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고대 이집트의 왕들은 이땅을 가르켜 돌콰즈의 땅(MALACHITE-공작석)과 이땅의 별명이었던 터키옥(TURQUOISE)과 대리석(MARBLE)등의 광산들이 많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이곳은 고대 이집트의 오사이리스(OSIRIS) 신화와 연관되어 있었다. 또한 이땅과 이땅의 광산에서 종사하는 광부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축성을 하였고 하토(HATHOR)여신을 숭배하는 신전을 만들었다. 현재 발견된 신전의 벽과 폐광이된 광구 앞에 세워졌던 비석의 기록에는 기자의 대 피라밋의 주인이었던 키욥왕과 스내프로 왕등의 구왕조의 왕들과 핫셉숫수, 투트모스 3세와 랍세스 3세등 수천년에 걸친 왕조의 수많은 왕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구왕조말에 이땅은 외세와 베드윈의 침략을 잠깐 받기도 하였으나 곧 다시 이집트의 영토로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이땅은 정치적인 분쟁이 끊임없이 행해졌는데 그것은이땅이 자지고 있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 시나이 반도는 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육상 통로일 뿐만 아니라 지중해 저편에 있는 유럽 대륙이 시나이 반도를 거쳐서 홍해와 인도양 뱃길을 따라 동양으로 갈 수 있는 교량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옛부터 이땅은 문화 교류와 통상 교통로로서 아주 중요한 땅이었던 관계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모세에 의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이 가장 큰 사건이며 또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겠다. 현재의 시나이 반도내의 아스팔트길과 전통적으로 말하는 출애굽의 길은 꼭 일치한다고 할 수 없으나 대개 사람들은 전에 있던 길을 따라 새로운 길을 만드는 관습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아스팔트 길을 전연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시아니 반도와 나일 계곡(아라비안 사막)을 연결하는 스에즈 운하의 해저터널을 지나서 15Km 정도 남행하면 화려하지는 않으나 대추 야자나무가 무성한 조그만 오아시스가 하나 나오는데 이곳을 아랍어로 오윤무사(OYUON MUSA)라고 부른다. 여기가 성서상의 마라(출16:23)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139km정도 더가면 아브 잰니마(ABU ZENIMA)인데 지금은 석유자원의 수송항이지만 3500년전 고대 이집트 때는 마카(MARKHA)라고 부르던 곳으로서 주변의 마가라 광산에서 나오는 톨콰즈석을 수송하는 중요한 항구였다. 마가라광산의 주변 사라빗 엘까딤(SARAIT EL KHADIM)동굴속에서 알파벳의 기록문(PROTOSEMITIC TEXT OF SINAI)이 발견되었는데 지금까지 발견된 고어들 중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계속 스에즈만 (홍해)을 따라 남행하면 라스 사라팁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스에즈만을 버리고 내륙으로 뻗어있는 외디 파이란(WADI FAIRAN) 계곡이 삼거리의 죄측길은 파이란 계곡을 계속 따라 가는 길이면서 파이란 오아시스를 거쳐서 성 카더린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우측길을 60km 정도 더가면 엘드어(EL TUR)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엘림(출 15:27)으로 간주되는 장소인데 종려나무 70주와 12개의 샘이 있고 비잔틴 시대 때의 찬란했던 흔적은 간데없고 4세기때 건립된 조그마한 교회가 하나 남아 있다. 다시 삼거리에서 성카더린으로 가는 길인 와디 파이란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파이란(FAIRAN)오아시스에 도착한다.이 오아시스가 성서의 르비딤(REPHIDIM)인데 이곳이 이스라엘이 출애굽후 처음으로 아말랙족(AMALEKITS)과 여호수아(JOSHUA)가 전쟁을(출 17:8-16) 치룬 곳이다. 이 계곡을 와디히브린(WADI HEBRAN)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히브리(유태)가 지나갔다는 것이다 파이란 오아시스는 길이가 4km 정도인데 시나이 반도 내에서는 가장 큰 오아시스이다. 그리고 와디 엘세이크(WADI EL SHEIKH)로 들어가 50km 정도 가면 성 카더린 수원이 나온다. 이 수도원 자리가 호렙산 아래인데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난 장소이다(출 3:1). 모세의 출애굽 600년 후에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ELIJAH)도 호렙산 정상에서 하나님과(왕상 19:9-18) 대화 하였던 성산이다. 