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玄裝(현장) - 불교의 발전과 불경번역

 

 외래 종교로서 불교는 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한때나마 중국사회에서 지배적인 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漢末(한말)이래 혼란했던 정신세계에 새로운 청량제로서 부각된 불교는 재통일의 과업을 완성한 수와 당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사람에 의해 쓰여진 불경이 중국인들에게 쉽게 이해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데, 현장과 같은 인물이 완벽한 번역을 위해 머나먼 인도까지 여행했기 때문에 중국불교의 급속한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三藏法師(삼장법사)로 알려진 현장은 본명이 陣褘(진위)다. 그가 602년 河男(하남)에서 태어났을 때는 수의 문제가 통치 중이었으며, 그의 집안 모두 불교를 믿고 있었다. 나이 11살 때부터 불경을 읽기 시작한 그는 13살 때 출가하여 수도승이 됐다.

 

 당시 불교를 중국에 전파하려는 사람들이 느낀 최대의 장애물은 다름아닌 언어였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의 교리는 산스크리트(Sanskrit)라는 언어체계를 통해 확립됐다. 중국인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산스크리트는 정확한 문법체계가 있는 반면, 중국어는 거의 문법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언어장벽이란 근본문제를 안고 있는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손쉬운 길은 중국 고유 사상의 논리와 용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는 불교가 들어올 때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도교가 안성마춤이었다. 따라서 후한시기에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불교 교리의 정리나 전파에 도교의 역할은 매우 커 처음에는 도교의 한 종파쯤으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점차 불교와 도교의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도교가 비교적 철학적이고 사변적이라면, 불교는 대단히 심리적이고 종교적이었다. 당시의 사회혼란은 이미 극한상황에까지 치달았기 때문에 당연히 불교가 더욱 매력적이었다. 특히 다르마의 체득, 즉 득도를 통해 니르바나(Nirvana,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불교교리는 중국인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불교가 정착된 과정은 중국제국의 분열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남북조시대 동안 중국의 북부는 이민족에 의해 통치되고 있었으며, 이민족 통치자와 피지배자인 중국인과의 갈등이 점점 깊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부의 이민족 통치자에게 불교는 매력적이었다. 자신들이 이민족이듯이, 불교도 외래종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따라서 불교의 정착은 자신들 정권의 정통성을 중국인들이 인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정복왕조는 파악했다.

 

 반면 이민족의 통치를 받은 북부 중국인들의 입장에서도 불교는 적절했다. 무엇보다도 불교신앙을 통해 자신들과 이민족 통치자와의 융합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유교가 가족중심적인 차등적 종교라면, 불교는 인종과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보다 포괄적인 종교였기 때문이다.

 

 북부에서 민족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작용을 했던 불교는 똑같은 맥락에서 남부에서는 북부 이민들과 남부 토착민들과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불교의 포괄적인 성격은 중국이 하나의 통일제국으로 재통합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불교는 남북조의 분열을 종식시켰을 뿐 아니라, 이민족의 혈통을 가진 것으로 추측되는 북조의 왕조가 중국을 통치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불교의 포괄적인 성격은 불교의 전성기였던 唐(당)(618~907)이 중국에서 가장 개방적인 시기였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불교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당대에 활약했던 현장은 외래종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629년 불교의 근원지인 인도로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로 험준한 사막지대인 서역 16국을 통과하여, 만 4년만에 인도에 도착했다.

 

 그는 길을 떠난 지 17년만에 불경 6박 57부와 사리불상 다수를 휴대하고 귀향의 길에 올랐다. 귀국 직후 불경의 번역 사업에 몰두하여 모두 75부, 1천3백35권의 불경에 대한 번역을 완성했다. 아마도 현장은 중국사상 가장 많은 불경을 번역했던 인물일 것이다. 그는 664년 6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한편 현장의 여행경험은 『大唐西域記』라는 대작으로 남았다. 총 12권의 분량에 그는 서역, 중앙아시아 및 인도지역 1백 10개국을 직접 17년간 여행하면서 보고 겪었던 이야기를 담았다. 뿐만아니라 직접 가보지 못했지만 전해들은 28개국의 이야기도 함께 서술했다. 그러므로 『大唐西域記(대당서역기)』는 중국의 가장 현란하고 오래된 세계지리서 중 하나다.

 

 이렇듯 현장의 시대에 절정을 구가했던 중국불교는 당 중기 이후부터 급격하게 쇠퇴했다. 불교 사원들이 지나치게 확장됨에 따라 국가권력조차 위협을 느꼈다. 이에 황제권과 유가의 전통을 숭상하는 중국 지식인들은 외래사상인 불교에 대한 공동전선을 펴 11세기부터 불교는 완전히 영향력을 잃기 시작했다.

 

 이후 불교는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변형, 흡수됐다. 점차 승려들의 교육과 가정배경이 낮아지고, 심지어는 문맹자거나 불교 자체를 전혀 모르는 승려들이 속출했다. 이제는 현장의 시대에 보여 주었던 불교의 활기를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게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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