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중국 4대 추녀 - 종리춘(鐘離春), 모모(毋), 맹광(孟光), 완녀(阮女)

 

종리춘(鍾離春, ?~BC 342)

 ()은 종리(鍾離)이며 이름은 춘().

 전국시대 제(齊)나라 무염(無鹽) 지방의 여자로 너무나 못생겨 40세가 되도록 시집을 가지 못했다.

 제 선왕(재위: BC 342~BC 324)의 비이다.

 외모가 못생긴 여성으로 묘사되었으나 선왕에게 접근하여 결혼을 성공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그녀를 추녀(醜女)의 대명사로 일컫는다.

산동성(山東省) 가상현(嘉祥縣) 출토 화상석(畵像石).→

 

 

강안(强顔, qiǎng yán)

 强: 강할, 굳셀 강   顔:  얼굴 안

 강한 얼굴.

 수치를 모르는 뻔뻔스러운 철면피를 말한다.

 

 '종리춘(鐘離春)'은 제()나라 무염읍(無鹽邑, 산동성 동평현(東平縣)) 여자로, 선왕(宣王)의 왕비이다. 그녀의 모양새는 이러했다. 절구 머리에 퀭하니 들어간 눈, 남자 같은 골격, 들창코, 성년 남자처럼 목젖이 나와 있는 두꺼운 목, 숱이 적은 머리털, 허리는 굽고 가슴은 돌출되었으며, 피부는 옻칠을 한 것과 같았다. 그녀는 나이 사십이 되도록 받아 주는 곳이 없어 스스로 시집갈 곳을 구했으나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사방으로 돌아다녀도 상관하는 사람이 없었다.

 

 어느 날 그녀는 짧은 갈옷을 갖춰 입고 직접 선왕을 찾아가 알자(謁者)에게 말했다.

 "저는 제나라에서 아무도 원치 않는 여자인데, 군왕의 성스러운 덕에 대해 들었습니다. 후궁이나 청소하면서 사마문(司馬門) 밖에서 절이나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대왕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알자는 그녀의 말을 선왕에게 보고했다.

 선왕은 마침 점대(漸臺)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왕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이를 듣고 입을 가리고 크게 웃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말했다.

 "이 사람은 천하에 얼굴이 두꺼운 여자로다. 어찌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선왕이 이 여자를 불러 접견하며 말했다.

 "옛날 선왕께서 과인을 위해 배필을 취하여 주어 이미 자리가 다 차 있소. 이제 부인이 향리의 평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아니하고 만승의 임금에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고 있으니 무슨 특별한 재능이라도 있는 것이오?"

 

 종리춘이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저 대왕의 아름다운 의를 흠모했을 뿐입니다."

 

 선왕이 물었다.

 "그렇다고 치고, 그대는 무슨 특기가 있소?"

 

 종리춘이 한참 있다 대답했다.

 "은신술(隱身術: 몸을 숨기는 기술)에 능합니다."

 

 선왕이 말했다.

 "은신은 나도 바라는 바이오. 한번 해 보시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리춘이 홀연 종적을 감추었다. 선왕은 크게 놀라 즉시 은신술 서적을 읽으며 주문를 외워 대고 자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자세히 연구했지만 결국 은신술을 배울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선왕은 다시 종리춘을 불러 물었다. 종리춘은 은신술에 대한 대답은 하지 않고 눈을 들고 이를 악물며 손으로 무릎을 치며 말했다.

 "위태롭고 위태롭다."

 

 이렇게 네 차례나 반복하자 선왕이 말했다.

 "무슨 뜻인지 듣기를 원하오."

 

 종리춘이 대답했다.

 "지금 대왕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나라를 다스리는데 서쪽으로는 연횡책을 추진하는 진(秦)나라에 대한 근심이 있고, 남으로는 강한 초(楚)나라와 원수가 되었으니, 밖으로는 두 나라에 대한 근심이 있습니다. 안으로는 간신이 몰려들어 백성들이 왕에게 귀복하지 않습니다. 나이 사십에 아직 태자를 세우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힘을 기울이지 못하고 비빈들에게 신경을 써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높이고 싫어하는 바를 홀시합니다. 결국 언젠가는 조상의 사당이 무너지고 사직이 안정되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5층 점대를 세우고 황금과 백옥, 낭간(琅玕), 농소(籠疏), 비취(翡翠), 주기(珠璣), 각종 옷감과 장식, 백성들은 모두 극도로 지쳤으니 이것이 두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현능한 사람은 산림에 숨어 버리고 아첨하는 사람들만 신변에서 힘을 얻고 있으며 사악하고 허위에 가득한 인간들이 조정에서 직책을 맡고 충간하는 사람들은 출입을 하지 못하니 이것이 세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미주에 취하여 밤낮을 그치지 않고, 무녀와 악사와 광대들이 섞여 큰소리로 웃으며, 대외적으로는 제후들과의 예를 행하지 않고 안으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이것이 네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그래서 위태롭다 위태롭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선왕이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무염군(無鹽君, 종리춘)의 말은 정말로 통쾌하오. 내 오늘에야 비로소 그런 통쾌한 말을 듣게 되었소."

