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曹雪芹(조설근: 1715~ 1761) - 18세기 중국사회의 거울,紅樓夢(홍루몽)』

 

 이름은 점(霑), 자는 몽원(夢阮)이고 근포(芹圃), 설근(雪芹), 근계(芹溪) 등 호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역동적인 발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자본주의 맹아를 이야기한다. 서구사회와 같이 중국도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는 그러한 논리가 초기에는 엉뚱하게도 조설근의 작품인 『홍루몽(紅樓夢)』을 토대로 펼쳐졌다.

 조설근은 1715년 출생했으며, 설근은 그의 자이고 본명은 曺霑(조점)이었다. 그의 조상은 원래 河北(하북)의 한족으로, 일찍이 만주로 이주하여 살다 만주귀족에 의해 노예가 됐다. 그러나 몽고제국의 징기스칸과 비교될 수 있는 누루하치(1559~1626)가 만주족을 재조직하면서, 그의 조상은 八旗(팔기)의 일원으로 정복왕조의 창출을 위한 대열에 참여했다.

 

 팔기제도란 淸 太祖(청 태조) 누루하치가 1601년경 창설한 것으로 만주족의 부족적 질서를 관료제의 원리에 따라 구성한 조직이다. 원래는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흰색의 4가지 깃발 아래 4개의 부대였지만, 다른 4가지 깃발의 부대를 추가하여 모두 8개의 부대로 확대 개편됐다. 청의 정복활동이 거의 매듭지어지자 8기는 24기로 확대 개편되면서 만주족 외에 몽고족과 한족을 포함시켰다. 결국 청의 친위세력으로서 팔기는 정복왕조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조설근의 아버지는 이미 2대 이상을 조씨 집안에서 역임한 강남의 요직 江寧織造(강령직조)를 계승했다. 이러한 행정 고위직의 부자계승은 청조와 같은 정복왕조에서만 볼수 있었던 현상이다. 그러나 그가 불행하게도 병치료 끝에 일찍 사망하자, 그 직책은 사촌에게 넘아 갔다.

 설상가상으로 조설근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강희 황제의 뒤를 이른 雍正(옹정)(1723-1735)은 즉위 후 왕위계승을 둘러싼 형제들과의 치열한 권력다툼에 연루된 반대파 인사를 탄압했다. 이때 조씨가문도 숙정대상이 되어, 강녕직조인 조설근의 숙부는 북경의 한직으로 촤천됐다. 그러나 옹정황제의 뒤를 이은 乾隆(건륭)(1835~1795) 황제의 관용으로 조씨 집안은 잠시 과거의 영화를 만회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없는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조씨 집안은 다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로부터는 영영 쇠퇴일로에 접어 들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조설근의 가문의 성쇠를 한꺼번에 맛보았던 셈이다.

 비록 가세는 기울었지만, 귀족의 후예답게 그는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다재다능했다.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활달하여 그 주위에는 문인재사들이 늘 끊이지 않았다. 또한 시적 재질이 뛰어나고 노래와 악기를 즐기며, 그림과 글씨는 물론 춤과 검술도 탁월했다. 그야말로 못하는 것이 없는 그에게 가난은 절망이었으며, 그러한 절망을 삭일 수 있는 길이 절실했는데, 소설이 그의 탈출구였던 셈이다. 드디어 그는 삶의 최종 10여년을 적막한 산촌에 은거하며 가난과 고독 속에서 『홍루몽(紅樓夢)』의 저술에 몰두했다.

 

 홍루몽(紅樓夢)』은 저자가 비참한 현실에서 화려했던 유년시절을 되돌아본 자서전적인 소설이다. 원래는 조설근이 『石頭記(석두기)』란 제목으로 80회까지 써서 미완성인 채로 세상에 내놓았다. 그래서 판본은 80회본과 120회본이 있는데, 80회본은 필사본이다. 120회본은 고악(高帽)이 쓴 40회본을 덧붙여 1791년경 정위원(程偉元)에 의해 간행된 것으로 '정갑본(程甲本)'이라 하고, 이 '정갑본'을 개정한 것이 1892년에 간행되었다는 '정을본(程乙本)'이다. 그리고 그 인쇄본은 1791년에 출간되어 급속도로 민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조설근의 작품은 한마디로 18세기 중국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실주의 작품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문학적 가치 외에도 역사학자의 주목을 받을 만한 사회사적 가치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중국사회에도 자본주의 맹아가 이미 자생적으로 형성됐음을 증명하는 근거로 그의 『홍루몽』이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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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사를 보는 시각 중 중국인 자신들이 아직도 가장 집착하는 자본주의 맹아론은 엉뚱하게도 1950년대 중반부의『홍루몽』에 대한 논쟁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중국에는「紅學(홍학)」이라는 『홍루몽』에 대한 연구만을 전문으로 하는 학문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맹아론은 모택동의 소위「선각자적 발언」을 토대로 이루어졌다. 그는 1939년에「중국혁명과 중국공산당」이란 제목 아래 발표한 글에서『중국 봉건사회내의 상품경제 발전은 자본주의 맹아를 내포하고 있었다. 설령 외국 자본주의의 영향이 없었더라도 중국은 서서히 자본주의 사회로 발전해 나갔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국학자들이 주장하는대로 그의 견해가 얼마만큼 선구적인 역할을 수행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에 인용한 그의 주장은 어쨌든 자본주의 맹아론을 적절하게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맹아론은 엉뚱하게도 고전소설 『홍루몽』에 관란 문학논쟁이 시작되면서, 그 여파로 본격화됐다. 일부 학자들이 이 소설에 묘사된 18세기 중국사회를 통해 강남등 일부 선진지역에서 자본주의의 싹인 농업노동자나 신흥시민세력등이 등장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조설근의 시대에 수공원이 면직이나 견직산업을 중심으로 강남지대등 몇몇 지역에서 상당 수준에 이를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더욱이 수공업 공장 내부에서는 임금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고용관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을 자본주의 맹아론자들은 노동시장의 발달을 전제로 주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제생산하는' 노동자 계급이 중국사회에도 형성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다른 한편으로 『홍루몽』의 무대가 되는 강남지방에서는 수공원의 공장주나 상인들이 도시시민의 삶을 영위했다. 특히 주인공 賈玉(가보옥)의 자유분방한 애정관과 같이 집단보다는 개인, 공동체보다는 개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유형의 정신세계가 점차 확산됐다. 이로써 마르크스가 말하는 부르좌계급의 삶과 정신이 이미 중국사회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맹아론자들은 파악했던 것이다. 나중에 『홍루몽』에 대한 해석은 '자본주의가 싹트는 시기에 시민계급이 봉건적 사회질서에 대해 계급투쟁을 전개한 것'으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조설근(曹雪芹) 문학은 결국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발전하는 역사의 보편적 법칙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러한 자본주의 맹아론적 시각이 옳고 그른가 하는 여부는 더 많은 역사적 고증이 필요함은 물론이지만, 세계사의 보편성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결국 중국인들이 극복해가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루몽』보여주는 중국사회는 결코 정체적인 모습이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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