코슬로바키아는 루테니아 지역을 소련에 할양한 채 다시 독립하게 되었고, 공산당과 비공산주의자
간의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다.
1946년을 전후하여 최초의 자유총선이 실시되어 공산당이 37.9%의 득표율로 제1당이 되었다.
공산당 주도의 연립내각이 성립되었으며, 2년 후 공산당은 무혈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하였다. 1960년에는 사회주의 헌법이 채택되었고 국명도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개칭되었다. 1968년 공산당 제1서기 둡체크에 의해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자유화개혁운동이
추진되었으나 소련에 의해 좌절되었다.
오랫동안 커다란 문제였던 체코와 슬로바키아 간의 불평등한 관계로 1969년 1월부터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구성된 연방제 국가로 새출발을 하게 되고, 1977년 1월에는 극작가 하벨
등이 중심이 된 반체제 지식인들이 체코의 인권 억압에 저항하여 ‘77헌장’을 선언하였다.
1988년 고르바초프에 의한 소련의 개혁
바람이 동구권에 불어닥치자, 체코슬로바키아 내에서도 같은 해 11월 민주세력 ‘시민포럼’이 중심이 된 시민들의 민주화개혁 요구 시위가 대규모로
발생함에 따라 12월에 공산정권이 퇴진하고, ‘시민포럼’의 지도자 하벨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90년 3월에 체코슬로바키아 의회는 국명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으로 변경하였으며, 1990년 6월에는 신헌법에 따라 자유총선을 실시, 새로운 민주정부를 구성하였다. 1993년 1월
1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은 1992년의 연방의회 승인에 따라 체코와 슬로바키아 2개의 공화국으로 분리되었다.
5C : 슬라브인 정착 시작
623 : 최초의 슬라브족 국가인 Samo
왕국 건설 (~658)
830 : 체코족과
슬로바키아족이 大모라비아제국 건설 (~907)
852 : 보헤미아왕국 프제미슬왕조 성립
(~1306)
1310 : 룩셈부르크왕조의 보헤미아
통치 (~1386)
1355 : 까렐4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한 후 프라하가 제국의 중심으로
됨
1415 : 얀 후스(체코의 종교 개혁가)
처형
1419 : 후스주의 전쟁 발발 (~1438)
1526
: 합스부르크왕가의 보헤미아 통치 (~1918),
오스트리아-체코-헝가리의 중부유럽군주국
탄생
1618 : 30년 전쟁 발발 (전쟁의 패배로
카톨릭화, 독일화를 강요 받음)
1620 : 빌라호라
전투의 패배, 체코 국가의 독립 상실 1648
: 베스트팔렌 강화조약 서명, 보헤미아 왕국은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일원으로 존속
1867
: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원군주제 출범
1918
: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
1939 : 나치독일,
체코슬로바키아 합병
1945 : 소련군에 의한
프라하 해방
1960 :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국명 변경
1968 : 개혁운동(프라하의
봄) 좌절
1989 : 벨벳혁명을 통한 자유민주정부
탄생
1990 : 체코와 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으로
국명 변경
1993 :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분리, 체코 공화국 탄생
◈ 프라하의
봄(The Spring of Pr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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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5월 체코는 연합국의 일원이던 소련에 의해 해방되었다. 이미 동년 4월에 베네슈
대통령에 의해 임시 정부가 구성되었으며, 신속히 개혁에 착수하여 진보적 사회 변화와 사회주의 재건을 기치로 하여 신 정부의 권한이 신속히
확립되어 갔다. 하지만 소련의 간섭과 5천만 달러의 차관제공을 담은 마셜플랜에 대한 반 강제적인 취소는 체코내의 민주주의자들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으며, 대신 공산주의 세력이 강화되어 1948년 강력한 공산주의 지지자인 고트발트가 대통령에 취임하게되어 엄격한 숙청과
함께 기업의
국유화와 계획 경제 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하지만 준 공업국가이던 체코에 이러한 공산주의 방식의 경제 이식은 국가 경제를 전반적으로 낙후하게
만들었으며, 무역의 블록화는 공업화를 쇠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또한 코민포름은 레닌주의 원칙과 계급 투쟁, 국제적 계급 유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48년부터 62년간의 스탈린 주의 시대 동안 체코 슬로바키아에서는 개인적 자유
사회적 권리는 전혀 포기될 수밖에 없었다.