 

  그러고는 점대를 철거하고, 가무를 중지시켰으며 소인을 파면하고 옥과 구슬 장식을 버리고 병마를 조련하고, 창고를 가득 채우고, 궁전의 네 대문을 열고 사람들을 불러 직언을 하도록 하여 길모퉁이의 문제까지도 말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길일을 택하여 태자를 책립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를 들어오게 했으며 무염군을 황후로 책립했다. 제나라의 안정은 모두 이 못생긴 여자의 공로였다. 군자는 종리춘이 마음이 바르고 말을 잘한다고 말했다. '시경(詩經)'에 '군자를 만난 후에야 내 마음이 즐겁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한 말이다.

 

 이 이야기는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 '제종리춘(齊鐘離春)' '신서(新序)' '잡사(雜事)'에 나오는데, 선왕의 좌우 사람들이 종리춘을 보고 '천하에 얼굴이 두꺼운 여자'라고 한 말에서 '강안(强顔)'이 유래했다.

 

 '강안(强顔)'은 다음의 전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소위 뻔뻔스러운 사람이니 어찌 귀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及以至是, 言不辱者, 所謂强顔耳. 曷足貴乎.)'

 - 사마천(司馬遷)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전문은 태산홍모(泰山鴻毛) 참조 -  

 

 

각화무염(刻畵無鹽, kè huà wú yán)

 刻: 새길 각   畵: 그림 화   無: 없을 무   鹽: 소금 염

 (추녀)무염을 부각(浮刻)시키다.(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리다.)

 비유가 타당하지 않거나, 도저히 비교 대상이 되지 않거나, 너무 차이가 나는 물건을 비교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무염읍(無鹽邑)에 종리춘(鐘離春)이란 여자가 살고 있었는데, 너무 박색이라서 나이 40이 되도록 시집도 못 가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제선왕(齊宣王, 재위: BC 320BC 301)을 찾아가 제선왕의 앞에 닥친 네 가지 위태로움을 지적했다. 종리춘에 말에 감복한 제선왕은 그녀의 말을 다 받아들여 개혁을 단행했으며, 재능에 탄복해 그녀를 비()로 삼고 무염군(無鹽君)에 봉했다.(강안(强顔) 참조) 그로부터 사람들은 얼굴이 못생긴 여자를 '무염(無鹽)'이라 일컫게 되었다.

 

 '진()나라 원제(元帝, 재위: 317322) 때 주의(周顗)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유량(庾亮)이 일찍이 주의에게 말했다.

 "여러 사람들이 그대를 고결하기로는 악광(樂廣)과 같은 사람이라고 여긴다오."

  주의는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떻게 무염을 부각시켜(정교하고 섬세하게 그려) 서시를 모독할 수 있는가."

 (庾亮嘗謂顗曰, 諸人咸以君方樂廣. 顗曰, 何奈刻畵無鹽, 唐突西施也.)'

 

 이 이야기는 '진서(晉書)' '주의전(周顗傳)'에 나오는데, 주의의 말에서 '각화무염(刻畵無鹽)'이 유래했다.

 '천하의 추녀인 무염을 천하의 미녀인 서시와 비교하면서 (무염을 천하의 미녀라고 생각하고)무염을 부각시키면 서시를 모독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 그와 마찬가지로 나같이 불초한 사람을 천하의 현인인 악광과 비교하면서 (나를 천하의 현인이라고 생각하고)칭찬하고 있으니 이는 악광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각화무염(刻畵無鹽)'은 서시(西施)를 모독한다는 뜻의 '당돌서시(唐突西施)'와 함께 사용되는데, 추한 것을 높여 아름다운 것을 깎아내린다는 속뜻을 가지고 있다.

