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魯迅 : Lu Xùn)

 노신(魯迅 : Lu Xùn - 1881~1936)은 1881년 9월 25일(음력 8월 3일), 절강(浙江省) 소흥현(紹興縣) 성내(城內)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주수인(周樹人), 자(字)는 예재(豫才)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이 노신이라는 그의 이름은 그의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할 때 처음으로 사용했던 필명이라고 한다.

 노신 집안의 조상들은 원래 호남성(湖南省) 도주인(道州人)인데 노신의 14대조 때에 농민으로 소흥에 이주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점차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나 노신이 태어난 당시에는 약간의 논밭과 점포를 소유하고, 조부가 한림편수(翰林編修)로서 북경(北京)에 나아가 관리 생활을 하는 전형적인 봉건 소지주의 가정이었다.

 노신은 6세 때부터 가숙(家塾)에 들어가 초보적인 독서를 하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11세 때는 삼매서옥(三昧書屋)에서 수경오(壽鏡吾)라는 선생에게 사사하였으며, 집에서는 증조부에게서 글을 배웠다. 유년시절의 노신의 성품은 근면한 편에 속했으며, 가숙이나 서당에서의 규정된 공부 외에도 중국의 고서와 야사 등을 즐겨 읽었고, 어린 시절부터 조부나 유모를 통해 듣던 민간전설과 설화 등은 노신의 관심을 끌었다.

 이외에도 소년 노신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안고촌(安稿村) 외가에서의 생활이었는데, 『사희(1922)』에는 그 무렵 생활의 일단이 회고되어 있다. 여름철에 외가에 놀러 갔다가 마을 소년들과 천진난만하게 놀던 일이 선명하게 서술되어 있는데, 이 작품 속에서 노신은 "그곳은 내게 있어서는 천국이었다. 모두들 오냐, 오냐 해 주었고 질질사간(秩秩斯干), 유유남산(幽幽南山)(《시경》의 한 구절)을 외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술회하고 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노신은 마을 어디를 가나 존경받고 사랑받는 명문 댁 도련님이었다.

 노신의 대표작으로는 <광인일기(狂人日記)>, <아큐정전(阿Q正傳)>, <고향>, <야초(野草)> 등이 있다.

 

중국 신문학 운동과 노신 문학

 청(淸) 말기, 서구 열강의 중국침략에 따라 형성된 중국인들의 민족의식은, 중화주의적 전통 세계관에 대한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아편전쟁(阿片戰爭) 이후 부분적인 개혁으로 치유될 수 없을 만큼 중국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신해혁명으로 무너진 황국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열망했던 공화정이 아니라 와해된 체제의 틈을 타 각지에서 할거한 군벌(軍閥)들의 혼전과 일본과 구미열강의 각축전이었다. 중국 현대문학은 이러한 시점에서 자기모순에 대한 발견, 자기문화에 대한 부정을 통한 구국의 기치를 내걸고 태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절망과 반항의 길목에 루쉰도 서 있었다. 그는 이민족의 지배를 물리치거나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중국의 뿌리깊은 병근이 치유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의학교를 중퇴한 후 동경으로 나온 그는 문화운동 잡지의 발간을 추진하지만 무산되고 두권의 <역외소설집(域外小說集)> 발간도 실패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귀국한 그는 항주와 소흥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다음해 신해혁명이 발발하고 민심이 뒤숭숭해지자 학생들을 모아 무장연설대를 조직하기도 한다. 얼마 후 혁명당 군대가 입성했지만 혁명은 봉건의 암흑 속으로 가라앉고 보수화된 혁명당과 대립하던 루쉰은 산회 초급사범학교 교장자리를 그만두고 임시정부가 있던 남경으로 떠난다.

 혁명으로 제도는 바뀌었으나 혁명정부와 군벌이 타협하고 개혁의 움직임은 더욱 억압받았다. "유학 시절에 형성된 적막이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어서, 큰 독사처럼 그의 혼을 감고 떨어지지 않았던"(<외침喊>의 서문) 시절, 노신이 겪었던 절망은 당시 지식인들의 공통된 절망이기도 했다. 정치적 활동이 봉쇄당했으므로 그들의 에너지는 내면을 향했고 1910년대에 이르러 폭발 점에 도달한 반항의식은 5.4운동을 통해 표출된다. 우리민족이 '3.1'독립 만세운동을 벌였던 바로 그 해, 뻬이징에서 일어난 5.4운동은 일본의 산뚱반도 할양과 이를 허용한 군벌에 대한 항의시위를 넘어 중국 고전문화에 대한 총체적 반성으로 이어진다. 이때 서구 근대사상으로 통하는 통로이자 반항운동의 기지로 자리잡고 있었던 잡지 <신청년>은 서구의 민주주의와 과학을 사상적인 기치로 하고 반봉건, 개성해방 등의 구호를 실천논리로 세웠다. 이는 유가(儒家)사상을 근간으로 한 중국의 정치철학, 생활철학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었다. 후스는 <문학개략에 대한 소견>을 통해 종래 지식인의 전통 문체였던 문언(文言)을 폐기하고 구두어인 백화(白話)를 쓸 것을 주장했고, 천뚜슈의 <문학혁명론>은 신문학이 고전문학의 상투성을 버리고 근대적 정신을 담을 것을 부르짖는다.

