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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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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
프라하성과 흐라드차니
유대인 지구
신시가 프라하 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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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렌스타인 궁전과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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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곳은 황실의 육군 사령관이던 알프레이트 본 발렌스테인(Albercht von Wallenstein 1518-1634)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30년
전쟁에서 프로테스탄트들을 괴멸시키고자 했던 황제 페르디난트 2세에게는 발렌스테인의 군대가 꼭
필요했다. 한편 발렌스테인은 보헤미아의 왕위를 탐하고 있었다. 1630년에 발렌스테인은 지휘권을
박탈당했지만 다음해에 복권되었다. 이 때 그는 완전히 독자적으로 적들과 협상을 벌였는데, 결국 1634년에 왕의 명령으로 용병들에게 살해되었다. 발렌스타인은 자신의 궁을 지음으로써 프라하성의 권위를
실추시키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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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한 부지를 얻기 위해 그는 가옥 23채와 정원 3개, 그리고 도시의 벽돌 가마까지 사들였다. 2층
높이로 된 화려한 본관홀의 천장에는 그 자신을 군신 마르스에 비유하여 승리의 전차를 탄 모습이 프레스코화로 남아 있다. 오늘날 이 궁전은 주로
국가의 공식 행사장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종종 대중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레텐스카에서 이 궁전의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정원은
발레스타인이 분수와 청동상들이 내려다 보이는 파빌리온(sala ternena:누각)에서
식사를 할 때 설계되었다. 또한 이 곳에서는 기묘한 형상을 한 거대한 인공 종유석이 있으며, 파빌리온에는 아르고선의 일행과 골든 플리스 전설의
한 장면이 그려져 있다. 궁전의 정원 끝부분에는 거대한 연못이 조성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에는 동상이 하나 서 있다. 연못 뒤에는 옛날
기마학교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있는데, 현재 이 곳은 국립 미술관이 관장하는 현대 미술전시장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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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토마스 교회
바츨라프(Wenceslas) 2세에 의해 1285년에 아우구스틴을 신봉하는 이들의 수도원 교회로 만들어진 이 고딕 교회는 1379년에야 완성되었다. 후스파가 득세하고 있던 시절에도 카톨릭을 고수한 몇 안되는 교회 중의 하나였다.
루돌프 2세의 통치기간에 성 토마스 교회는 황실 법정과 강한 연계를 형성했다. 법정 건축가
오타비오 아오스탈리(Ottavio Aostalli)나 조각가 아드리앤 드
브리에스(Adriean de Vries)같은 몇몇 특출했던 루돌프 황제의 측근들이 이
곳에 묻히기도 했다. 1723년에 교회가 벼락에 맞아 크게 파손되자 킬리안 이그나즈 디엔첸호퍼가
개보수 작업을 맡았다. 이 때 교회가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면서 건축초기의 원형이 사라졌으며, 오늘날 고딕 양식의 잔재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교회 내부 장식과 본당의 둥근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프레스코들은 디엔첸호퍼의 동료인 바츨라프 바브리넥 레이너의 작품이다. 정교한 틀로 된
제단에는 루벤스의 작품인 '성 토마스의 수난'과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의
그림이 걸려 있다. 원본은 스테른베르크 궁전에 있다. |
◈ 소지구
광장
이 광장은 1257년에 조성된 이후로 소지구의 생활 중심지가 되었으며,
프라하 성의 바깥쪽 성벽에는 큰 시장이 발달했다. 차츰 광장의 중심부에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건물군이 양편으로 나뉘었다. 소지구 광장 주변의
가옥들은 대부분 중세에 들어선 것이지만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에 모두 개축되었다. 광장 중심분에는 웅장한 바로크 풍의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자리하고 있고, 그 옆으로는 예수회 대학이 있다. 1541년 소지구 전역을 휩쓴 대화재가
일어났는데, 웅장한 르네상스 식 외관을 갖춘 소지구 청사나 스테른베르크 궁전 같은 주요한 건물들이 대부분 이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이후 다시 그
자리에 지어졌다. 동쪽으로는 바로크 풍의 카이세르스테인 궁전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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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궁전의 정면에 1908년에서 1914년까지 이곳에 살았던 체코의 위대한
소프라노 엠미데스틴(Emmy Destinn)의 흉상이 있다. 데스틴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테너 가수인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와 함께 노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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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니콜라스 교회
이 교회는 소지구 광장을 양분하는 중심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1703년에 교회를 짓기
시작했으나, 본당 프레스코의 마지막 손질을 끝낸 1761년에야 완공되었다. 이 교회는
크리스토프와 킬리안 이그나즈 디엔첸호퍼 부자가 이루어낸 걸작이다. 그러나 이들은 교회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1646년에 카렐 슈크레타가 그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을 비롯해 교회 내부에 전시된 조각상, 프레스코,
그림들은 모두 당대의 뛰어난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1950년대에 광범위한 개수 작업을 실시하여
200년 동안 누수와 응결로 파손되었던 부분을 보수했다. |
체코를 자주 방문했던 모짜르트는 이
성당에서 바로크 오르간 연주를 하기도 했다. 또한 1791년 모차르트가 죽었을 때는 이곳에
4천여 명의 프라하 시민이 모여 함께 추모미사를 올렸다고 한다.
