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성(河南省) 성도 정주(鄭州-ZhengZhou = CGO)                ☞ 정주관련상품

 

✿ 하남성(河南省)

 황하의 남쪽에 펼쳐진 곳이라 하남성(河南省)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고대문화의 발상지 중 하나로 고대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6대 고도 중에서 낙양, 개봉이 이 성안에 모두 있고 성도인 정주도 3500년의 역사를 지닌 오래된 도시다.

 

 이렇게 고도가 많아서 그런지 하남성에는 유명한 유적과 유적지도 많은데, 그 숫자만 해도 130여만 건이다. 개봉의 소림사와 낙양의 용문석굴은 그 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며 중원문화의 발양지인 하남을 대표할 만하다.

 

 총면적은 16만㎢, 인구는 약 9천만 명이고 한족, 회족, 몽고족, 만주족 등이 전체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 이곳의 주요 농산물은 밀, 담배, 면화, 콩 등이고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구조로 산과 평원이 반반씩 차지하고 있다.

 

 

✿ 정주(鄭州)

 옛 이름은 정셴(鄭縣: 1913∼1949)이며, 현재 중국 허난성(河南省) 중앙에 있는 도시이다. 1954년 이래 허난성의 성도이며, 지구급(地區級) 시이다. 대평원으로 진입하면서 넓어지는 황허 강(黃河) 남쪽 유역, 슝얼 산맥(熊耳山脈) 동쪽 끝에 있다. 이 도시는 남북으로 타이항 산맥(太行山脈)과 허난성 서부 산맥의 가장자리를 따라 난 길과, 동서로 황허강 서안을 따라 놓인 길이 교차하는 곳에 있다. 우루무치에서 난주, 서안을 지나 연운항까지 계속되는 롱해선과 중국의 남북을 잇는 경광선이 만나는 정주(鄭州)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교통의 십자로에 걸맞게 역 앞에는 빌딩과 호텔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뒷골목에는 전국 각지의 민예품을 파는 자유시장이 열리고 있다.

 

 도시의 상징인 이칠기념탑(二七記念塔)에 오르면 전체 도시의 형태를 파악할 수도 있다. 시의 북부에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황하가 흐르고 있어 정주는 황하문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이곳은 옛날부터 화북과 화남을 맺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지금도 중국을 열차로 여행하면 한 번은 통과해야 하는 곳이다.

 

 하남성(河南省) 성도인 정주의 인구는 인구 500만 명, 면적 7,446㎢이다. 이곳은 과거부터「雄峙中原控制險要(웅치중원공제험요)」(중원에 웅거하여 요로서 지킨다)라 하여 군사요지로서 중요시 됐다. 商代(상대)의 유적이 있으며,  打虎亭(타호정) 漢墓(한묘)에는 대량의 벽화와 인물화가 남아있다.

 

 정주시 서남쪽 80km에 있는 登封(등봉)에는 中岳(중악)인 嵩山(숭산)이 있고, 무술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림사가 산기슭에 있다. 493년에 세워진 소림사에는 현재 무술단련에 쓰던 각종 병장기 5백여점과 羅漢(나한)벽화, 練拳(연권)벽화가 보전돼 있다.

 

 

소림무술의 경연, 정주 국제소림무술제(Kung-Fu Festival)

 매년 9월 보름에 5일간 진행되는 이 행사는 소림무술의 본고장인 정주에서 정통무술을 경연하는 전통축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무술 단체가 모여 경기, 공연 등의 행사를 벌인다. 경기는 비교적 격렬하고, 다채로운 공연들이 많이 열리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국내외 많은 여행객들이 이곳에 와서 중국 무술의 매력을 한껏 즐긴다. 영화배우로 유명한 이연걸이 이곳 소림사 무술제에서 1등을 했었다.

 

 소림사는 이미 1,500년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소림무술을 세상에 알렸다. 소림무술제는 이러한 소림무술을 고양 발전시키고 지역의 관광과 경제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1991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행사중에는 각종 형식의 소림무술 시연과 경기가 거행되고, 국제무술애호가들의 교류활동도 행한다. 또 무술제의 방문과 더불어 주변의 정주황하관광구 유람과 황하양안의 민속감상도 즐길 수 있다.