 이 와중에 태어난 루쉰의 첫 백화 단편소설 <광인일기>는 문학의 승리적 기념비였다. 광인일기는 너무나 새로워서 그 의미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포착되기 어려울 정도로 색다른 작품이었다. 정신착란자의 눈을 빌어 루쉰은 중국사회를 아이를 잡아먹는 식인의 사회로 규정하고, "아이를 구하자"는 주인공의 절규를 통해 암울한 봉건적 사고가 지배하는 절박한 중국의 현실을 고발한다.

 5.4운동에 이어 국공합작 북벌군의 북진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5.30사건'이라는 노동운동을 배경으로 신문학운동이 확산되면서 문학단체들이 속속 등장한다. 노신은 어느 단체에도 깊이 개입하지는 않았으나 이미 신문학의 중심적 존재가 되어 있었고 이 때 나온 <아큐정전(阿Q正傳)>은 그의 위치를 더욱 확고하게 했다. 복합적으로 조합된 농민 형상인 아큐는 자신의 현실적 실패를 늘 '정신승리법'이라는 자기 기만술에 의해 덮어버린다. 아큐는 결국 혁명의 와중에서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혁명당을 가장하다 도둑의 누명을 쓰고 총살당한다. 노신은 아큐의 이 어처구니없는 비극을 통해, 민초들의 정신적 마비를 해부하고, 그들에게 정신적 낙후성을 고착시킨 전통적 사회와 의식구조에 대해 비판하면서 동시에 왜곡된 혁명 과정을 비판한다.

 그 이후 나온 <외침喊>(1923년)과 <방황彷徨>(1926년)은 중국 현대소설의 초석을 세우는데 기여한다. 소설에서 그는 값싼 낙관이나 희망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의 희망은 절망에 대한 반항이며, 부정적인 모습의 민중은 비판의 대상이다. 그들은 인혈(人血)만두로 폐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고 처형당한 사형수의 피에 만두를 찍어 먹을(약藥) 정도로 미개하고 천박했다. 루쉰은 그러한 우매는 봉건적 질서의 해악이 민중의 영혼 깊이 스며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소설속의 민중은 봉건사회를 타파하려는 혁명에 대해 무관심하고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또 이들을 계몽해야 할 지식인들도 모두 긍정적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몰락하거나, 희생당하거나, 보수로 돌아서거나,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거나, 의연히 계몽자로서 실천의 길을 걷는 다양한 지식인상이 소설 속에 등장한다. 이들을 통해 루쉰은 중국의 앞날이 희망찬 미래가 아니라 넘어야 할 가시밭길이 첩첩이 가로막힌 험로임을 암시한다.

 1926년 이후 중국 사회는 대혼란기로 접어든다. 국공합작 북벌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했으나 재분열되어 1937년 2차 합작까지 수차례의 내전을 겪는다. 노신은 아모이(厦門)과 광저우(廣州) 등지를 떠돌며 강단에 섰으나 혁명세력 내부의 퇴폐와 국민당의 반공 쿠테타 등을 목격하면서 비판적 글쓰기를 강화한다. 1927년 다시 상하이로 가기까지 2년 간 깊이 고뇌했던 그의 생활과 사상을 보여주는 것은 산문시집 <들풀(野草)>과 산문집<아침 꽃을 저녁에 주으며(朝花夕拾)>, 서신집 <두 곳의 편지(兩地書)>등이다. 이중 <들풀>은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데 소설보다 작가의 정신활동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거론된다.

 상해시대 노신의 투쟁방식은 소설이 아닌, 잡감(雜感)이라고 이름한 수필 형식의 단문을 통해 이루어진다. 잡감은 시보다는 구체적이고 소설보다는 뛰어난 기동성을 갖고 있어서 단검처럼 번쩍이며 적과 동지, 사랑과 증오, 좌절과 희망, 과거와 미래를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반봉건 반식민지라는 어둡고 견고한 ‘무쇠 방’에 갇혀 있는 대륙의 혼을 일깨운다. 그는 보수적 우파 지식인들의 현실에 대한 안일한 태도 뿐 아니라 자기를 소시민 작가라고 비난하는 젊은 작가들에 대해서도 서슴지 않고 비판한다.

