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산(峨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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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성 아미현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형당산계의 공래산맥에 속해 있으며, 대아미· 2아미· 3아미의 세부분으로 나뉜다. 

 대아미의 주봉은 만불정으로 해발 3,099m. 사방으로 수백리에 펼쳐져 있고, 구름폭포 속에 웅장한 기세와 수려한 산세를 뽐내고 있다. <아미군지>중에는 이런 말이 기재되어 있다.

 

 "구름의 아름다움이 비취와 같고, 검푸른 귀밑머리와 같으니 진정 미인의 이마와도 같아 가늘고 길며, 아름답고 아득하여 '아미산(峨眉山)'이라 칭했다."

 

 아미산을 불교에서는 '광명산', 도교에서는 '허령동천'이라고도 한다.

 

 당대 시인 이백은 시로써 아미를 칭송한 바 있으니, "촉국에 선산이 많으나, 아미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  또 "아미는 천하에 수려하다."와 "아미를 유람하지 않고서는 사천성을 유람했다 말할 수 없다."가 그것이다.

☞ 다른 지도

 

 기록에 따르면 아미산에는 일찍이 동한후기(2세기)부터 도교의 사원이 있었으며, 당·송이래 불교가 날로 흥성해 연이어 불사가 건조되었고, 명·청대에는 온 산이 절과 도교사원으로 뒤덮혀, 크고 작은 사원이 약 백여 개에 달했다.

 

 전설에 따르면 '보현보살'이 현령하신 법사라고도 한다. 산서성 오대산(五臺山), 안휘성 구화산(九華山), 절강성 보타산(普陀山)과 함께 <중국 불교 4대명산>으로 불린다.

 청대 이래로 불교가 점차 쇄락하고, 더구나 산세가 높고 험하며, 비가 많고 습윤하여 대다수의 불사가 몰락하여, 해방전야에는 '보국사' '만년사' '화엄사' '세상사(지)' '복호사' '뇌음사' '대아사' '광복사' '우선사' '연화사' '중봉사' '관음사' '신개사' '선봉사' '백운사' '오룡사' '대평사' '백룡사' '용문동' '금정사' '천불정' '만불정' 등 불교 흥성 시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불사만이 남아 있다. 해방 후 두차례에 걸쳐 비교적 큰 규모의 보수공사를 거쳐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으며, 사천성의 중점 관광 풍경구이다.

 현존하는 관람 가능한 사찰로는 '보국사' '만년사' '홍춘평' '산봉사' '복호사' '세상사' '무선사' '금정' '뇌음사' '백룡사' 등 십여 곳이 있다.

 

 

 관광 명소

보국사(報國寺-550m)

 아미현 남아미 산기슭에 위치해 있고, 현성에서 약 7km 떨어져 있는 아미산 유람의 필수 코스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복호사, 청음각을 지나 아미의 최고봉인 금정에 이르는 길로 약 60km이고, 우측으로 만년사, 세상사를 경유해도 금정에 닿을 수 있는데, 약 45km에 이른다.

 <아미산지> <아미가란기> 등에 기재되 바에 따르면, 보국사는 명나라 만왕 시기(1573~1620년)에 세워졌으며, 원래는 복호사 좌측에 있었으나, 청나라 순왕 시기에 현재 위치로 옮겨 지어졌다가 강희(기원1730년)에 재건해 '보국사'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축 규모는 웅장하고, 기세가 드높고, 배치가 좋으며, 성축선은 대칭으로 분포되어 있고, 중축선상의 건물로는 산문·미륵전·대웅전·칠불전·장경루 등이 산세를 타고 지어져 점차 높아지고, 사원 주위에 청송 취백이 빽빽히 우거져 하늘을 가릴 정도이다. 

 산문은 정자식으로 되어 있고, 문 위에는 청나라 강희제가 하사한 '보국사'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경내 신당의 문과 창에는 조각이 정교하고 도안이 생동적이고 소박하며 웅장하고 아름답다. 그 중 특히 '칠불전'의 것이 가장 장관이다. 전내외와 석란판의 목석 조각 또한 훌륭하여 주목할 만하다.  '장경루'의 목재 내장도 훌륭하고, 인물과 꽃·새 등이 부조와 투조가 모두 상품에 속한다.