기원 2세기 초에서 중엽에 이르면서 로마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해지자 많은 애굽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하여 시나이 반도의 성지들 주변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는데 이것은 은둔자(HERMIT MONKS)들이 은둔 생활에서 집단 생활(MONASTICLIFE)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기원 313년 콘스탄틴 대제의 모후인 헬레나 왕후(EMPRESS HELENA)에게 베드윈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청원이 헬레나 모후로 하여금 기원 330년 떨기나무 앞에 조그만 성모 교회와 탑(TOWER)을 세우게 하였다. 그리고 기원 527 - 565에는 저스티니안 황제가 현존하는 수도원의 성벽을 축성하여 수도원을 요새화 하였다. 그리고 같은 시기인 기원 542년에 저스티니안 황제의 건축가이며 축성의 장본인인 성 스테파노(STEPHANOS)는 카톨리콘(KATHOLIKON) 본부 교회를 설계하여서 9년 후인 551년에 완공 하였는데 교회는 바실리카 스타일에 빨간 화강암으로 세운성모 기념 교회도 포함되어 교회 내부에 들어가 버렸다. 이 교회의 동단(APSE) 반타원형의 벽면 전체에 그려져 있는 모자이크 벽호는 변하 장면(마태 17:2)인데 6세기 것으로서 동방 교화사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또한 보존 상태가 거의 완벽한 것이다. 성 카더린이라는 이름은 기원 7세기경 수도원의 한 수사가 꿈에서 천사의 인도를 받아 3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성 카더린산 정상에서 찾아 이 수도원으로 옮겨 오면서 원래의 이름인 변화(STRANSFIGURATION) 수도원과 바뀌었다. 수도원이 생긴후 아랍 침략자도 십자군도 오토만 터키의 지배자들도 그리고 나폴레옹에 이르기까지 전부 이 수도원에 대하여 보호령을 내렸다. 그래서 1500년이나 가까운 이 수도원이 소장하고 있는 3500여점의 필사본과 기타의 물건들은 로마의 바티칸 다음으로 많은 것인데 기독교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들이다.
이 수도원 옆으로 모세산(시내산)에 오르는 두 개의 길과 완만한 능선으로 된 길로서 정상까지 통상 3시간정도 걸어 올라가면 된다. 해발 2285m의 모세산을 비롯해서 이곳에는 해발 2000m 가 넘는 산들이들이 즐비하지만 어느 산이건 하나같이 흙이 한줌없는 돌산들 뿐이다. 모세의 출애굽 사건과 연관된 성산(THE HOLY MOUNTAIN)인 호렙산 정상에는 기원 4세기경에 세워진 조그마한 교회 자리에 1934년에 다시 세운 성 삼위일체 교회가 있다. 수도원에서 동쪽으로 펼쳐지는 와디 마라(WADI MARRA)계곡을 따라 나가면 에인 후드라(AIN HUDRA)라고 불리는 신광야(성서상으로는 신광야 또는 바란 광야라고 함) 일부를 통과하여 시나이 반도 동쪽 해안인 아콰바만을 향해 계속 내려가게 된다. 아콰바만의 누웨이바(NUWEIBA)에서 해안을 따라 북으로 75Km쯤 가면 이집트-이스라엘 국경인 타바(TABA)에 도착하게 된다. 누웨이바에서 남으로 가면 시나이 반도 남단에 있는 라스카니사(RASKANIA)와 쌀므엘 쎄이크(SHAM EL DHEIKH)라는 반도의 가장 뽀족한 끝에 닿느데 이 일대의 바다는 아름다운 붉은 산호들이 많은데 홍해라는 바다 이름은 여기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또한 물이 아주 맑아서 수중을 휜히 볼 수 있으며,그리고 이곳에서는 아세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한눈에 바라볼 수있다. 시나이 반도 북쪽 지중해 연안은 이집트-이스라엘 국경인 라파(RAFAH)에서 스에즈 운하의 콴타라(QUANTARA)까지 펼쳐지는 모래 벌판이 돌산들이 즐비한 남쪽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곳이고대로부터 아프리카-아세아 통상로로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모세 출애굽 사건후 1200년후에 아기 예수님과 그의 가족이 이길로 해서 평화의 땅을 찾아 피난 하였다. 고대 이집트왕 아모스(AHMOS I : 5000 B.C)는 희소스(HYHSOS)를 이끌고 멀리 유프라테스강까지 정벌한 것이 이집트 최초의 아세아 정벌 기록이다. 이 후 많은 이집트왕들이 이길을 통하여 아세아 대륙으로 진출하였던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집트의 중요한 통상로인 이길은 역시 반대로 힘이 강대한 다른 나라들에게도 이집트를 침공하는데 아주 중요한 군사도로가 되어서 기름진 나일강 하류 곡창 지대를 항상 탐하였다. 이길을 통하여 들어온 외국군들은 희소스, 앗시리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아랍군, 십자군등 그리고 가장 최근의 이스라엘군등 끊임없는 통로였다. 현대의 이길은 군데군데 사람들이 정착하여 사막을 농지화하고 있는데 엘 아라씨 주변에서 생산되는 참외, 복숭아, 포도등 기타의 과일들은 이제 이집트의 명산품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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