 일제의 침략이 더욱 거세고, 국공합작이 깨진 후 작가들에 대한 국민당의 탄압이 강화되자, 문학의 이념성을 비판했던 루쉰도 좌익 운동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고, 중국 좌익작가연맹의 정신적 리더가 된다. 그러나 내전의 중지와 일본의 침략에 대한 일치저항을 주장하는 여론이 높아지던 1936년, 일제에 대응하기 위해 어떻게 문단의 통일을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던 중 그는 건강이 악화되어 5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둔다.

 

 

※ 노신의 대표작 <아Q정전(阿Q正傳)>

 <아Q정전(阿Q正傳)>은1921년 12월에서 다음해 2월에 걸쳐 주간 「신보부간(晨報副刊)」에 파인(巴人)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된 중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각국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노신의 이름을 불후한 것으로 만든 대표작이다.

 <아Q정전(阿Q正傳)>은 신해혁명 시기의 농촌생활을 제재로 하여 이 시기의 중국 농촌 생활상을 심각하게 파헤쳐 아Q라는 품팔이꾼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중국민족의 나쁜 근성을 지적하여 국민성을 각성시키려 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노신은 중국과 중국민족을 절망적으로 그리고 있다.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을 예견하고, 희망이 있는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궁지에 몰려 소외되고 탈락되고 짓눌린 자의 모습을 집요하게 그려낸 것이다.

 아Q는 반식민지, 반봉건적인 사회, 더구나 신해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는 타성의 사회에서 사명감도 목적의식도 없으면서 부질없이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드디어는 무기력하고 비겁한 노예근성으로 돌아가 그 최후를 공허하게 끝마치는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다. 아Q의 성격은 풍부하고 다양하며 다혈질이다. 그는 자손심이 매우 강할 뿐만 아니라 보수적이며 우매무지하다. 그러나 아Q의 성격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관념의 흐름은 '정신승리법'이다. 노신이 아Q를 통하여 예술상의 '정신승리법'을 끌어 낸 것은 심각한 현실적 의의와 깊은 역사적 의의를 내포하고 있다. 즉, 공허한 영웅주의와 무력한 패배주의에 침식되어 자국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며 자기만족에 젖어 있고, 타개치 못하는 민족적 위기에 살면서도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물질생활의 군데군데마다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정신적인 만족에 현실을 외면해 버리는 청나라 정부와 한(漢)민족에 대한 조소와 비난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의 문호를 개방한 청나라 정부는 그들의 실패를 변명하고 감추면서 조정의 위엄을 계속 유지, 봉건 통치를 완고히 함으로써 허영과 거만한 욕구를 채운다. 이러한 상류사회의 기풍이 반봉건성, 반식민지의 중국사회에 만연되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즉, 실제는 모든 것에 패하였으면서도 정신적인 승리에 만족하는 기풍이 하나의 국민성으로 인정되었고 이러한 국민성에 대한 것을 노신은 철저하게 증오하게 된 나머지 아Q라는 인물을 내세워 심히 채찍질을 한 것이다.

 아Q는 비겁하다. 상대를 비교해 보아 더듬거리는 놈에게는 욕을 하고 기운이 약한 놈은 때린다. 그러나 혼나는 때가 더 많다. 왕털보한테 혼이 나고 저항력이 없는 젊은 여승에게 취하는 행동, 힘이 없는 소D에게 우쭐되며 깔보는 것은 그의 비겁한 행동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노신은 중국 민족성의 병폐요, 비겁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아Q는 정신승리법에 의해 희롱을 당하고 매를 맞아도 반항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 놀림을 받고 있는지도 생각지 않고 도리어 마음속으로는 우월감에 차 있다. 아Q는 자존심이 강하다. 그가 비록 품팔이 일꾼에 지나지 않으나 미장(未莊: 품위가 없는)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조대감을 비롯한 지주들에게도 정신적으로 존경의 빛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아Q식의 정신승리법을 노신은 일찍 깨닫고 문예를 무기로 삼아 깨닫지 못한 대중을 치료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아Q주의'는 피압박 사회에서 하나의 교활한 대응 방법이다. 민족의 치욕을 건망하고 병을 앓으면서도 의사를 기피하고, 남의 뒤를 따라 공연히 뇌동하고 약자에겐 잔인, 강자에겐 아첨하며 스스로의 책임을 남에게 미루고 지난 날의 영광을 과장해 환상에 젖어 있는 자기 민족에 대한 맹혹한 질책인 것이다. 특히, 마지막 아Q의 처형 장면은 노신의 자기 민족에 대한 노여움, 분노, 쓸쓸한 동정 등의 우울한 물결의 파장을 전해준다.

 이 <아Q정전>은 발표 당시 보수파로부터는 국민의 나쁜 면만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그리고 급진적인 세력으로부터는 적극적인 생산 농민을 묘사하지 않고, 룸펜 농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데서 각각 비난과 질시를 받았다. 하지만 <아Q정전>은 이러한 국수주의와 이데올로기의 논란을 넘어서 문학적 영역으로 승화된, 중국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의 걸작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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