 보국사의 역사 문물 중 특히 이목을 끌고 찬사를 받는 것은 바로 '화엄탑'이다. 이 탑은 명대에 주조되었으며, 높이 7m 삼단 십사층의 독특하고 빼어난 구조이다. 탑에는 4,700여 존의 작은 불상과 화엄경 경문이 주조되어 있다. 이 탑은 중국 고대 정자 건축의 특징을 구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불교 건축의 특색도 갖추고 있다. 이 탑은 불교사, 조각, 건축사 등 다방면을 연구하는데 있어 진귀한 문물로서 이미 국가급 중점 보호문물로 지정되었다. 

 이밖에 또 유명한 문화재로는 명 영락제13년 (1415년)에 제작된 채색 도기 불상이 있는데, 불상의 높이는 2.4m로 자태가 생동적이고 형상이 진실에 가깝다. 보국사 건축물들은 수풀이 빽빽히 우거진 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더욱 장엄하고 소박한 멋을 준다. 경내에는 또 정자와 누각이 신축되었고, 꽃과 나무가 누각을 더욱 돋보이게 해 관광객들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복호사(伏虎寺-630m)

 보국사 서쪽 약 1km에 있으며, 당대에 짓기 시작했고 송대에는 '신롱당'이라 불리었으며 후에 절 주위에 호랑이로 인한 우환이 있어, 승려들이 '존생보장'을 지어 이로써 진압했다하여 ' 복호사(伏虎寺)'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또 일설에는 절 뒷산이 마치 호랑이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절은 아미산의 대사 중의 하나로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흥망성쇄를 겪었고 청 순체8년(1651년)에 중건되었는데, 전당은 넓고 기세가 험준하며 사방의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빽빽한 산림이 하늘을 가릴 듯하다. 절은 비록 수풀이 우거진 가운데 위치해 있지만, 지붕 위에는 절대로 낙엽이 떨어지지 않는다.

 청나라 강희 황제가 내리신 "화구원"이란 현판이 있으나, 지금은 희미한 묵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해방 초기에 증건한 동사방은 관광객에게 숙식을 제공하는데 쓰이고 있다.

 최근 또 한차례 전체 불전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 공사가 있었고, 가운데 절 앞으로 지나는 길이 닦여졌다.

 

 

 

뇌음사(雷音寺)

 복호사에서 약 2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명대에는 '관음당'이라 불렀고, 청대초에는 '해탈암'이라 불리워졌다.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 입산해 중생을 해탈시키고, 이곳에서 출산해 장애를 극복했다고 한다. 광서10년(1884년) 개축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현존하는 것은 한 동으로 높은 언덕배기에 위치해 있고 절벽과 마주해 있고, 주위에 수목이 울창하며, 고요한 정취가 흐른다.

 

 

백룡사(白龍寺)

 "백룡동(白龍洞)"이라고도 하며 아미산 하단에 자리잡고 있다.

 명대에 지어졌으며, 현재 남아있는 건축물은 청대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은 민간 전설인 "백사전(白蛇傳)" 중의 백낭자가 도를 닦던 곳이라고 하는데, 백사는 일반적으로 "백룡"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름이 백룡사가 된 것이다. 이곳은 오래전에 무너져 막혔으나, 절은 아직 존재하는데, 절 외부에는 원래 양쪽으로 수풀이 무성한 좁은 길이 있고, 고목이 하늘을 찌를만큼 빽빽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명 융경 시기에 별전 박사가 심은 것으로 심을 때 "법화경"을 읽는데 한 글자 읽을 때마다 한 그루씩 심어 총 69,777그루로 당시에는 이를 가리켜 "공덕림"이라 했는데, 제원을 거치면서 퇴폐해져 현재는 몇그루 남아 있지 않다.

 

 

만년사(萬年寺-1020m)

 아미산 주봉의 동쪽 산자락, 해발1,000여m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기온이 매우 온난하고 기세가 탁 트이고, 수목이 울창하며,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아미십경'중의 하나인 '백수추풍'이 바로 이곳이며, 아미산상의 큰 절 중의 하나이다. 전설에 따르면 한대의 약초캐는 노인이었던 포공이 부처를 모셨던 곳이라고 하며, 진대에 이르러 불사를 짓기 시작해 '보현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가 당대에 '백수사'라 개명했고, 송대에는 '백수보현사'라 불리어졌다가, 명만력 기간(1573~1620년)에 '성수 만력사'로 명명되었다.