 

 이곳을 방문하려면 먼저 중국의 주요 대도시에서 정주로 열차, 비행기를 통해 이동한 후, 다시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중화무술을 대표하는 태극권(太極拳, 타이지췐)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무술의 기원은 몇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권법의 변화무쌍함을 중국 고대의 '음양', '태극'이라는 철학적개념으로 그 이치를 해석한 태극권이 그중에서 가장 발전하여 제일 유명한 권법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태극권은 경기, 보신(방어), 단련, 오락, 표현, 질병 예방, 병 치료와 건강장수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널리 사랑받고 있다.

 

 '태극'이라는 단어는 주역(周易)의 '세상의 이치(易)에 태극(太極)이 있고 태극이 음과 양(兩儀)을 낳는다'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때 태(太)는 크다는 뜻이고 극(極)은 시작 혹은 끝 이라는 뜻이다. 태극도는 옛날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인 자연관이라 할 수 있으며, 권술(拳術)과 태극설(太極說)이 결합하여 점차 태극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태극권의 특징은 온화하고 느리면서도 부드럽다는 것이다. 총 13가지의 기본동작으로 되어있는데 그 움직임이 모두 부드럽고 느리며 원형을 띠면서 움직인다. 또한 동작이 끊어지지 않고 연관성을 갖고 연결되어 있다.

 

 태극권을 창안한 근본목적은 치병 및 건강장수에 있지만 그 수련과정에서 자위(自衛)의 능력이 자연히 생겨나는 체용(體用: 근본 바탕과 그의 적용)이 겸비된 기예이며 유연하고 완만한 동작 속에 기(氣)를 단전에 모아 온몸에 원활하게 유통시키고 오장육부를 강화하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또한 상대의 공격에 대항하지 않고 그 힘을 이용해 공격하는데, 타격에는 발경기법을 사용한다.

 

 최근에는 치병과 건신(健身)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으며, 움직이는 선(禪), 환골금단(換骨金丹), 기공권, 감각권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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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 명소

중국 선종의 본산 소림사(少林寺 : 샤오린스, Shaolin Temple)

 중국 제 1의 선종 사찰이자 소림파 무술의 발원지인 소림사는 정주와 개봉 사이에 있는 등봉시(登封市) 중악숭산(中岳嵩山)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소실산(少室山) 아래의 무성한 숲속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소림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북위 태화 19년(495년)에 효문제가 인도 승려 발타대사를 위해 지어졌으며, 지금까지의 역사만 해도 1,500년으로 후에 선종(禪宗)의 시조가 됨과 동시에 소림사는 중국 선종의 조정이 되었다. 출가했는데 친구들은 모두 성불하고 발타만 부처가 되지 못하였다.

 흔히 소림사는 달마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으로, 사실은 약 1,500년 전 북위의 효문제 때(495년) 인도에서 온 발타선사가 창건했다.

 전설에 따르면 발타선사는 여섯 명의 친구와 함께 출가했는데, 친구들 모두 성불하고 발타만 부처가 되지 못하였다.그래도 낙망하지 않고 구도의 길을 떠난 발타는 마지막으로 중국에 이르러 효문제를 만나게 되고, 효문제의 명으로 소림사를 세웠다. 그는 30년간 소림사에 머물다가 떠났다고 한다.

 

 

▲ 소림사(少林寺)

 495년 북위 시대 때 불교 사찰로 문을 열었다. '사오스 산의 울창한 숲속에 있는 사찰'이라는 뜻에서 소림사(少林寺)라 부른다. 527년 인도에서 온 달마 대사가 주지로 정착해 선종(禪宗)을 적극 전파하면서 소림사는 '중국 선종의 본산'이 되었다. 달마 대사는 부리부리한 눈과 다소 험상궂은 표정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이다. 그는 이곳에서 9년간의 면벽 수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불교의 큰 스승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소림 무술 '쿵푸(功夫)'의 창시자라는 것이다. 온종일 면벽 수행을 하는 승려들의 건강이 염려되어서 '동물의 5가지 대표적인 행동'을 본떠 만든 운동 동작이 소림 무술의 시초다. 수나라 때 이르러 불교가 전국적으로 성행하면서 소림사는 북방 최대의 선종 사원이 되었다.