연이어 실시된 선거에서 공산당이 86.1%에서 99.9%의 득표를 획득한 것만 봐도 당시의 억압정책과 공산당의 감시
체제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60년대 초반 부터 체코 경제에 위기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드디어는 1962년에는 제 3차 5개년 계획이 포기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국유화 경제 체제의 실험의 실패는 정치적 비판을 받게 되었으며, 또한 지식인들은 당의 숙청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으며, 각종 기관지에 정부에 반대하는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때 당은 무엇보다도 경제적 붕괴에 직면함으로써 위기를 피할 수 없게
되엇으며 드디어 당은 개혁과 스탈린주의 체제의 종지부를 약속하게 된다.
1964년 이후 사회에 있어서도 법인의 활동이 승인을 받고, 또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노동 조합, 청년 조직, 작가 동맹 등은 점차 가입자의 의지나 이익을 표명하는 것과 동시에 당의 통제를 벗어나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운동은 1967년에 정점에 달하여 여러곳에서 부패한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가 빗발쳤고, 마침내 1968년 1월 에 당 서기장이던
노보트니가 해임되고 슬로바키아의 두브체크가 임명되었다.
이러한 새 지도자의 임명과 더불어 개혁운동은 지식인의 운동에서 대중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게되어 대중의 열광적인지지로 대담한 자유화 조치가 조금씩 실행되었기 때문에 연례의 음악제 이름을 따라 '프라하의 봄'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화 운동에 위기의식을 갖게된 소련제국은 체코 지도자들에게 개혁을 경고했다. 반면에 체코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개혁을 계속 추진해 나갔다.
1968년 8월 20일, 바르샤바 조약 기구인 소련, 동독,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의 각국의 군대 약
20만이 불시에 체코 국경을 넘어 영내로 침입하였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무저항을 발표하고, 침입군은 거의 적극적인 저항에 부딪히지 않고 단시일
내에 전 영토를 점령했다. 소련제국은 '정상화'의 목적으로 개혁파 지도자를 정부의 직위에서 해임시키고, 검열제도를 부활시켰으며, 많은 신문과
잡지가 정간되고 말았다. 또한 침입군의 주둔이 합법화 되었고 외국 여행의 자유가 제한되었다. 외국군에 의한 점령과 개혁의 후퇴는 일반 국민에게
깊은 좌절감을 주고, 외국군 철수 요구시위, 학생시위등을 유발했다. 하지만 소련에 의한 '정상화'조치는 계속 추진되어 개혁파의 철저한 숙청에
이르게 되고 자유화 운동은 좌절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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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명소 |
프라하 (PRA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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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현재 체코 공화국의 수도(인구:120만, 면적:500㎢)로서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과 문화, 예술의 도시다. 프라하 시
한 가운데를 S자로 관통하는 블타바(Vltava,몰다우) 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고풍스러운 중세도시 그대로의 모습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옛
보헤미아의 신비스런 정취를 떠올리게 한다.
유럽대륙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의 심장'이라고도 불리는 프라하는
'백탑의 도시', '건축의 박물관', '황금의 도시'등 여러 별명들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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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가 하나의 화려한 모자이크화처럼 펼쳐지는 도시로,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역대 건축사의 모든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 프라하의 아름다움에 반해 로댕은 프라하를 '북쪽의 로마'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또한 유럽 음악 예술의 중심지로서 프라하는 '유럽의 콘서버토리(음악학원)'라고도 불렸는데, 체코 태생의 드보르작, 스메타나와 같은 음악의
거장들을 배출해낸 곳이기도 하다.
프라하는 9세기 보헤미아 공국 시절부터 12세기 체코 왕국으로의 승격을 받기까지, 또한 14세기 까렐4세(Karel VI, Charles
IV) 통치 시 신성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그 역사의 전성기와 황금기를 누렸으며, 1918년 탄생한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1993년부터 현재까지
체코 공화국의 수도로서 체코의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를 대표하는 중심지로서 발전해 오고
있다.