 

 절은 원래 7개의 건축물로 규모가 웅장했으나, 후에 몇차례의 흥망 성쇠를 거치다가 민국35년 (1635년) 일대 화제로 목조 건축물이 모두 불타 없어져 겨우 '무념전'만이 남아있다. 현존하는 것은 두동으로 1953년 중건한 것이다. 무념전은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로 명만력 기간에 건조되었다. 높이 16m 정방형 건물로 매변이 16.5m, 꼭대기 부분은 첨탑형이어서 흡사 몽고족의 '파오'와도 같다. 전(殿)의 꼭대기 부분에는 다섯 개의 백탑(정중앙과 네 모퉁이에 하나씩)과 네 개의 길한 동물상이 세워져 있다.

 

 전내의 중앙에는 북송 태평천국 5년(980년)에 주조된 보현보살이 6개의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탄 동불상 한 점이 모셔져 있는데, 총높이 7.3m(불신과 흰 코끼리가 각각 반씩을 차지한다.) 무게는 약 62t이며, 현재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전내 사방벽의 아랫 부분에는 24개의 작은 불단이 있는데, 각각 철불 한 존씩을 받치고 있다. 윗부분에는 가로로 여섯단으로 작은 동불상 307개가 배열되어 있는데, 매우 정교하고 조각이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무념전을 나와 돌다리를 건너면 1953년 새로 지은 두 건축물이 있는데, 곁채가 서로 이어져 있고 2층이 겹쳐 마식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외실이 특히 크고 가운데 두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윗처마에는 <왜아보전>이라고 쓴 현판이 가로로 걸려 있으며, 건축은 붉은 담장과 검은 기둥, 회색 기와로 되어 있다.

 

 건축앞의 연못과 주위의 산과 시내에는 아미산의 특산인 금와(金蛙)가 있다.

 여름밤이면 이 금와가 사방에서 울어대 그 소리가 마치 피아노 소리와도 같아 귀를 즐겁게 해준다. 절 양측은 만길이 넘는 깊은 골짜기이고 경내에는 고목이 하늘까지 솟아 있고, 푸른 참대가 무성하여 고찰의 고요하고 그윽한 풍취를 느끼게 해 준다.

 

 

홍춘평(洪椿坪-1120m)

아미산 천지봉 아래 해발 약 1,100m에 위치해 있다. 옛 이름은 '천불암', 명초에 선승이 건축했다가(송대라는 일설도 있다.) 청 건륭55년(1790년)에 아운선사가 중건한 후에 지명으로 절 이름을 대신했다. 사원 부근에 원래 세 그루의 늙은 홍춘 나무가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 그루는 절 앞쪽에 있었으나 이미 불타 소실되어 겨우 뼈대만이 남아 있을 뿐이고, 다른 한 그루는 절벽가에 위치해 있었으나, 산사태가 났을 때에는 강희제가 내리신 편액 '망천근려' 및 대련이 현재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으며, 건물내에는 또 건륭제가 내리신 대련 한폭이 걸려 있다.

 

 

 현존하는 사원 건축은 모두 건륭47년(1782년)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전체 불사는 세간의 대전으로 이루어졌는데, 규모가 웅장하고 낭하는 간결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내에는 불상과 법기가 갖추어져 있고 전방 건축앞에는 '칠방천불연등' 한 촉이 걸려 있는데, 등 높이는 2m, 직경이 1m 정도이며, 등에는 일곱 마리의 용과 수백여존의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조각이 정교하고 조형이 생동적이며 마치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데 청 말기의 것이다. 절 주위로는 수려한 봉우리가 사방으로 둘러쳐져 있고, 양측에는 깊은 골짜기와 시내가 흐르며 고목이 무성하고 녹음이 우거져 하늘을 뒤덮으며, 고요하고 청아한 분위기가 흘러 유명한 피서지가 되었다.