 '각화(刻畵)'는 '섬세하고 정밀하게 그리다', '부각시키다'라는 뜻이고, '당돌(唐突)'은 '감정을 상하게 하다' 혹은 '비위를 거스르다', '모독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서시(西施)는 춘추시대 월나라의 미인으로, 월왕 구천(勾踐)이 오왕 부차(夫差, ?~BC 473, 오(吳)나라의 제7대이자 마지막 군주, 재위: BC 496~BC 473 (23년간))를 멸망시키기 위해 미인계를 쓰면서 부차에게 보낸 월나라의 미인이다.(동시효빈(東施效顰) 참조)

 

 

 列女傳(열녀전) 鍾離春(종리춘)

 종리춘(鍾離春)이란 자는 제(齊)나라 무염(無鹽) 고을의 여자로, 선왕(宣王)의 정비(正后)이다.

 그 생김새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지극히 추녀(醜女)였다.

 정수리가 절구통처럼 패였고, 두 눈은 움푹 들어갔으며,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길고, 마디가 울퉁불퉁하며, 들창코에다가, 목의 인후가 툭 튀어 나왔고, 목 뒤는 살이 찌고, 머리카락이 적으며, 허리는 끊어진 듯하고, 가슴은 앞으로 튀어 나왔는데, 살갗은 칠흑같이 검었다.

 나이가 40이 되도록, 그녀를 받아주는 이가 없어서, 나서서 출가할 곳을 찾았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세상에서 버림받은 몸이 되어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생각끝에 짧고 거친 베옷을 깨끗이 차려 입고 스스로 선왕의 궁전에 이르러, 알자에게 말했다.

 "저는 제나라의 팔리지 않는 여자이온데, 제가 듣자하오니 대왕께서는 성덕을 행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원컨대 후궁의 청소부를 시켜서 사마문(왕궁의 바깥문)에서 머리를 조아려 인사하도록 해 주십시오. 대왕께서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알자가 이 말을 듣고 왕에게 아뢰었다.

 때마침 선왕은 물 위에 있는 누대인 점대(漸臺)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좌우의 신하들이 알자의 말을 듣고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말하기를,

"이는 천하의 낯 두꺼운 여자이다. 어찌 이상하지 않은가?"라고들 하였다.

 이에 선왕은 그녀를 불러서 만나보고, 이렇게 말했다.

 "지난날 先王께서 나를 위하여 배필들을 선택해 주셨으므로, 이미 모든 배필이 자리에 세워져 있다. 지금 부인은 시골의 서민에게 출가하려 하지 않고, 만승의 군주를 구하고 있으니, 또한 무슨 별다른 재주라도 지니고 있는가?"

 종리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없습니다. 저는 다만 삼가 대왕의 훌륭하신 德義를 사모할 따름입니다."

 이에 왕이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종리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은어(隱語)인 수수께끼를 잘하였습니다"

 이에 선왕이 말하였다.

 "수수께끼라면 본디 내가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시험해 보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리춘은 몸을 훌쩍 감추는 것이었다.

 선왕이 크게 놀라서 은서(隱書)를 펴서 읽어보고, 물러나와 추론해 보아도, 또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다시 종리춘을 불러 그것을 물으니,

 종리춘은 은어로 대답하지 않고, 다만 눈을 들어 이를 악물고, 손을 들어 무릎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이와 같이 네 번이나 거듭하였다.

 그래서 선왕이 말하였다.

 "원컨대 가르침을 듣겠소"

 그러자 종리춘은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대왕께서 임금으로 있는 제나라는 서쪽에는 횡행하는 나라에 대한 근심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대한 초나라 원수가 있습니다.

 밖으로는 두 강국에 대한 어려움이 있건만, 안에서는 간신들이 들끓고, 백성들은 나라를 쫓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춘추 40, 젊음이 왕성한 남자로서 결단력이 없습니다.

 여러 왕자에 대한 배려는 없으시고 여러 부녀들에 대해서만 힘쓰십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높이고, 믿어야 할 사람은 소홀하십니다.