아름다운 중세 도시의
풍경과, 일년 내내 끊이지 않는 다양한 문화 예술 축제와 행사들은 연간 1억명에 달하는 관광객을 끌어오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현재 10개의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는 프라하의 주요 관광지는 크게
5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지는데, 블타바강 북서쪽 언덕위의
프라하성을 비롯한 흐라드차니 지역, 말라스트라나 지역, 블타바강 동남쪽에 위치한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던 구시가(Stare M?sto)지역,
구시가지의 포화상태를 고려하여, 1348년 까렐 4세에 의해 새롭게 건설된 신시가 지역(Nove Mesto)이 있다. 그리고 보헤미아 왕국의
전설적인 조상으로 알려진 Krok왕의 딸인 Libue 공주가 살던 비쉐흐라드(Vysehrad) 지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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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여행계획>
❋
콘서트 관람
프라하에서는 콘서트가 일년 내내 시내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콘서트
요금은 대개 70코룬 전후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하는 콘서트는 300코룬 이상하는 표도
있다. 본격적인 오케스트라 콘서트 회의장으로는
드보르작 홀과 스메타나 홀등 두곳을 꼽을 수 있다. 조 편성 오케스트라의 실내 음악 회장으로서는 아네슈카 수도원, 석종의 집,
베르트램카,클레멘티움에 있는 거울의 예배당, 리프슈테인 궁전 등이 있다.
클래식 보다는 한손에 맥주난 와인을 들고 편안하게 음악
감상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재즈를 권하고 싶다. 체코의 재즈 연주가는 모두 클래식음악에 기초를 둔 사람들이므로 연주 기술이 아주
뛰어나다.
❋
인형극 관람
체코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구시가 곳곳에서 인형극장을 만날 수 있다. 대개 학생들이 하는 인형극들이 많은데 아마추어적인 느낌이 들더라도 인형극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저녁시간을 이용해 보는 것이 좋은 추억이 될것이다. 말을 알아 듣지 못해도 상관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을
공연하기때문에 음악과 동작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여행시즌
체코는 대륙성 기후로 겨울이 비교적 온화하며, 여름이 무덥지 않다. 또 중부
유라시아의 온화한 기후대에 속해 있어서 한랭한 기간이 길고 여름철에도 기온이 크게 상승하지 않는다.
체코의 연평균 기온은 8~10℃ 정도이다.
여행하기 좋은시기는 초원의 꽃이 활짝피는 4~5월, 단풍과 낙엽이 아름다운 9~10월이다.
❋
여행안내
프라하의 볼거리는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어 전 지역을 하루에 둘러보는 것은 어렵다.
지역을 좁혀 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역은 크게 7개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프라하 성,
프라하성
서쪽, 말라스트라나, 구시가, 유태인거리, 신시가, 비슈흐라드이다. 특히 볼타바강을 끼고 있는 프라하 성과 구시가는 중세의 역사를 느낄수 있는 장소로
지역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대개 패키지 여행에서는 프라하성과 구시가를 중심으로 관광이 이루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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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
체코의 특산, 부드바이저(Budweiser)
맥주
맥주 애호가들이라면 그 맛을 인정하는 버드와이저(Budweiser). 지금은 미국의 이름으로 팔려나가고 있지만, 사실 이 맥주의 원산지는
보헤미아의 왕국, 체코의 부디요비체라는 곳이다.
아무리 독일이 맥주로서 유명하다고 하지만, 맥주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그 맛으로서
체코의 그곳을 제일로 여긴다고 한다. 이 부드바이저는 우리나라의 막걸리와 비교되고는 하는데, 걸죽하고 냄새가 독하면서 발효가 잘 된 냄새를 내기
때문이다.