 

 산속에는 안개가 무리지어 다니고 더운 여름에도 청아한 아침의 농무가 비가 되어 흩날려 '홍춘(洪椿) 효우(曉羽)'라고 불리었는데, '아미십경(峨嵋八景)'중의 하나이다. 고시에 '산길을 걷다 보니 본래 비는 아닌 것이 하늘의 보석인가 나그네 옷깃을 적시는구나'했는데, 여기서 가리키는 비경이 바로 이곳이다.

 

아미십경(峨嵋八景)- 성적(聖積)의 만경(晩境), 나봉(羅峯)의 청운(晴雲), 쌍교(雙橋)의 청음(淸音), 대평(大坪)의 제운(齊雲), 홍춘(洪椿)의 효우(曉羽), 구로(九老)의 선부(仙府), 상지(象池)의 야월(夜月), 백수(百水)의 추풍(秋風)이다.

 

 

청음각(淸音閣 = 칭인꺼)

 와운사(臥雲寺)라고도 불리는 청음각은 아미산 우심령(牛心嶺) 아래 흑(黑), 백(白)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흑룡강(黑龍江), 백수하(白水河)라고 두개의 이름으로 부른다. 해발 71m로 보국사에서 15km정도 떨어져 있다.

 당 희종(僖宗) 년간에 비통선사(慧通禪師)가 지었으며, 석가모니, 문수보살, 보현대사의 상이 모셔져 있다. 청음각 아래에는 쌍비정(雙飛亭)과 그 좌우로 다리가 하나씩 있는데, 마치 새가 나는듯한 모양을 하고 있어 쌍비교(雙飛橋)라 부른다. 쌍비정 아래 흑, 백 이수(二水)의 합류지점에 거석이 하나 있는데 그 크기가 매우 크고, 형태가 소의 심장을 닮았다 하여 우심석(牛心石)이라고 부른다. 쌍비교를 건너 우심석에 부딪치는 큰 물보라며 우렁찬 소리가 매우 시원스러운 곳이다.

 

 

우선사(遇仙寺-1690m)

 선봉사와 세상사 사이, 해발 1,700여m에 위치하고 있다.

 청 동치원년(1862년) 성희 법사가 흥건시켰다. 절의 규모는 그리 크지않고,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고 깊은 계곡에 임해 있으며, 가파른 고개는 등지고 있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산의 나무가 서로 어울려 적막하고 고요한 분위기가 피서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때때로 원숭이떼가 출현해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더해 준다. 

 

 전설에 따르면, 예전에 한 관광객이 아미산에 신선을 뵈러 가는데, 이곳에 다다라 여비가 떨어져 앉아서 쉬고 있었다. 가고자해도 갈수가 없는 이때에 홀연히 한 노인이 나타났는데, 의복은 남루하고 걸음이 마치 바람과도 같고 행동이 비범하여 이 객이 노인에게 청하여 대나무 지팡이를 하나 얻어 그것을 타고 용이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곳에 후에 불사를 짓고 '후선사'라 명명했다.

 

 

선봉사(仙峰寺-1752m)

 선봉사의 옛 이름은 "자연사" 또는 "선봉산원"이라 한다. 명마력 40년(1612년)에 본동선사가 창건했다. 예전에는 4동의 건축이 주석판 기와로 덮여 있다. 현존하는 절은 청대에 중건한 것이다. 불사 뒷편으로는 위험한 바위로 둘러쳐져 있고, 화엄봉과 마주하고 있으며, 나무가 무성하고 깊은 골짜기에는 고요함만이 흐른다. 불사의 뒤쪽으로는 500m에 이르는 '구로동'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 굴에는 아홉분의 신선이 있어 황제가 이곳을 찾아 불도를 했다는 설이 있다. '아미십경'의 하나인 '구로선부'가 바로 이곳이다.

 굴의 좌측에는 삼협대가 있어, 이곳에 오르면 백리까지 내다보이며 수려한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절 주위는 원숭이떼가 서식하는 곳이 있어, 때때로 유람객의 음식을 빼앗아 가기도해 유람의 즐거움을 증가시켜 준다.

 

 

세상지(洗象池-2070m)

 화엄정과 백운사 사이에 위치해있다. 명대에는 '초희암'이라 불리웠으며 규모는 매우 작다. 청강희 38년(기원1699년)에 대대적인 개축공사가 있었다.  