 그러므로 일단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사직을 안정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점대를 오중(五重)으로 꾸미시고, 황금과 백옥과, 낭간(琅玕농소(籠疏비취(翡翠주기(珠璣)등으로 몸을 휘감아 장식하시니 이에 만민들은 지칠대로 지쳐 있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산림에 은둔하고, 아첨하는 무리들만이 대왕의 좌우에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간사한 자와 위선자만이 조정의 출입이 자유롭고, 간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의 궁정 출입은 막혀 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주연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밤을 낮으로 삼아, 女樂廣大들만이, 거침없이 웃습니다. 밖으로 제후의 예를 닦지 않고, 안으로 나라의 정사를 돌보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네 번째 위태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위태롭다는 말을 거듭했던 것입니다."

 종리춘의 이 말을 들은 선왕은 위연히 탄식하여 말했다.

 "아픈 곳을 찌르는 말이로다! 무염의 훌륭한 말이여! 나는 이제 여인의 말을 모두 받아 들이리라"

 이에 점대(漸臺)를 부수고, 여악(女樂)을 그만두게 하였으며, 아첨배들을 물리치고, 주옥의 조탁을 폐지하고, 병마를 정돈하며, 부고를 충실하게 하였다.

 사방에 공문(公門)을 열어, 바른말 하는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나아가 일반 백성들의 의견도 받아들였다.

 길(吉)한 날을 택하여, 태자를 세우고, 현모(慈母_를 보내어, 무염의 여인을 모시어 황후로 삼았다.

 그러자 제나라는 크게 안정되었으니, 이것은 추녀의 힘이었다.

 군자는 일러 말하기를,

 "종리춘은 바르고도 말을 잘했다.

 '시경(詩經)'에서도 이르기를,

 '이미 군자를 만났으니, 내 마음은 즐겁네'라고 했는데,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공(頌)에서 말하기를,

 "무염의 여자는 제나라 선왕을 설득하고자 하였네. 네 가지 위태로움을 분별하여, 나라의 어지럽고 번거로움을 지적하였네. 선왕은 그 말을 좇아 사방의 公門을 열었네. 드디어 태자를 세우고 무염의 여인을 모셨네"고 하였다.

 

 

 

모모()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黃帝)의 처.

 

 전하는 말에 의하면 모모의 모습은 야차와 비슷하여, 추악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4대추녀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모의 후덕함은 당시 여인들의 귀감이 될 만하였다.

 

 시인 굴원(屈原)도 모모에 대하여는 아주 높이 평가하였다.

 "...모모교이자호(嬌而自好)".

 

 모모의 지혜도 보통이 넘었다. 그녀의 이러한 내재적인 능력은 중화민족의 시조인 황제로 하여금 처로 받아들이게 하였다. 모모는 과연 황제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다른 여인들에게 덕을 베풀었을 뿐아니라, 황제를 도와 염제를 격파하고, 치우를 죽였다.

 

 

 

맹광(孟光)

 미녀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추녀

 '형처(荊妻)'라는 말이 있다.

 남자가 다른 사람에 대해 자신의 아내를 낮추어 이르는 말인데, 이 말은 후한의 양홍(梁鴻)이라는 사람의 아내인 맹광(孟光)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맹광은 몸의 여기저기에 군살이 많이 붙어 있었으며, 용모도 볼것이 없는데다 피부색까지도 새카맸다. , 전형적인 추녀였던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광은 미녀가 갖지 못한 어떤 것을 지니고 있었다.

 

 맹광이 지닌 장기(長技)를 이야기하기 전에 여자와 미모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세상의 남자들 중에는 여자는 뭐니뭐니해도 얼굴이 예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그런 한편에서는 얼굴만 반반한 게 무슨 소용이나 여자도 사람인데 뭐니뭐니해도 속이 차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법 속찬 소리를 하는 축들도 있다. 물론 속도 여물고 얼굴도 고운 여자라면 금상첨화,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조물주가 세상을 그리 빚어놓진 않은 듯싶다.

 

 그렇다면 여자를 선택할 때, 과연 어느 쪽을 택해야 두고두고 속으로 잘 골랐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나오는 맹광(孟光)이라는 귀여운 악녀(?)의 이야기를 참고로 삼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맹광이 지닌 장기(長技)란 다름아니라,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돌절구를 들어올릴 수 있을 만큼 힘이 장사였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녀의 언동(言動)은 한 점 흠잡을 데가 없었으며, 대단히 덕이 높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자자했다. 그런만큼 곳곳에서 혼담이 끊이지 않았다고, 진나라의 황보밀(皇甫謐)이 쓴 '열녀전'에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농촌이라서 얼굴보다는 심성이, 무엇보다도 힘이 장사라는 점이 사람들로부터 더 사랑을 받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맹광은 그 어떤 혼처 자리도 계속해서 싫다고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네 외모가 걱정이 돼서 그러는 게냐? 상대는 이미 네 얼굴에 대해 알고 있고, 그런 너를 아내로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걱정할 게 무엇이 있겠느냐?"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자, 맹광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외모는 태어날 때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이니, 근심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제가 거절을 하는 것은 상대의 인품이 아내로서 받들기에는..."