 

 소림 무술이 명성을 날리게 된 건 당나라 때다. 당나라를 건설할 때 이세민은 활거 세력들과의 다툼에서 무술을 연마한 소림사 승려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이세민은 태종으로 즉위하자 소림사 승려들에 한해서 살계를 풀고 육식과 음주를 허가했다. 뿐만 아니라 승병을 전문적으로 훈련시키고 자체적으로 병영을 설치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해서 소림 무술이 부흥기를 맞았다. 이 시기에 무술을 연마하고자 모여든 승려가 2,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소림 무술은 송나라 때 체계를 완벽하게 갖추면서 '소림파'로 불렸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때 소림 무술은 전폐 위기를 겪었고, 1999년에는 승려가 4명에 불과했다.

 

 빛바랜 역사 속으로 아스라이 사라져 가던 소림사에 심폐소생술을 성공적으로 해낸 이는 해외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온 스융신(释永信)이란 방장이다. '쿵푸(功夫)의 발상지'를 키워드로 내세워 해외 비즈니스에 적극 나섰다. 세계 쿵푸 토너먼트 대회를 개최하고 할리우드와 공동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등 홍보에 만전을 기했다. 지금은 300여 명의 승려가 예불을 드리는 불교 사원이자 무술 연마를 꿈꾸는 수련생들이 대거 모여들어서 새로운 중흥을 맞이했다. 2010년에는 '천지의 중심(天地之中)'이라는 테마로 소림사, 숭양 서원, 중악묘가 공동으로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일각에서는 사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참선하는 선종 불교의 고유한 정신을 망각하고 상업화에 짙게 물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스토리텔링의 대성공이라 할수도 있다. 산문, 종루, 고루를 비롯해 사원 내부에 장경각(藏经阁), 대웅보전(大雄宝殿), 천불전(天佛殿), 면벽영석(面壁影石)이 있다. 그중 유심히 봐야 할 곳은 천불전이다. 실내의 정교한 벽화와 무술 수련의 결과로 바닥에 움푹 파인 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입장권에 포함된 소림사 무술관에서의 무술 관람, 탑림이 가장 흥미롭다.

 

 

소림사 고승들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탑림(塔林)

 수많은 탑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숲과 같다고 이름 붙여진 탑림은 소림사 역대 고승들의 무덤으로 소림사에서 서쪽으로 400m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많은 수의 탑이 있으며 규모 역시 가장 큰 고분군으로 벽돌로 만들어진 묘탑이 240여개 있으며 면적이 14000여㎡에 달한다.

 탑은 일반적으로 7층으로 가장 높은 것이 15m이며 형태는 정방형, 장방형, 육각형, 원형, 원주형, 송곳형, 병모양, 나팔형 등이 있다.

 불가의 법에 따라 단지 명승이나 고승의 원적 후에만 탑을 만들어 생전의 공적 등을 탑돌에 새길 수 있었다. 탑의 형태나 층수 높이와 크기, 벽돌건축과 조각예술의 표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에 따라 스님의 생전 불교계의 지위나 성과, 덕망의 높고 낮음을 가늠할 수 있다.

 이곳 탑들의 형상과 구조는 매우 다양하고 명문 내용도 풍부하여 불교사 및 중국 고대 벽돌건축, 필법, 조각 연구에 매우 귀한 자료가 되고있다.

 

 

하남박물원(河南博物院)

 하남박물원은 중국에서 섬서역사박물관, 상해박물관 다음으로 건립된 국가급 현대화 박물관이다. 하남박물관의 건립과 개방은 중국문화사업과 정신문명건설에서의 중대한 성과이다.

 하남박물원은 1927년 건립되여, 1961년 개봉(開封)에서 정주(鄭州)로 자리를 옮기고 몇 십년간 문물 수집·보존, 보호, 진렬, 홍보, 과학연구 등 사업을 추진하여 현저한 성과를 이룩하였으며 전국 8대 박물원으로 부상.

 박물관에 소장된 일부 문물은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덴마크, 호주, 싱가폴, 홍콩, 대만 등 10여개의 국가, 지구에서 전시되였다.

 1991년 이서환(李瑞環) 동지의 지시에 의하여 국가와 하남성에서 함께 투자하여 하남박물원 건물을 재건설하기로 결정.

 하남박물원은 부지면적이 10여만㎡, 건축면적이 7.8만㎡, 전시장 면적이 1만㎡이고 투자액은 3억元에 달하였다.