원래 버드와이저는 부드바이저라고 불렸는데, 이 상표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부터 버드와이저라고 읽혔다. 그런데
최근에 이 상표의 저작권에 관한 분쟁이 불거지고 있다. 10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이 분쟁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란다. 체코의
'부드바이저 부도바르'라는 회사에서 미국의 맥주회사에 버드와이저 상표 판매를 허락하는 대신 앞으로 10년 동안 체코산 맥주원료를 매년 10만톤씩
판매해 주기로 했다고 한다.
❋
체코에서 온 진정한 맥주
필스너 우르퀠(Pilsner Urquell)
맥주
필스너 우르퀠 맥주를 말하기 이전에 먼저 보헤미아 지역의 맥주전통을 알아야 필스너 우르퀠 맥주가 가지는 진미를 알 수 있다. 근대 체코 공화국은
보헤미아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한다. 그리고 보헤미아는 지난 세기에 세계적인 클래식 맥주 스타일 가운데 하나인 필스너(Pilsner)를 낳은
지역이다. 그럼 필스너 우르퀠 맥주를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맥주의 어원을 알아보자.
☞ 맥주의 어원
맥주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 'BEER'는 게르만족의 언어 중 '곡물'을 뜻하는 '베오레(BIOR)'가 그 어원이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독일어
'비르(BIER)', 프랑스어 '비에르(BIERE)' 이태리어 '비라(BIRRA)', 등은 다 어원이 같다. 한편 중국어로는
'페이주(碑酒)'라고 하며, 러시아 등 슬라브 국가들에서는 '삐보'(PIVO)계통의 단어가 맥주를 지칭하는 대표적인 언어로 남아 있다.
☞ 필스너 우르퀠 맥주
1295년 체코의 Wenceslas 2세가 일반 시민에게도 맥주를 제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면서
필젠의 맥주는 탄생하였다. 상업적인 라거링(또는 콜드 라거링)이 이웃 바이에른 지역에서 발전한 반면 첫번째의 옅은 황금색 라거는 보헤미아의 공업
원동력이었던 필젠(Pilsen)에서 나왔다. 연수(단물)가 나오는 체코지방의 필젠에서는 담색 맥주가 발달, 순하면서도 단맛과 쓴맛이 교차하는
새로운 타입의 이 맥주가 발전한 것이다.
필젠에서는 1840년대에 이르러 맥주 제조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며, 필젠의 대다수
맥주 회사들은 새로운 맥주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생긴 시민 맥주사 "Mestansky pivovar" 는 1842년 10월 5일
생산을 가동하였다. 여기서 생산된 맥주들은 지역 시장뿐 아니라 지역 외 시장에서도 명성을 쌓아 나아가기 시작했다. 1859년에 이르러 필스너
우르켈은 프라하의 35개 대형 맥주 홀에서 판매되었으며, 19세기 후반에는 London에서 Lvov이르는 대부분의 유럽 제국에서 판매가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판매가 시작되었다.
필스너가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그 제조 기술은 필스너의 맛과 품질을 재현해
보려는 해외의 여러 국가로 급속히 확산 되었다. 필스너는 점차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며 또한 가장 잘 팔리는 맥주로 발전 하였다.
필젠(Pilsen)은 해외에서 필스너, 필제너(Pilsener) 또는 간단히 필스(Pils)라고 불리는 스타일을 유산으로 남겼는데, 많은
나라에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가위질을 당해왔다.
그래서 너무나 늦게도, 옅은 황금색 라거의 주조업자들은 그들의 브랜드에
우르퀠(Urquell)이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우르퀠은 오리지날 제품(Original Source)을 의미한다. 오늘날엔 필스너 우르퀠과
강브리누스(Gambrinus)와 같이 필젠에서 생산된 맥주만이 필스너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필스너 우르켈은 여전히 세계에서 하나뿐인
진정한 필스너로 남아있다.