 절앞에 육각형의 연못이 있어, 보현보살이 얼굴을 씻었다는 전설이 있어, 이런고로 세상신이란 이름이 붙었다. 전 내에는 관음, 지장, 대세 등 세 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자태가 단정하고 장중하며 옷의 무늬도 매우 뛰어나다. 불사는 해발2,100m의 높은 산봉우리 삼나무들이 우거진 속에 위치해 있다.

 

 당대 시인 이백은 일찍이 '아미산원가'를 지어 아미의 달을 칭송한 바 있다.

 싯구는 이렇다.  "아미산 보름달이 가을을 알리니, 평강 흐르는 물에 달빛이 비치는구나. 맑은물은 삼협으로 흘러가고, 임은 유주로 가버리누나." 삼사의 달벽시 "아미십경"중의 하나이다.

 이 일대도 원숭이떼가 서식하는 곳으로, 때때로 원숭이떼가 절안까지 들어와 관광객들의 음식을 빼앗아 달아나 계곡에 버리는 등 유람객들을 어쩔 줄 모르게 한다.

 

 

 

금정(金頂-3077m)

 아미산 최고봉의 명칭이다. 만불정과 가까우며 해발 3,077m에 위치한다.

 불사는 동한대에 건축되었고, 당시에는 '보광전'이라 불렀으며, 아미산 고찰중의 하나이다. 산이 우거지고 천둥이 자주쳐서 여러차례 수리를 했으나, 여전히 새로 짓고 다시 허물어지는 상황이다.

 

 정전은 영명화엄사라고 불리우며, 청 광서12년(1886년)에 중건되었다가, 민국 25년(1936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전 뒤 가장 높은 곳에는 원래 동전(銅殿)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금전>이라 부르며 폭은 20여m, 앞 뒤 길이는 수m이며 정중앙에는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고, 좌우에는 만불상이 늘어서 있다. 전문에는 흑산산천이 음각되어 있다.

 

 전내에는 명대 성화년간(1465~1487년)에 주조된 동비가 있는데, 정면에는 "대아산영명화엄사에 동전을 신축함을 기념하다." 란 글이 씌어 있고 뒤편에는 "아미산보현금전비"라고 씌어있다.

 

 동전의 화엄사는 이미 화재로 소실되었고, 비(碑)만이 전좌측의 '와운암'내에 보존되고 있다. 암자 좌측으로 수십분 떨어진 곳에 '서광대'가 있는데 일출·운해를 감상할 수 있는 불광(佛光)성지이다. 절 뒷편으로는 좁은 절벽이 하늘 높이 솟아 있고, 절앞은 만길 낭떠러지여서 속칭 '서선암'이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수백리밖까지 내다보이며, 크고 작은 설산이 바라보인다. 만불정 위에서 바라보는 '불광' '불등'은 아미산의 가장 볼 만한꺼리이다.

 운해나 일출은 태산·황산·구화산 등의 정상에서도 모두 볼 수 있지만, 이 '불광'은 아미산에서만이 볼 수 있는 것으로, 이곳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이 신성한 불교 성지에서 '불광'을 본 5인은 행운을 얻을 수 있도록 한다. 소위 '불경' 이라 함은 일곱 색깔 별의 고리로 가운데에 사람머리 모양이 있다.

 

 그것을 보는 사람이 머리를 끄덕이면 이것도 고개를 끄덕이고 또 고개를 저으면 따라 젓는다. 만약 두사람 이상이 동시에 난간에 의지해 보여도 각각의 원광이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전설에 따르면 경건하고 성스러운 자만이 볼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볼 수 없다고도 하며, 또한 일설로는 운이 좋으면 보고 그렇지 못하며 볼 수 없다고 하는데, 후자가 오히려 일리가 있다. 왜냐하면 "불광"을 볼 수 있고 없고는 불광이 나타날 조건이 갖추어졌느냐 아니냐에 달려있기 때문에, 불광을 보러 갔을 때, 조건이 구비가 되었다면 보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못보는 것이다.

 

 여하튼 관건은 시기인데, 사람들이 항상 말하는 '운'이 바로 그것이다. "불광"은 또 '아미실광'이라고도 하는데, 실제는 무지개로 그저 우리들이 늘상 보는 무지개인 따름이다. 중간의 사람 머리 형태의 그림자는 관람객 본인의 그림자이다.