 박물원 중앙은 주요 전시장이며 동, 서 양측은 문물저장고, 네곳의 모퉁이는 전교실, 종합복무실, 판공실, 훈련실 건물로 에워져 전체적인 배치가 아주 빈틈이 없고 원림예술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현재 박물원에 저장된 문물은 12만건에 달하며, 그중 국보급 문물이 4만여건 저장되어 있다. 그중 원시 사회의 문물, 상주시기의 청동기, 역대의 도자기가 가장 특색을 가지고 있다.

 

 

二七記念塔(이칠기념탑)

 시에 한복판에 이칠로(二七路)와 해방로(解放路)가 교차하는 로터리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1923년 2월 7일 군벌의 탄압에 대한 항의에 나섰던 철도노동자들를 기념해서 만들어졌다. 같은 해 2월 1일에 경한철로의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노동자대회의를 구성했고, 그것을 계기로 2월 4일에 파업을 시작했으며 7일에는 정주, 강안, 창신점 등지의 노동자들이 일제히 총파업을 결의한 것이다.

 이 탑은 1971년 9월 29일에 건설되었고, 총 높이 63m, 총 14층의 탑으로 오각기둥 두개가 합쳐진 모양이다. 로터리 바깥의 북동쪽 한 모퉁이에 계단이 있어서 꼭대기까지 오를 수도 있고, 12층의 꼭대기에서 시내를 한눈에 바라보는 것도 정주유람에 있어서 빼놓지 말아야 할 재미다.

 

 

商代古城遺址(상대고성유지)

 중국 최고의 왕조은 스스로를 칭해 상(商)이라고 했다. 하남성 안양(安陽)은 은 왕조 중기 이후의 도성으로 유명하며, 1950년에는 정주(鄭州) 시내에는 면적 25㎢, 성벽의 길이 7km에 달하는 상대(商代)의 도성이 발견되었다. 이것은 상(商)이 황하의 북쪽에 도읍을 옮기기 이전의 도성으로, 지금부터 3,500년 전 상대(商代) 말기 유적지이다.

 이곳 성내에서 출토된 두개의 구리로 된 정방형 솥은 상대(商代) 전기(前期)의 동기(銅器/구리그릇)로는 매우 보기드문 왕실유적이다.

 자형산 공원(紫荊山公園)의 남부에 북벽, 공원의 남쪽의 성동로(城東路)에 동벽이 있다. 거의 헐렸지만 동벽(東壁)은 높이 약 4m, 폭 8m나 되는 토벽으로 3,500년 전의 공사였다. 2장의 판 사이에 흙을 집어넣고 가늘고 둥근 막대로 다져넣은 판축공법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는 다량의 집터와 토굴, 우물, 수로, 고분 등의 유적과 동기(銅器), 석기(石器), 방기(蚌器), 옥기(玉器), 도기(陶器), 원시자기 등의 유물 그리고 칼로 글자를 새긴 뼈조각과 도문(도기에 쓰인문자)부호가 소량 남아있다. 상성유적의 발견은 상나라 노예사회와 중국고대성의 형성과 발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물 자료이다.

 

 

중국의 5대 명악(名岳)인 숭산(嵩山, Mt. Songshan) 

 日出嵩山拗          일출숭산요         숭산위로 해가 뜨면

 晨鍾驚飛鳥          신종경비조         새벽 종소리가 새들을 놀라게 하고,

 林間小溪水潺潺    임문소계수잔잔    숲 속의 작은 개울물은 졸졸 흐르며,

 坡上靑靑草          파상청청초         산기슭에 푸른 풀이 밝게 빛나네

 

 이것은 숭산의 절경을 묘사한 유명한 시이다. 소림사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중국의 중요 명소이자 국립산림공원으로 알려져 있는 숭산의 총면적은 151㎢이다.

 숭산 내에 위치한 숭악사탑(嵩岳寺塔)은 '화하제일탑(華夏第一塔)'이라고도 불려지는데, 북위 효 명제 정광연간(520년)에 지어졌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벽돌 불탑으로, 탑의 높이는 40m이며, 모두 15층이다.

 송산의 정확한 위치는 중국 하남성(河南省) 등봉시(登封市) 북쪽으로 높이는 1,440m, 동서길이는 60km으로 최고봉은 위자이산(御寨山)이며 해발 1,512m이다. 태실산·소실산(少室山) 등 모두 72개의 산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 중에는 세 첨봉이 있고 중간을 준극봉(峻極峰), 동쪽을 태실봉(太室峰), 서쪽을 소실봉(少室峰)이라고 한다.