* 필스너 우르퀠 맥주의 종류 : Pale
* 발효 방식 : 하면 발효
* 알코올 농도 :
4.4% (VOL)
* 맛 : 적절히 조화된 특유의 쓴 맛
☞ 프라하 관광과 맥주
먼저 프라하 관광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야 할 체코어 단어는 PIVO(삐보)이고 '맥주'란 뜻이다. 체코 관광에서 빠뜨릴 수 없는 체코식 대중식사는 비어 홀에서 오리고기나
돼지고기를 곁들여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체코는 유럽에서 독일과 함께 정통 라거 맥주를 생산하는 맥주 강대국으로 꼽힐 뿐아니라 최초의 필스너가
탄생한 국가이며 세계에서 맥주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도 꼽히고 있다. 체코를 얘기할 때 아름다운 프라하를 먼저 떠올리지만 체코 맥주 또한
빠뜨릴 수 없는 체코의 명품이며 종류 또한 다양하다.
- 부드바르 맥주 : 맥주의 황제로 불리우며 16세기 초에 왕실에서 마셨던
맥주이다.
- 라데가스트 맥주: 3년 연속 올해의 체코 맥주로 선정된 명주
- 벨꼬뽀뽀비츠끼 꼬젤 : 1995~96년
세계맥주대회에서 맥주 금메달 수상
- 필스너 우르퀠 맥주 :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다.
이외 각 지방, 지역에 따라서 생산되는 맥주의
종류가 다양하다.
☞ 맥주회사 홈페이지 링크
필스너 우르퀠(Pilsner Urquell) -
http://www.pilsner-urque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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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파리, 프라하에서 페체네 클로네를 안주 삼아 체코 맥주 한잔에 취해보자!
90년대 유럽을 자기 앞 마당처럼 돌아다니시던 선배 배낭 여행자분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하나가 "다른 나라에서는 굶더라도 체코가서는 배불리
먹어라"였다. 이말에는 일단 서유럽 국가들보다 동유럽 권역에 속하는 체코가 음식값이 싼 편이고, 기타 다른 물가도 싸기 때문에 여행자들이 편한
마음으로 음식과 쇼핑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근래에는 체코, 특히 프라하의 음식값도 90년대와는 다르게 꽤나
올랐다. 하지만 아직도 서유럽의 파리나 런던쪽보다는 가벼운 주머니로도 좋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체코고, 그중에서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프라하다.
프라하에서 맛볼 수 있는 체코식 전통요리 중에 유명한 것이 돼지 족발요리로 현지어로 '페체네 클로네'라고 불린다.
배낭여행이나 개별여행으로 와서 프라하에서 피자나 핫도그로 끼니를 때울 수도 있겠지만 물가가 그리 비싸지 않은 만큼 호기있게 체코 전통음식에
도전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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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 소지구
프라하성과 흐라드차니
유대인 지구
신시가 프라하 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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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노(BR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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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브르노는 체코 제 2의 도시이자 체코 동부 지방, 모라비아의 중심 도시이다. 뒤늦게 개발되어 1766년에 최초의
섬유공장이 지어졌지만 19세기 말에는 모라비아의 중심지가되었다. 여러 번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문화 도시로 번창하여 수많은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대학 등이 있다.고대 무역상들의 교차로로 수세기에 걸쳐 남북 유럽인들이 섞여 살게 되었다. 브르노는 다뉴브 강유역의 일부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과 많은 역사적인 연관이 있으며 전후 브르노 인구의 1/4인 게르만 민족이 빈으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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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는 모라비아의 저지대와 수목림과 접해
있고 북쪽으로는 드라니 구릉과 보헤미안-모라비안 산맥과 인접해 있다. 지리적인 이유로 브르노의 기후는 매우 온화하고 활동하기에
적당하다. 번화가인 마사리코바(Masarykova) 거리는 자갈길과 이곳 저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 각 방면으로 달리는 시가 전차로
인해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정신이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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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필베르크 성(Hrad Spilberk)
13세기 중반에 브르노의 방어를 위한 성으로
건축되었다. 17세기에는 요새로서, 그리고 18,9세기에는 정치사범을 가두기 위한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그때문에 '합스부르크의 민중 감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1939년에서 1940년에는 게슈타포에 의해 감옥으로 쓰였고, 전후에는 군시설로 이용되었다가 1960년 이래로는 브르노시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성이 위치해 있는 곳은 박람회 장소가 되었다. 언덕위에서 바라보는 모라비아의 자연과 브르노의 시가지는 감탄은 자아내게
한다.