◈ 네루도바 거리
프라하 성으로 통하는 그림 같은 좁은 길인 네루도바는 이 길을 배경으로 많은 글을 썼던 시인이자 언론인 얀
네루다(Jan Neruda)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는 1845년에서 1857년까지 47번지의 '두태양'이라고 불리던 집에서 살았다. 가옥에 숫자를 매기는 방식이 도입되기 전인 1770년까지, 프라하에 있는 집들은 표지들로 구별되었다. 따라서 네루도바의 가옥들은 멋지고 다양한 문장을
갖고 있다. 네루도바의 가파른 경사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붉은 독수리(6번지), 세 개의
바이얼린(12번지), 금박 말발굽(34번지),
녹색 가재(49번지) 등의 특이한 문장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곳들은 현재 대부분 카페나
와인바, 맥주집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는 선 호헨스케인 궁전(20번지, 현 이탈리아
대사관)과 모르진 궁전(5번지, 현 로마 대사관) 같은 웅장한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도 많다.
모르진 궁전의 정면은 두 개의 거대한 뇌조상(무어신의 이름을 흉내낸 익살)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 동상들은 2층에 있는 반원형의 발코니를 지탱하고 있다. 일명 '영원한 구원의 여신 교회'라 불리는 티틴스
교회(Church of the Theatines)도 그 웅장한 외관 때문에 눈길을 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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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네루다 Jan
Neruda
프라하 하층 사회 출신의 시인이다. 1850년대
말부터 정열적인 애국 민주주의자로서 국민문학창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첫 시집 「묘지의 꽃」(1857)을 비롯하여 「우주의 노래Psne
kosmick」(1878), 「단순한 주제 Prost motivy」(1883) 등을 써서
낭만주의적 서정속에서 민족해방을 호소했다. 네루도바 거리 47번지는 그가 생전에 살았던 곳이다.
현재 비세흐라드의 묘지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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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 마리아 빅토리우스 교회
빅토리우스 교회의 전신인 홀리트리니티 교회는 프라하에서는 처음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었다. 독일 루터파 소속인 트리니티 교회는 이탈리아의
건축가 조반니 마리아 필리피(Giovanni Maria Filippi)의 작품이다.
1613년에 트리니티 교회는 완공되었지만 백산전투 이후에는 가톨릭계에서 인수하여
카르멜리테스(Carmelites)로 하여금 교회를 재건하도록 했으며,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여 교회 이름도 다시 지었다. 이로써 루터파 교회의 잔재는 거의 사라졌으며, 오른쪽 정면의 현관만 그대로 남아 있다. |
오른쪽 복도에 있는
정교한 대리석 제단에는 '프라하의 신성한 아기(이탈리아 이름인 일 밤비노 디 프라하(II
Bambino di Prague)로 더 잘 알려짐)'가 담긴 유리 상자가 안치되어 있다. 이 밀랍 상은 기적 같은 치료의 기록이며,
가톨릭계에서 가장 숭배하는 상 중의 하나다. 로브코위츠 가의 폴리네사가 스페인으로부터 사들여서 1628년에 카르멜테스일가에게 선물했다.