 송산은 또 중악산(中岳山)이라고도 부르는데, 예로부터 외방산(外方山)·태실산(太室山)·숭고산(嵩高山) 등의 많은 별칭이 있어 왔다. 송산은 중국 5대 명산, 즉 5악(岳)의 하나로 꼽히며, 당(唐)나라 때에는 신악(神嶽)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한 남북조(南北朝)시대부터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로 유명하여 승려와 도사(道士)의 수업도량(修業道場)이 되었던 사찰이 있다.

 그 중 숭산을 더욱 유명하게 하는 소림사(少林寺)는 선종(禪宗)의 시조 달마대사(達磨大師)가 면벽 9년의 좌선을 했던 곳으로, 황폐해질 때마다 재건하여 후세까지 선종의 중심지가 되어 왔다. 그 밖에 숭악사(嵩岳寺)는 수당(隋唐)시대에 북종선(北宗禪)의 중심이었던 절인데, 숭악석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숭악사탑 외에 문화유적으로 중악묘(中岳廟)·한(漢)나라 때의 숭양서원(嵩陽書院)·관성대(觀星臺)·법왕사(法王寺) 등이 있다.

 

嵩岳寺塔(숭악사탑)

 태실산 남쪽 기슭의 숭악사에 있는 탑으로 북위(520년)때 만들어졌다. 벽돌 불탑의 높이는 41m이고, 15층으로 되어있으며 평면은 12각형이다. 동서남북 네 면에 문을 냈고, 안에서는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으며 내부는 10층인데 1층만 12각형이고 위로는 모두 8각형이다.

 

 

鞏縣(공현)

 시성 두보의 고향으로 정주로부터 70km 떨어져 있다. 黃河(황하) 지류인 落河(낙하)가 흐르며 공현 동쪽에는 두보기념관이 있다. 낙하 북쪽 강변에 있는 石窟寺(석굴사)가 볼 만한데 이절은 北魏(북위) 517년에 창건돼 宋代(송대)까지 石窟(석굴)이 계속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존하는 석굴은 다섯곳 뿐이지만 불상은 7,743개나 된다. 낙양에 있는 용문석굴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편이지만 불교문화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중악묘(中岳廟)

 중악묘는 태실산 동남 기슭 황개봉 아래, 등봉현 시내에서 동쪽 4km 지점이다. 중악묘의 원래 이름은 '태실사(太室祠)'이고 秦(진)나라 때 창건되었다.

 秦(진)나라 때 중악 숭산(嵩山)의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묘라고 하는데, 한나라 무제가 숭악에 놀러왔을 때 담당 관리에게 확충을 명령한 이래 확장을 거듭해 지금은 하남성 최대의 廟(묘)가 됐다. 漢(한)무제도 기원전 110년 이곳을 참배했다고 한다. 송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초기까지 번영과 쇠퇴를 거듭하다가 건륭제 때 대규모 중수가 이루어졌다.

 지금 중악묘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이 때 중수된 모습과 규모이다. 전체 둘레는 6.5km에 면적은 10만㎡가 넘는다. 현존하는 사묘 건축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보존 또한 완전한 편이다.

 동악인 태산과 함께 숭산은 역대 황제들이 천명을 받는 곳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입구에 있는 中華門(중화문)을 들어서면 북쪽으로 凌極殿(능극전), 寢殿(침전), 御書樓(어서루)가 있는 1km 연도에는 각종 불각들이 줄지어 있다. 마치 고궁의 축소판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중원의 선경 중국 운대산(云台山, Yuntaishan)

 운대산(云台山)은 하남(河南)성 정주(鄭州)에서 서북쪽으로 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명산이다. 중원의 선경 운대산은 기이한 산, 절묘한 계곡, 아늑한 수풀, 유구한 역사로 유명한 산이다. 하남 초작(焦作)시에 위치한 운대산은 폭포, 암석, 호수, 사찰, 동굴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종합명소이다. 운대산은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곳에는 무성한 원시림이 있고 아늑한 골짜기에 깊은 담소가 있고 천태만상의 폭포와 그림같은 기이한 암석들이 있다. 또한 한조(汉朝)와 당조(唐朝)의 문화유적도 많다. 운대산은 "세 걸음마다 샘이 있고, 다섯 걸음마다 폭포가 있고, 열 걸음마다 못이 있다.'는 묘사로도 유명하다.