 

 "인품이 변변치 않다는 게냐? 네 얼굴 생각도 좀 해야지."

 아버지가 아무리 딸을 설득해도 맹광은 여전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나이 서른이 되었다. 당시 여성의 결혼 적령기는 16~17살이었으니, 맹광은 십수 년을 계속 고개만 흔들어댔다는 셈이 된다. 그녀가 서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좋은 자리가 나섰음에도, 이러니 저러니 하여 계속 싫다고만 하더니 이미 혼기를 놓쳤지 않느냐. 도대체 어찌할 셈으로 그러느냐. 평생 이 집에만 있을 작정이냐?"

 

 "그럴 작정은 아니옵니다만, 좋은 사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대체 어떤 남자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냐?"

 

 "이를테면양홍(梁鴻)님 같은 분이…"

 

 "뭣이, 양홍이라구? 양홍이라면 가난뱅이에다 돼지를 치는 그 별난 양홍을 말하는 것이냐? 그런 남자가 정말 좋다는 것이냐?"

 

 "기개가 있는 분입니다."

 

 "기개라구? 기개가 뭐지? 그런 게 있다손 치더라도, 밥을 굶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질 않느냐. 어째서 그런 남자를..."

 

 아버지는 부아가 나서 그렇게 말했으나, 이야기 도중 갑자기 소리 내어 웃어버리고 말았다.

 "과연 그자는 너와 어울리는 사내다. 별난 돼지치기와 검은 돼지같은 너와 말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지금 그리 말하는 것이냐?"

 

 "네, 만일 양홍님 같은 훌륭한 분이 저처럼 못생긴 여자라도 데려가 주시겠다 하시면, 저는 그분을 섬기겠습니다."

 

 돼지치기 양홍은 시간만 나면 서책을 가까이했다. 돼지를 치는 사람이 무슨 책을 읽는 걸까 사람들은 이상히 여겼지만, 그를 찾아오는 선비 풍모의 몇몇 사람에게 듣자니,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을뿐만 아니라, 게다가 기개가 있는 처사라고 입을 모으는 것이었다.

 

 어느 날 맹광의 부친이 돼지우리 옆에 있는 양홍의 처소를 찾아 갔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읽고 있는 중이었다. 맹광의 아버지가 방문 앞에서 기침을 하자, 양홍은 밝은 얼굴로 얼른 그를 맞이하고는 손수 차를 끓여 내오며, "아직 점심 준비가 안돼서..."라고 말하고 이어서 물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자네는 학문이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돼지를 기르는 것보다 관리가 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벗들로부터도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만, 저는 입신출세를 하기보다는 돼지를 기르는 편이 더 즐겁습니다."

 

 "돼지 치는 걸 좋아한다면, 어째서 책을 읽고 있는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관리가 되기 위해서가 아닌가?"

 

 "아니오, 그저 제 자신을 위해 학문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자신을 위해서라구? 나처럼 학문이 없는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통 모르겠구먼. 그래서 마을에서 자네를 별난 사람이라고 하는 게지. 그런데 그런 별난 자네를 우리 딸이…"

 

 맹광의 부친은 그간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양홍은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더니, 입을 열었다.

 "따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기꺼이 댁의 따님을 아내로 맞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맹광은 양홍의 희망대로 쓰던 물건 몇 가지만을 갖고 시집을 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양홍은 며칠이 지나도록 부부의 연을 맺으려 하질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맹광은 어렵게 남편에게 운을 떼었다.

 "저는 여러 곳에서 혼삿말이 있었습니다만, 모두 거절하고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당신도 여러 곳에서 혼담이 있으신 것을 물리고 저를 택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 내게는 혼담 같은 것은 들어오질 않았소. 이처럼 가난한 돼지치기의 집에 누가…"

 

 "그러셨습니까? 그렇다면 절 맞이하신 것은 처음 들어온 혼담이어서 응낙하신 것인지요?"