◈ 말테세
광장
말테세 광장은 이 자리에 위치하고 있던 '말타 기사단 수도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광장의 북쪽 끝에는 페르디난트
브로코프(Ferdinand Brokof)가 만든 세례자 성 요한을 형상화해서 만든
조각들이 서 있다. 이 조각들은 프라하 전염병의 종식을 기념하여 1715년에 제작한 분수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원래 르네상스 양식의 가옥들이었다. 그러다가 17,
18세기에 가톨릭계에서 소지구를 인수하자 이 지역의 가옥들도 현란한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제일 규모가 큰
노스티츠 궁전은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 건물의 일부는 네덜란드 대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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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티츠궁전은 17세기 중반에 세워졌으며, 1720년경에는 고전적인
꽃병들과 황제의 상들로 꾸며진 난간이 추가로 설치되었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일본 대사관이 들어서 있는
투르바궁전(1767)은 매력적인 핑크색의 로코코 건물로, 요세프 야거(Joseph Jager)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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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파섬
'악마의 시내(certovka)'라 불리는 블타바 강의 지류로
형성된 캄파 섬은 소지구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밝고 평화로운 곳이다. 이 시내의 이름은 19세기에 말테세 광장 근처에 살았던 한 여인의 악마적 기질에서 비롯되었다. 수세기 동안 이 시내의 물로
물방아를 돌렸다. 캄파에서는 오래된 세 개의 물방아를 볼 수 있다. '대수도원장의 물방아섬'도 완전히 복원되었다. 카를교의 교각 아래에 있는
작은 다리밑에서 물줄기의 흐름은 사라지고, 이 곳에서부터 가옥들이 늘어선다. 바로 이 지점이 '프라하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곳인데, 이 곳에는
곤도라 대신 카누가 있다. 중세 때에는 세탁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541년 소지구에 화재가
발생한 뒤에는 불타고 남은 잡석들로 제방을 견고히 쌓고, 건물들을 보다 안전하게 축조했다. 17세기에 이르러 도자기 시장으로 유명해지자 이 때부터 나 캄파(Na Kampa) 광장을 중심으로 매혹적인 가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남쪽 끝부분까지는
조용한 공원이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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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 마리아 교회
소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이 교회는 12세기에 지어졌다. 블라디슬라프
2세는 후에 말타기사단으로 알려진 개혁 교단인 '성 요한 기사단(Knights of St John)'에게 교회를 기증했다. 이 교회는 옛 주디스 다리로 연결되는
훈작사 수도원의 중심부에 서있다. 이 교회의 별스런 이름은 중세 때 수도원의 대문을 잠그기 위해 사용되었던 체인 때문에 생겨났다. 13세기에 고딕 양식의 사제관이 증축되었으나 14세기에는
원래의 로마네스크 교회가 철거되었다. 한 쌍의 거대한 광장 탑들로 현관이 새로 만들어졌지만, 공사가 여기서 중단되자 구 본당은 탑들과 교회
사이의 안마당 정도로 격하되었다. 1640년에는 카를로 루라고에 의해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높은 제단에 있는 카렐 슈크레타(Karel skreta)의 그림은 1571년에 말타 기사단이 레판토(Lepanto)에서 터키를 물리치도록 도운 성모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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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 거리
중세 때부터 이 거리는 카를교와 소지구 광장을 연결시키는 교량 역할을 해왔다. 구시가 쪽에서 이 다리를 건너면
1591년에 주디시 탑 앞에 세워진 옛 세관건물의 현관을 볼 수 있다. 주디스 탑의 2층에는 왕과 무릎 꿇은 사람의 모습이 새겨진 13세기의
부조 작품이 있다. 13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는 이 곳에서 다리 거리의 북쪽까지 프라하 주교의 안뜰로 쓰였다. 이 곳은 후스파 전쟁 때 파괴되었지만, 고딕 양식의 탑들은'세 개의