◈ 성 페테로 파우로 교회(Petrov)
녹색 시장에서
남쪽으로 올라간 언덕에 있는 교회로 옛날 브르노 성이 있었다고 추측되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로만네스크 양식의 바실리카(기독교 회상)는
13세기에 고딕 양식의 돔으로 개축되었고, 그후 15,16세기에 다시 보수되었다가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그 후에 다시
19,20세기 사이에 네오 고딕 양식으로 개축되었다. 1777년 이래로 이 곳은 브르노 주교가 있으며 12세기부터 존재한 교회 지하 납골당은
관람이 가능하다.

◈ 성 야콥 교회(Kostel sv.
Jakuba)
국가에서 보호하는 문화 유적지로 13세기에 세워진 교회이다. 우리가 오늘날 보는 후기 고딕 양식의 건물은
14~15세기에 지어진 것이고 16세기에 최종적으로 개축되었다. 92m은 첨탑이 성 야콥 교회의 상징이다.

◈ 멘델 수도원(Pamatnik Gregor Mendel)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던 1847년부터 멘델이 사제로 활동을 하며 완두콩 재배 실험을 하던 수도원 터에 현재는 멘델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후스 거리에서
페카쥬스카 거리로 들어와 내리막 길을 잠시 걸으면 멘델 광장과 만나게 된다.광장 한 곳에 위치한 오래된 고딕 양식의 건물은 성모 교회이며 뒤편에
기념관이 있다.기념관에는 멘델의 업적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 있으며 기념관 앞에는 멘델이 완두콩을 키웠던 정원이 있다.정원 한 구석에는 멘델의
기념 동상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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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광장(nam.
Svobody)
구시가지 가운데에 위치한 광장으로, 광장 가운데로는 시가 전차가 관통하여 달리며 이 곳에서 이따금씩
문화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광장 거리에는 야외 카페와 골동품점, 중고품 가게가 있다.
◈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Augustiniansky klaster)
1686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으로 선출된 요한 그레고르 멘델(1822-1884,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성직자로, 현대 유전학의 비밀을 밝힌 체코 출신의
과학자)은 이 수도원에서 그의 유전학 이론 가설을 공식화하고 밝혀 내는데 성공하였다.
Husova 거리에서 Pekarska 거리로 들어과 내리막
길을 걸으면 멘델 광장에 다다르게 되고 광장 한 곳에 위치한 고딕 양식의 건물인 성모 교회(Bazilika Nanebevzeti Panny
Marie)의 뒷편에 멘델의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앞에는 멘델이 완두콩을 키웠던 정원이 있고 정원 한편에는 그의 기념 동상이
서있다.
| ◈ 구시청사 현관
(Portal stare
radnice)
화려하게 장식된 구청사의 현관은 후기 고딕 양식의 놀라운 조각작품이다.
151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안톤 필그람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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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나스 분수(Kasna
Parnas)
바로크 양식의 파르나스 분수는 초기 르네상스의 분수를 대신하여 1597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있는
것은 요한 베르나르드 피셔 폰 어라크의 작품으로 1690년에서 1697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다.
◈ 디트리히슈타인 궁전(Dietrichsteinsky Palace)
디트리히슈타인 궁전은
1613년에서 1616년에 걸쳐 지어진 건물로 1720년경에 재보수되었다. 복잡한 건물안에 있는 주교의 안마당은 1352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현존하는 건물은 모라비안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 푼코비 동굴(Punkovi Caves)
브루노에서 20km 떨어진 모라브스키 크라스(Moravsky Kras)에는 볼만한 동굴이 많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푼코비 동굴이다.
이곳에서는 보트를 타고가서 동굴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을 때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할만큼 붐비는 지역이다. 입장료는 9월에서
6월까지는 50kc/st-16, 7월에서 8월 성수기에는 70/st-25kc이다.
지하동굴에는 인상적인 종유석과 석순이 가득차 있으며, 동굴탐사는 1km 정도 걷고, 잠깐 보트를 탄다. 다른 동굴은 예약할 필요가 없다.