 

 "아니, 그렇지 않소. 난 나와 함께 난세를 헤쳐갈 동반자가 필요했소. 당신이 바로 그런 여자라고 생각해서 혼인한 것이오."

 

 "제가 당신이 생각하고 계셨던 그런 여자가 아니어서, 그래서 아직 부부의 연을 맺지 않으시는 겁니까?"

 

 맹광이 그렇게 말하자, 양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 제가 너무 추해서…"

 

 그러자 양홍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머리를 올리고, 옷을 차려 입은 그 모습이…"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맹광은 이튿날 헌옷으로 갈아입은 뒤, 머리도 소박하게 묶어 전에 하던 차림새로 돌아왔다. 양홍은 그런 아내의 모습을 보자 비로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제야말로 진짜 내 아내가 됐구려" 하고 말한 뒤, 그날 밤 부부의 연을 맺었다. 맹광은 나이 서른이 되어 비로소 남녀 화합의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시는 왕망(王莽, BC 45~AD 23)이 정권을 잡아, 그의 악정 아래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세상이 몹시 어지러운 때였다. 양홍의 학문에 관한 평판이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던 터라, 양홍에게는 곳곳의 반란자나 그 수하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을 위해 일해주지 않겠냐는 권유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양홍은 난세에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기에 그러한 권유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돼지치기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에서 양홍은 약간의 땅을 일구어 경작하고, 맹광은 베를 짜며 2년간 생활했다. 이윽고 산속까지도 유혹의 손길이 뻗치게 되자, 두 사람은 오나라로 건너가 이름을 바꾸고 어느 집의 작은 방 한 칸을 빌려 생활했다.

 

 양홍은 매일 맷돌질을 하는 인부로 일했으므로, 거기서 얻어지는 보잘것없는 수입으로는 부부가 겨우 입에 풀칠을 하기에도 버거운 정도의 살림이었다. 하지만 맹광은 매일 저녁 몸단장을 깔끔히 갖춘 뒤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녀의 몸단장이란 가시나무() 가지로 만든 비녀로 머리를 올리고, 목면 치마를 깨끗하게 손질하여 입는 것이었다.

 

 그런 맹광은 남편이 돌아오면 정성껏 마련한 밥상을 눈썹 높이까지 들어올려 내온 뒤, 얌전하고 공손하게 남편에게 식사를 권했다고 한다. <열녀전>의 원문에는 이를 '거안제미(擧案齊眉)'라 적고 있다.

 

 '형처(荊妻)' 란 말은 바로 맹광이 머리에 꽂았던 가시나무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한 '거안제미'는 밥상을 눈썹과 가지런하도록 공손히 들어 남편 앞에 가져간다는 뜻으로, 지어미가 예절을 다하여 지아비를 섬기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런 연유로 맹광은 부덕을 갖춘 참한 아내의 한 전형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맹광을 악녀의 대열에 세운 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이다. 힘이 장사이며, 두리뭉실한 몸매에 시커먼 얼굴, 게다가 이목구비가 모두 제멋대로 생긴 맹광이 가시나무 가지로 비녀를 해 꽂고, 밥상을 눈 높이까지 들어올려 공손히 남편에게 식사를 권하는 모습이라니악녀가 아니라면 어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단 말인가!

 

 

 

완녀(阮女)

 전설에 의하면 허윤(許允)이 완녀와 결혼한 날 밤에 그녀의 모습을 한번 보고는 놀라서 도망쳤다고 한다.

 완녀가 허윤을 붙잡자, 허윤은 벗어나려고 발버퉁치면서 말했다.

 "여자에게는 사덕(四德)이 있는데, 너는 그 중에 몇 개나 가지고 있느냐?"

 

 완녀가 대답하기를

 "난 단지 아름다운 용모만 없을 뿐인데, 선비가 가져야할 백가지 중에 너는 몇가지나 가지고 있느냐?"

 

 허윤은

 "나는 백가지를 다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완녀는

 "내가 알기로는 백가지 중에 덕행이 최고로 알고 있는데, 넌 그저 여자의 예쁜 얼굴만 좋아하고, 여자의 덕행은 좋아하지 않으니 어떻게 모든 걸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냐?"

 

 허윤은 더 이상 말을 못하였고, 완녀의 식견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같이 살았다. 허윤은 완녀의 품성이 다른 여자들에 비하여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고, 평생을 서로 사랑하며 보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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