금종'이라고 불리는 집의 안뜰에 보존되어 있다. 이 탑들은 교탑의 높은 곳에 올라가면 볼 수 있다. 이 거리에는 르네상스 양식의 가옥들과 바로크
풍의 가옥들이 함께 들어서 있다. 소지구 광장 쪽으로 걸어올라 가다보면 왼편에 '검은 독수리'라는 집이 있다. 이 집은 화려한 조각품들과 웅장한
바로크 풍의 쇠창살들로 장식되어 있다. 1770년대에 세워진 카우니츠 궁전도 같은 방향에
서있다. 이 궁전은 아름다운 로코코풍의 외관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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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얀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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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다란 벽에 가리워진 고요한 이 공원은 '맨발의 카르멜리테스 수도원'의 정원으로 17세기에 만들어졌다. 교단에서
세운 두 예배당은 공원의 잔디와 과수들 사이에 잘 보존되어 있다. 그 중 하나가 엘리야 예배당(Chapel of Elijah)인데, 엘리야는 그의 구약 성서가 마운트 카르멜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이 교단의 창시자로 간주되는
사람이다. 엘리야 예배당은 석회동굴 모양을 하고 있다. 다른 하나의 예배당은 성 테레사에게 바쳐진 것으로, 1757년에 프러시아가 프라하를 포위했을 때 수도원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의 표현으로
18세기에 축조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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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의 왼편에는 이그나즈 플라쳐의 작품인 성 네포무크의
18세기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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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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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구 방면 프라하에서 가장 유명한 기념물로, 지금은 각종 공예품과
장신구 상점들이 늘어선 이 다리는 구시가와 소지구를 연결한다. 지금은 보행자 전용 도로지만 한때는 마차 네 대가 나란히 지나다닐 수 있던
길이었다. 현재 이 다리에 있는 동상들은 파손 위험 때문에 대부분 복제품으로 대체되었다. 진품 동상은 라피다리움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고딕 양식의 구시가 교탑은 현존하는 탑들 가운데 가장 정교하다.
o 성 요한, 성 펠리스, 그리고 성
이반 1714
페리디난트 브로코프(Ferdinand Brokof)가 만든 이 조각상에 보이는 성인들은 이교도들에게 속박되어 있는
기독교 신자들(조각상의 밑부분에 표현된)을 위해 삼위 일체회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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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성 비투스, 1714
3세기에 순교한 비투스와 그의 발 밑을 핥고
있는 사자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성 비투스는 무희들의 수호성인이며, 때로는 격심한 소요 사태의 해결을 강구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o 성 아달베르트, 1709
프라하의 주교였던 아달베르트는
991년에 페트르진 언덕을 세웠다.
o 성 루이트가르트, 1710
카를 교의 조각들
가운데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는 이 동상은 마티아스 브라운(Mathias
Braun)의 작품으로, 그의 나이 불과 26세에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예수가
나타나 그의 상처를 만졌다는 시토 수도회 장님 수녀의 환영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
o 성 빈센트
페레르와 성 프로코피우스, 1712
이 조각상은 많은 유대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데
성공한 빈 센트 때문에 비탄에 잠긴 한 랍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성 프로코피우스는 보헤미아의 네 명의 수호성인 중 한 사람이다.
o 성 존 네포무크, 1683
다리 위에 있는 한 부조
작품에는 네포무크의 순교 장면이 담겨져 있다. 이 부조는 행운을 기원하며 성인의 모습을 수세기 동안 만지고 간 사람들의 손길에 닿아 반질반질하게
윤이 난다.