보통 8:00am-16:00pm까지 개장을 하고, 입장료는 30-40kc이다. 브루노의 식당 앞에서 여기까지 열차가 운행하며 약 30분가량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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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최대의 공업도시 오스트라바(Ostra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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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라바는 체코 제4위의 대도시이면서 세베로모라프스키주(州)의 주도로서 프라하에서 280km 떨어진 체코공화국의 동북쪽 오데르강(江)의 넓은
골짜기에 있는 모라비아(Moravia)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폴란드와 유럽의 기점인 슬로바키아와 인접해 있다.
모라비아지방의 중화학 공업도시이며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한 이곳은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때에 합스부르크가의 규율아래에 있던
오스트라바는 그 뒤로 계속해서 산업의 도시로서 남게 되었다. 제2차세계대전 후 급속히 발전하였고, 벨벳혁명이후에 비공업화로 잠시 이 지역에
실업자가 증가하기도 했었지만, 35만명에 달하는 많은 시민들이 지금도 마인지역의 석탄공장이나 야금공장, 화학공장 등지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오스트라바는 '블랙시티'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공장과 건물에서 뿜어나오는 매연과 탄가루 등으로 뒤덮혀 있다. 이곳에는 1829년에
설립된 체코 최대의 제철소가 있고 오스트라바, 카르비나 탄전의 중심으로 제철, 주조, 제강, 화학, 기계, 식품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또
야금, 기계공업의 전문학교와 연구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남쪽과 서쪽의 교외 구릉지에는 새로운 주택지와 베드타운이 건설되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산업화, 공업화된 오스트라바도 전체적인 도시 풍경을 보면 많은 교회와 여기저기 흩뿌려져있는 옥석과 연못들의
풍경이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삶의 문화적인 질도 1991년에 오스트라바 대학과 오스트라바 예술학교가 생기고 예술과
각 문화방면에 대한 교육이 실시되면서부터 점점 향상되고 있다. 덧붙여 21세기는 산업화된 이 도시에 인간적인 면을 부여하여
'인간적인'오스트라바를 만들것이라고 도시 스스로 다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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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문화 유적이 남아있는 쿠트나 호라(Kutna H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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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트나 호라(Kutna Hora)는 프라하에서 동쪽으로 약 70km 거리에 있으며 중세 보헤미아에서 프라하 다음 가는 큰 도시로, 현재 많은
문화 유적이 남아 있는 주요 관광 도시의 하나이다. 특히 고딕 양식의 성 바르보라 성당 (체코어:Chram sv. Barbory)과 성모 마리아
대성당(Katedrala Panny Marie v Sedlci)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쿠트나
호라(Kutna Hora)는 프라하처럼 붐비지도 않고, 관광객들도 얼마 없고, 거주민들도 아주 친절하고, 물가도 프라하보다는 싼 편이고, 천천히
하루 정도 묵으면서 돌아보는 것도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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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골성당(Kostnice Sedlec)
쿠트나 호라 해골성당(Kostnice Sedlec)의 기원은 흑사병이 창궐했던 1,3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죽음을 앞둔 병자들은 성스러운
곳에 묻히려 마지막 힘을 다해 성당으로 몸을 옮겼다. 그러나 교회 공동묘지는 순식간에 다 찼고 남은 시신들은 성당 지하토굴 안으로 던져졌다.
뼈 장식 작업은 1511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토 수도회 소속 수도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후스 전쟁 때 정통 고딕양식이었던
납골당은 불타 무너지고, 1703~1710년 사이 이탈리아 건축가 산타니에 의해서 바로크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다. 이때 내부 뼈 장식들이 부분
보충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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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784년 황제 요셉 2세가 내린 ‘수도원 폐지령’으로 인해 수도원은 문을 닫았는데, 그 소유권을 독일 귀족
가문인 슈바르젠베르그가 가져가면서 나무 조각가 프란티셱 린트(Fratišek Rint z České Skalice)에 의해 오늘날의 뼈 장식물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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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투어(Star
Tour)
☎:(02)723-6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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