 담폭협(潭瀑峡), 천폭협(泉瀑峡), 홍석협(红石峡), 만선사(万善寺), 수유봉(茱萸峰), 청룡협(青龙峡) 등을 주요 관광코스로 추천한다.

 운대산은 총면적이 55㎢로서 아름다운 봉우리와 천연 중유동이 수십 개나 있고 폭포나 온천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 홍석협(红石峡)은 기이한 풍경이 깊게 숨겨져 있고 양안 절벽의 산과 돌이 수려하여 마치 신이 조각하다만 거대한 정원과도 같다.

 홍석협 전 노선의 길이는 1,500m로서 유람하는데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여기는 운대산 협곡의 대표로서 수려함, 유유함, 웅장함과 험악함을 한 몸에 안고 샘, 폭포, 시냇물, 못이 한 계곡에 집중되어 분경협곡으로 이름을 날렸다.

 

 천폭협(泉瀑峡)은 샘과 폭포로 이루어진 협곡이란 뜻으로 총 길이는 3.000m에 달하고 약 2:30분 정도면 유람을 끝낼 수 있다. 낙차 314m를 자랑하는 천폭협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폭포로 산세가 높고 거대하여 물이 세차게 흐른다.

 

 수유봉(茱萸峰)은 역대 학자와 도사가 도를 닦는 성지이다. 여기에는 삼림이 무성하게 있고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가 있는가 하면 천년 묵은 기이한 나무와 화초가 있다. 수유봉(茱萸峰)이 가장 높은 봉우리로 해발 1308m, 중국 최고의 폭포로 꼽히는 운대천폭포(云台天瀑布)는 낙차가 무려 314m나 된다. 수유봉 해발 1,308m 전부가 계단으로 되어 예로부터 "천 계단으로 된 산봉우리"라고 한다. 수유봉 정상에서 아래를 보면 세상만사가 작아 보인다.

 

 담폭협(潭瀑峡)은 총 길이 1270m의 협곡으로, 동쪽의 깍아지른듯한 절별과 서쪽의 기이한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골짜기 안으로는 소룡계라 불리우는 물이 흐르며, 그 옆으로 층층이 높이가 다르고 색채가 아름다운 돌 계단이 있다. 100m 높이의 대폭포 또한 장관이다. 또한 불로천(不老泉)이라는 샘이 있는데 그 물을 마시면 늙지 않는 다는 전설이 있다.

 

 만선사(万善寺)에는 60만 위엔에 달하는 동으로 된 불상이 있고, 청룡협(青龙峡)에서는 자연과 생명이 더할 나위없는 조합을 이루고 있으며 미후들이 재롱 피우는 미후곡(猕猴谷)도 동물원 못지 않다.

 

 운대산과 관련된 시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당나라 정치인이자 남종화의 창시자로 꼽히는 왕유(王维)이다. 전원파 시인이기도 한 그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모를 묘사한 시구가 많다.

 

 한국인이라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읊을 수 있듯이 중국인이라면 외울 수 있는 시로

 "九月九日憶山東兄弟(9월9일억산동형제 - 9월 9일 산동의 형제들을 생각함)"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중국 명절 중양절과 관련돼 있어 해마다 회자되곤 한다.  

 

 

정주 황하 유람구(黃河遊覽區, 황허요우란취)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30km 떨어진 '거대 황허 테마파크'다.

 케이블카를 타고 오룡봉(五龙峰) 전망대에 오르면 평원으로 진입하는 황허와 수리 시설 및 광활한 녹색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대 황허를 중심으로 중원 문화가 꽃피었던 만큼, 황허는 중국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족에게 '어머니의 강'으로 통한다. 갈수기에 가면 물이 부족해서 황허의 위용을 감상하기 어렵지만, 13년 동안 집에 가는 것을 잊은 채 황허 치수에 힘 쏟은 주인공 우왕(禹王) 상이 여행지로서 부족함을 채워 준다.