❋
구시가 방면 1741년까지 카를 교는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통로였다. 길이 520m의 이 다리는 사암으로 된 블록으로 세워졌으며, 소문에 의하면 달걀을 섞은 치장 벽토로 그 강도를
더 높였다고 한다. 이 다리는 1357년 카를 4세의 명령에 따라 놓기 시작했으며, 페터 파를러가 공사를 주관했다. 이 다리의 원래 장식은 단순한 십자가
하나뿐이었다. 그러다가 1683년에 최초의 조각-성 요한 네포무크의 상-으로 장식되었는데, 이는
로마의 폰테 산탄젤로(Ponte Sant' Angelo)에 있는 베르니니의 조각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o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1711
예수회 선교단은 세 명의 무어인과 두 명의 동양인 개종자들의 후원을 받았다. 조각가
브로코프는 성인의 왼편에 있다.
o
17세기 예수 수난
십자가
나무로 만든 이 십자가는 카를 교의 완공 이후 200여년 동안 이 다리의 유일한
장식물이었다. 헤브리어로 된 '거룩, 거룩, 거룩한 주여'라는 문구는 신성 모독죄를 범한 한 유대인을 처벌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o 성모 마리아, 성 도미니크, 성 토마스, 1708
도미니크외의 수도사들(라틴속어로 '도미니의 지팡이들', '신의 개들'로 알려짐)이 성모
마리아와 그들의 상징인 개 한마리와 함께 조각되어 있다.
o 성모 마리아와 성 베르나르드, 1709
천사들과 주사위, 수탉, 백부장의 장갑 같은 열정의 상징들이 이 동상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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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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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르진(Petrin) 공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이 전망대는
1891년 주빌리 전시회가 열리 때 설치되었다. 언뜻 보아도 프랑스 파리 에펠 탑을 본뜬 것임을
알 수 있다. 8각형의 페트르진 탑은 높이 60m로, 에펠 탑의 4분의 1높이에 해당한다. 탑의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려면 299개의 나선형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전망대에 이르면 수고가 헛되지 않을 만큼 훌륭한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보헤미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크르코노쉐(Krkonose:'거대한'의 뜻)산의 눈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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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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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굴곡 거울이 줄지어 붙어 있는 이 미로는 전망대와 마찬가지로 1891년의 전시회 때 등장한 작품이다. 거울 미로는 비세흐라드의 옛날 고딕 축성법의 일부인 슈피츄카문의
형태로 만들어진 목조 파빌리온 안에 있다. 이 기묘하고 재미있는 집은 전시회가 끝난 뒤 이 곳 페트르진으로 옮겨져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다.
미로에 들어가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왜곡된 모습을 보고 웃고 있는 방문객의 눈 앞에는 1648년에 카를 교에서 있었던 '스웨덴의 항거하는 프라하의 방어'라는 투사화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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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로렌스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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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에 따르면, 이 교회는 10세기에 신앙심이 깊은 볼레슬라프
2세 왕자가 성 아달베르트로 하여금 이교도의 사당이었던 이 자리에 세우게 했다고 한다. 성물이
안치되어 있는 천장은 전설이 담긴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그림은 등이 달린 둥근 지붕이나 양파 모양의 돔을 얹은 탑 같은 신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로마네스크 식 교회를 압도하던 시대인 18세기의 작품이다. 이 교회 입구의 왼편에 있는
작은 칼바리 예배당에는'예수의 부활'을 그린 즈그라피토(도료의 표면을 긁어 내어 바탕의 색채가 대조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장식기법)가 있다.
북동쪽으로는 '성묘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 예배당은 1732년에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의
무덤을 본떠서 만들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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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트르진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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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m의 고도에 조성된 이 공원은 페트르진 언덕의 초목이 우거진 비탈에 자리하고 있다.
'페트르진'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유래를 갖고 있다. 하나는 슬라브의 신페룬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바위언덕'이라는 뜻의 라틴
어'몬스 페트리누스'에서 생겨났다는 설이다. 페트르진 언덕의 숲은 이 공원에서부터 백산까지 펼쳐져 있다. 12세기에 공원의 남쪽면이 포도밭으로 개간되기도 했지만 13세기에는 정원이나 과수원으로 옮겨졌다. 이 일대의 구릉은 아직도 오래된 사과나무와 배나무로 뒤덮여
있다. 페트르진을 휘감듯이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르면 프라하의 장엄한 광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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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원은 과일 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때에 특히 인기가 있다. 젊은 연인들은 1836년에 26세의 나이로 요절한 체코의 낭만파 시인인 카렐 히네크 마하(Karel Hynek Macha)의 기념비에 헌화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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