 

 무지개는 다음 세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생기는데 첫째, <서산암>아래 천미터의 계곡이 반드시 두터운 구름으로 가득 차야 하며, 둘째, 태양 아래는 맑은 하늘이 펼쳐져야 하고, 얇은 구름도 하늘을 가려서는 안된다. 셋째, 태양을 반드시 어느 한 지점에 멈추어, 그 빛이 계곡을 정면으로 비추어야 한다. 이 시간을 오후 2:10~2:30까지가 적당하다. 이는 황담배 선생이 건국 25년 4월4일 직접 실험한 결과이다.

 

 "불등"은 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산아래의 많은 등불들로 산 아래서 점차 상승한다. 규정에 보현보살을 모시기 때문에 소위 '만추의 밝은 등이 보현을 비추다.' 라고 전해진다.

 

 "불등"을 보는데도 몇가지 조건을 구비해야 하는데, 아미현성 일대가 맑고, 달빛이 없는 황혼 후에야 하며, 가장 좋은 시기는 봄에 논에 물을 댈 시기쯤이다.

 

 "등화"는 두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홍색의 움직이지 않는 작은 첨불이고, 하나는 초록색의 끊임없이 깜박거리는 긴 점불이다.

 전자는 민가의 등불이고 후자는 논에 대어놓은 물이 바람이 불어 찰랑거릴 때 반사되는 빛으로 요동치며 멈추지 않기 때문에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다. 실은 물결의 움직임이다. 이 수수께끼를 듣고나면 그다지 신기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보기에는 힘든 광경이다. 아미산의 이런 특수한 지형(가파르고 험준한 지형) 아래서 만이 형성될 수 있는 것으로, 일반적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 사면십방보현금불상(四面十方普賢金像)

아미산 금정의 사면십방보현금불상(四面十方普賢金像)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금불로, 세계 최초의 보현불상 예술 조형물이다. 동으로 주조하여 도금하는 기법을 사용했으며, 높이 48m, 무게 660t으로 좌대와 불상 두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좌대의 높이는 6m로 길이와 너비가 각각 27m이며, 사면에 보현보살의 10가지 행원(行願)이 조각되어 있고, 바깥쪽은 화강암을 사용한 부조형식의 장식이 있다.

 

 불상은 42m, 무게 350t으로 전체적인 설계가 완벽하고 공예 기법이 시원하여 동으로 주조한 불상중 최고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보현보살의 드넓은 행원이 십방 세계의 모든 중생에게 미치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와옥산(瓦屋山)-해발 2830m, 남북길이 3375m, 동서길이 3475m, 산정상의 면적 11㎢

 사천성(四川省) 미산시(眉山市) 홍아현(县)에 있는 삼림공원.

 성도(都)에서 180km 떨어져 있다. 총면적은 약 700㎢이다.

 

 평균 높이는 해발 2,830m, 최고 높이는 해발 3,522m이다.

 남북길이 3,375m, 동서길이 3,475m, 산정상의 면적 11㎢이다.

 

 와옥산은 지각변동으로 인해 형성되었고, 마치 기와집과 같다하여 와옥산(山)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와옥산 정상에는 중국에서 가장 높고, 가장 큰 방산(山) 구릉이 있다. 

 아미산(山), 낙산대불(乐佛)과 함께 사천 서남부의 명승지이다. 와옥산(山)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도교(教) 성지이다. 

 

 와옥산에서는 운해(雲海)을 볼 수 있고, 일출(日出), 불광(佛光), 성정(聖灯)등 '세 개의 태양(三個太陽)'이 보이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일찍이 당송() 시대부터 이곳을 아미산(山)과 함께 '촉중이절(绝)'이라고 불러 왔다.

 

 와옥산은 4계가 뚜렷하여 봄에는 두견(杜鵑: 진달래)이 만발하여 '진달래왕국'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여름에는 휘날리는 폭포를 볼 수 있고(난계폭포(蘭溪瀑布, 낙차 1,040m)), 가을에는 오색 단풍을 감상할 수 있고, 겨울에는 눈 덮인 임해설원(林海雪原)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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