 

 

 최근에는 염황 광장(炎黄广场)에 20년이나 공들여 깎은 높이 106m의 조각상 '염황이제상(炎黄二帝像)'이 오룡봉 전망대보다 더 인기다. 2007년 4월 비로소 완성된 염황이제상이 너무나 거대해서 마치 황허를 굽어 살피는 듯하다. 참고로 미국의 자유여신상보다 8m 더 높다. 스스로를 황제의 자손이라 여기는 한족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한족이 전신이라 믿는 화하족의 시조가 바로 염제와 황제이기 때문이다.

 

 염황이제상(炎黃二帝像) 아래에는 중국 정부가 56개 민족을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으로 단일화하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대리석판에 56개 민족의 유래와 상징 기호를 새겼는데 '모든 민족이 염 · 황제의 후손'이라는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하고 있다. 조각상의 얼굴 밑까지 올라갈 수 있게 계단이 설치돼 있고, 20분 정도 걸으면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 서면 황허가 제법 장엄하게 펼쳐진다. 공원이 워낙 커서 전 구간을 걸어 돌아보기는 어렵다. 케이블카와 전동차를 적절히 이용해야 구석구석 볼 수 있는데, 애석하게도 투자한 비용만큼 만족감을 안겨 주는 관광지는 아니다. 

 

 황하는 시 북부를 흐르고 있으며, 약 3000점의 비석이 있는 황하비림과 석각미술관, 우왕상 등이 있다. 또 근처에는 동굴모양의 음식점가가 있어서 다양한 지역의 향토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o 주소: 郑州市 西北 30公里

o 요금: ¥60, 대우산 정상행 케이블카 ¥30, 전기 자동차 ¥20

☎: (0371)6289-8866

o 이용시간: 08:00~18:00

o 가는 방법: 정저우 역 북측 정류장(北公交港湾)에서 游16번 버스 타고 종점 하차, 1시간 20분 소요.

 

고대문명의 발상지, 황하(黃河, 황허)

 전국 총면적의 7.8%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두번째로 큰 강으로(전체 길이: 5,464㎞), 청해성 바얀하르산(巴顔喀喇山) 북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사천성· 감숙성· 영하회족자치구·내몽고·산서성·섬서성· 하남성 ·산동성 등의 9개 성과 자치구를 거쳐 마지막에 발해로 유입된다. 중국 지형의 현저한 특징인 서고동저의 형태로 서에서 동으로 4000m 이상의 청장고원· 내몽고고원· 황토고원· 황준해평원이 가로놓여 있다. 동부지역의 평원은 수로가 지면보다 높에 매년 홍수의 위험속에 있다.

 

 

 그러나 이곳의 토지가 비옥해 풍부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어서 중국 고대문명이 이곳에서 발상되었으며 중화민족의 요람이라고 불린다.

 

 황하유역은 연평균 경류량이 580억㎥로 물이 적고 토사가 많으며, 물과 토사의 근원지가 다르고 지형의 차이가 극심하다. 황하는 일반적으로 세 개의 구간으로 나뉘는데, 서쪽의 발원지로부터 하구진(河口鎭)까지를 상류, 하구진에서 도화욕(桃花欲)까지를 중류, 도화욕 이하를 하류라 한다. 상류는 총길이가 1,368km로 지금의 내몽고 퉈커퉈현(托克托縣)까지이며 또한 발원지구간· 협곡구간· 충적평원의 3개 부분으로 나뉜다. 황하 중류는 하구진(河口鎭)에서 하남성 정주(鄭州)의 도화욕까지로, 진섬(晋陝)협곡 사이를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이곳은 황하 홍수와 토사의 주요 발생지로 수심이 깊고 하폭이 좁아 파도가 센 것이 특징이다. 반면 하류는 강폭이 넓고 평탄하며 수로가 지면보다 높은 지상하(地上河)를 이룬다.

 

 황하는 강수량의 계절적 분포가 고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경류의 변화도 크므로 유량이 극히 불안정하다. 여름과 가을의 경류량이 연경류량의 70∼80%이고, 겨울은 10%, 봄은 15%를 차지한다. 이때문에 봄과 여름에는 가뭄에 늦여름과 가을에는 홍수의 재해를 입는다. 역사적으로 여러차례 홍수의 피해를 입어왔고, 3년에 두번꼴로 제방이 터지던 상황이었다. 지금은 황화유역의 꾸준한 수리공사를 통해 많이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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